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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귀로

<단편소설, 끝>

by 박래여

다음날, 스님을 따라 운두암으로 떠났었다.

그 암자에서 한 철을 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첫 만남 이후 주말만 되면 간편한 등산복 차림으로 운두암을 찾아왔다. 우리는 행복했다. 남의눈도 의식하지 않고 손을 잡고 골짝을 헤매고 달천의 크고 작은 산을 탔다. 사랑놀음에 기둥뿌리가 썩는 줄 모른다고 했든가.

하루는 행운스님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찾았다.

자네, 쫓기는 중인가? 누군가 우리 절에 수상한 남자가 숨어 산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야. 낮에 파출소 순경이 왔었네. 이것저것 자네에 대해 묻더군. 아는 게 있어야지. 자네 이름 적어서 신원조회 한다고 챙겨갔네. 혹 명지 씨 부모가 자네 뒤를 캐는 것은 아닌지. 명지 씨 부모가 우리 달천의 재력가라네. 부인이 둘이야. 첫째 부인에게 난 딸이 명지 씨라네. 딸 하나만 낳고 단산이 된 모양이야. 명지 어머니께서 가세가 기울긴 해도 반듯한 집 규수를 골라 명지 아버님께 둘째 부인으로 추천했다는군.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고명딸이 바람이 난 것 같으니 그 상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 추측이네만.

내 행운은 거기서 끝났다. 나는 다시 도피를 해야 할 입장에 섰다. 서른여섯 살의 중년 남자가 자기보다 열 살이나 어린 처녀랑 눈이 맞아 절간 문설주 내려앉는 줄도 모르다니. 한심하고 또 한심했다. 말없이 바랑을 챙겼다. 짐이라야 간단한 소지품이 다니 쌀 것도 부칠 것도 없었다. 스님이 주는 바랑에 담아 짊어지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그냥 떠나올 수가 없었다. 만나야 했다. 만나서 대충 떠나야 할 사정을 이야기해 놓고 떠나도 떠나야 했다. 나는 간첩이었다. 본의 아니게 간첩 혐의를 쓰고 수배자 명단에 버젓이 올라 있었다. 행운스님에게 부탁해서 학교에 있는 그녀를 절로 불러 올렸다. 금세라도 경찰이 들이닥칠 것 같아 한시가 급했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지 않고는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만났다. 발그레 홍조까지 띠고 방글방글 웃는 그녀는 한 그루 복숭아나무였다. 연분홍 꽃이 만발한 복사꽃 나무였다.

선생님, 웬일이래요?

긴한 할 말이 있어서 오라고 했어요. 수업은 끝났어요?

그럼요. 사실 어머니께서 오늘은 일찍 들어와야 한다고 일침을 놓긴 했지만. 뭐 어때요. 나도 어른인데.

그래요. 말하리라.

가능하면 담담하게, 평범하게, 진솔하게, 내 신상 이야기를 했다. 그녀에게만은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차를 따라 마셨다. 내가 간첩 혐의를 받고 쫓기고 있다는 것까지 말하고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게 다예요?

아니요.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소. 나는 이미 아내와 아이가 셋이오. 비록 아내도 아이도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지만 모두 내 과거 행적으로 빚어진 일이긴 하오만 엄연한 사실이오. 법적으로 나는 유부남이오. 그런 내가 순결하고 깨끗한 그대를 취하려 했으니 미안할 따름이오. 부디 잠깐 나와 노닌 것은 못 된 춘정 탓이라 돌리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시오.

그게 다예요?

예.

언제 떠날 거죠?

오늘 밤에라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올 때까지 떠나지 마세요. 꼭 그래 주실 거라 믿습니다. 제 마음을 훔친 벌이니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아니면 평생 찾아다닐 겁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그녀가 차비라도 챙겨다 주려고 그러나 생각했다. 아무리 사기에 능하고, 임시웅변에 능한 다재다능한 문재라도 수중에 동전 한 닢 없이 길을 나선다는 것은 경찰서 찾아가 자수하고 전향서 한 장 쓰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기다림이 평생 그녀를 내 곁에 묶어 둘 끈이 되었다.

