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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03. 2023

 꿈과 소설책

꿈과 소설책    

 

  밤만 되면 꿈의 행렬을 따라간다. 꿈도 가지가지다. 날이 샐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꿈이다. 삼촌 집에 갔었고 붉은 꽃, 노란 꽃, 꽃들이 화사한 집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의자가 놓인 정원, 돌담, 내 동영상보다 더 잘 찍은 농부의 동영상을 보다 깼다. 삼촌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시어머님을 뵈러 오실 건가. 꿈은 엎치락뒤치락했다. 꿈속에서 변신하는 나를 봤다.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나도 내일 아침 일어나면 한 마리 벌레로 변해 책상 밑에 웅크리고 있지 않을까. 자신이 먹여 살리던 가족으로부터 자유를 차단당한 채 자기 방에 갇힌 주인공. 가장이었던 그가 벌레로 변하자 가난한 가족은 더 가난해지고 그는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멸시당하다가 어둠 속에서 죽는다. 그의 죽은 몸뚱이는 하녀의 쓰레받기에 담겨 버려진다. 한 인간으로서 생각하면 섬뜩한 작품인데 다른 각도로 생각하면 이해도 된다. 고래로부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살기 위해 어린 딸을 팔아먹고 인육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달가닥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벌레로 변한 것도 아니고 사지가 오그라든 것도 아니고 멀쩡했다. 벽시계를 봤다. 밥시간이 늦다. 아내가 일어나길 기다리다 배고픔을 못 참은 농부가 아침을 준비한다. 슬그머니 방문을 열었다. 고소한 냄새가 뱃속을 자극한다. ‘내가 잠 깨웠네.’ 농부는 열심히 야채를 썰고 빵을 굽고 달걀을 굽고 있다. ‘통했네. 나도 빵 먹고 싶었는데.’ 활짝 웃었다. 요구르트를 꺼내고 커피포트에 물을 부어 전기코드에 올렸다. 밥과 면에 질릴 때는 빵과 커피로 먹는 한 끼 맛있다.

 

 농부가 감산으로 떠나면 남은 시간은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무료하게 창밖 바라기도 한다. 내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너무 안이하게 사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편하게 사는 게 아닌가. 이렇게 시간만 축내다 죽는다면 내게 주어진 삶에 너무 나태한 것은 아닌가. 반성할 때도 있다. 먼지가 뽀얀 집이다. 청소를 며칠 째 하지 않았다.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대충 살지 뭐. 그렇게 또 하루를 접지만 먼지는 내 마음까지 차오른다. 결국엔 청소를 시작하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고 나면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된다. 

 

 청소기를 제자리에 놓고 한숨을 쉰다. 언제까지 내 손으로 살림을 살아낼 수 있을까. 멍 때리기를 하다가 결국은 다시 소설책을 편다. 독서가 내게 주는 위안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냥 읽는다. 에 그친다면 책이 섭섭해할지 모르겠다. 책 속에 길을 찾는 것도 젊어 한 때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쉽게 피곤해지는 눈, 쉽게 지치는 몸이다. 오늘은 나보다 한 살 위의 시인이 길 떠나는 날이다. 마음으로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오랜 세월 아는 듯 모르는 듯 지낸 사이지만 이승을 떠났다는 소식은 황망하고 쓸쓸한 감회를 불러온다. 

 

 그렇다. 나도 노인 대열에 섰다. 자식들 떠난 집에 남은 늙은 부부의 하루하루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추구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단조로운 일상이다. 오래 산 부부 사이에 대화 역시 부재중이다. 언어의 유희를 보여주는 소설 <탐욕>을 읽으며 말재간은 타고 난 작가구나. 감탄하기도 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각도로 분석하고 파헤치고 그려내는 언어유희가 뛰어난 작가다. 타고난 작가의 기량에 새삼 감탄하면서도 조금은 지루하다. 말장난이 너무 심해 식상한 점도 있다. 서술자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시 밤이다. 새벽 꿈자리가 뒤숭숭해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조바심쳤지만 하루는 별일 없이 넘어갔다. 내 꿈에 남의 꿈을 꾼다는 것, 자리바꿈을 할 일이 생길 것인가. 소식이 올 것인가. 기다렸던 하루가 조용히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며 다시 책을 읽는다. 탐욕, 참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두 번째 읽는데도 그렇다.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며 읽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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