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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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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06. 2023

 흐린 하늘이다

흐린 하늘이다.      


 닭 한 마리를 고았다. 삼계탕거리와 마늘, 밤도 넉넉하게 넣었다. 닭의 살을 발라 삼계탕 국물에 찹쌀 죽을 끓였다. 어머님이 잘 드셨으면 좋겠다. 기저귀 차는 어머님이다. 닭죽 드시고 혹 설사라도 하면 간병인이 고생할 텐데. ‘안 먹던 음식 먹으면 똥 싼다고 싫어한다.’ ‘요양원에서는 아무거나 못 먹게 한단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명절 때나 자식들 오면 기름진 음식을 주는 대로 받아 드셨던 어머님 때문에 고생했었다. 몸은 굼뜨고 괄약근은 약해진 노인이다. 날마다 더러워진 이불과 옷을 갈아입혀야 했었다. 농부와 내가 하던 그 일을 지금은 노인전문요양병원 간병인이 한다. 그래도 한 달에 두어 번인데. 


 간식거리와 간병인 용돈, 죽과 물김치를 챙겨 시어머님 면회를 갔다. 아직 코로나 항원 검사는 필수고, 마스크도 필수지만 대면 면회를 할 수 있고, 챙겨 간 음식을 드시게 할 수 있다. 미리 점심은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끓인 닭죽 한 그릇이라도 드시게 하고 싶어서다. ‘오메, 맛있어요?’ 고개를 끄덕이신다. 요양원에서도 잘 드신단다. ‘할머니가 죽을 참 잘 드시네요. 죽 안 드시려고 해서 밥을 드리는데.’ 요양보호사가 인사를 한다. ‘며느님이 끓이신 거라 맛있나 봐요.’ 표정을 잃어가는 어머님이지만 아직 눈은 맑다.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머님은 여전히 바깥나들이가 싫단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바깥구경 시켜드리고 싶다니까. 고개를 젓는다. 나가기 싫다는 의사표시는 정확하다. 어머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오갈까. 누구 보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흔든다. ‘오메, 우리만 자주 오면 좋지?’ 내 말에 겨우 웃음을 짓는다. ‘내가 누구야? 오메 딸이지?’ 또 웃는다. 나를 보는 눈빛이 따뜻하다. 어머님은 콧물을 흘리며 죽을 드신다. 숟가락질도 잘하신다. 나와 농부는 계속 휴지로 콧물을 닦아드리고 입가를 닦아 드린다.


 어머님을 뵐 때마다 힘들다. 그래도 살아계시니 낫다. ‘오메, 밥 잘 드시고 편하게 계셔. 우리 자주 올게.’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어머님은 휠체어에 앉아 떠나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실까. 저리라도 살아계신 것이 나을까. 돌아가시는 것이 나을까. 시어머님만 뵙고 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농부다. 어머니를 향한 농부의 효심을 어찌 모르랴. 며느리인 나와 또 다른 감정일 것이다. 안타깝고 속상하고 끝까지 집에서 모시지 못한 죄스러움을 어찌 모르겠나. ‘당신 힘들지? 나만 엄니 뵙고 와도 되는데. 당신 힘들면 안 따라와도 돼. 저렇게라도 살아계시니 뵙고 싶을 때 뵐 수 있어 나는 좋은데. 당신이 힘든 것 같아 미안해져.’ 그렇게 말한다고 위로가 될까. 


 앞으로 어머님을 뵐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여전히 어머님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젠 편안하게 저승길 가도록 빌어드려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질긴 끈이 고부 사이를 묶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젠 그 끈을 놓도록 노력해야 할 것도 같다. 아흔넷 시어머님이 저렇게 계시는 것을 보고 있기 힘들다. 집으로 모셨으면 싶어도 여전히 나는 노인을 모실 자신이 없다. 내 몸도 못 이겨 허덕대면서 기저귀 차는 치매 노인을 어찌 모실 수 있겠나. 이것도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일 것이다. 내가 편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니 시어머님을 모실 수 없는 것이다. 흐린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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