윤명지, 그녀는 그 밤에 나를 따라 지난한 삶을 선택했고 가장이 되어 나를 보호하고 먹여 살렸다. 아내는 단칸 셋방이라도 얻어 들면 주위에 있는 아이들을 모아 그림을 가르쳐 생활고를 면했고 자칫하면 튀어야 하는 내 도피자금을 댔다.

그래도 행복했다오. 잠결에도 당신 발자국 소리는 어찌 그리도 환한 지. 골목을 들어서는 당신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안으로 걸어 숟가락을 끼워놨던 문고리를 열어 놨었지요. 당신 몸에서 나는 신선한 냉기가 어쩜 그리도 따뜻하고 좋았는지. 밤새도록 당신 품에 안겨 누웠다 눈을 떠보면 당신 베개만 내 품에 안겨 있곤 했지요. 당신 오면 주려고 준비해 놨던 봉투, 우리만 아는 그 자리를 더듬어 보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곤 했지요. 가장 힘들었던 적이 있지요. 당신이 어찌 알까요. 당신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있지요. 그때가 언제였던가. 당신이 법으로부터 풀려 자유인이 되었을 때였을 거요. 당신이 부인과 자식에게 돌아가야겠다고 했을 때 가슴이 툭 떨어집디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 믿었었지만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놨지요.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런 여자였답니다.

그랬지. 당신이 가라고 했지. 가끔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한 번씩 다녀가면 좋겠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통 못 오면 편지라도 한 번씩 근황을 알려달라고 했었지. 나에게 더 바라는 것이 없다면서. 나와 몇 년을 쭉 함께 산 것으로 평생 살아도 행복할 거라고. 당신은 친정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었지. 진짜 그때 나는 당신을 영영 잃어버리는 줄 알았지. 내가 내 고향, 내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당신도 돌아갔었잖아. 버스터미널에서 당신은 충주 가는 버스 노선 쪽으로, 나는 산청으로 가는 버스 노선 쪽으로 가는데. 당신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군. 그때 알았지. 당신이란 사람에게 칼 같이 매서운 면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울면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볼 수 없었어요. 만약 그때 돌아봤다면 당신과 헤어질 수 없을 테니까요. 모질게 마음먹어야 했죠. 왜냐면 당신에겐 나보다 아이들이 소중했기 때문이죠. 늦었지만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결코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없었소.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으니까. 아내도 자식도 나를 내쳤소. 참 갈 데가 없습디다. 면전에서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왔느냐고 합디다. 나는 빨갱이 자식이 되기 싫어요.라고 외치는 아들이 있었소.

그랬다. 경찰에 찾아가 전향 서에 이름과 도장을 찍고 나왔을 때 나는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었고, 숨을 쉴 수 있었다. 반공법에서 풀려 자유인이 되었을 때 내가 가장 행복했던 것은 연좌제에 걸렸던 내 자식의 호적에서 빨간딱지를 떼었다는 거였다.

그러나 전 처도 전 처 소생의 아들과 딸도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나 때문에 그들이 받았던 고초를 어찌 모르겠는가. 수시로 경찰에 불려 다니며 추달 받고 시달렸다는 것을 안다. 전처는 하반신을 못 썼다. 경찰의 모진 고문 탓이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들이 내 가족이란 이름으로 당한 고초는 참으로 컸다. 나는 그들에게 남편과 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였다. 당신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 있다고 이제야 나타나. 그 잘난 아버지 노릇 하겠다고? 지나는 개가 웃겠네. 당신은 이미 우리에겐 지워진 이름이야. 제발 좀 우리 살게 해 줘. 여기 안 나타나는 게 우리를 위하는 길이야. 남남으로 돌아서. 우리 아이들에게 빨갱이 자식이란 딱지 떼어주고 가. 당신 때문에 나는 학교도 제대로 못 마쳤어. 빨갱이 새끼라고 늘 따돌림당하고, 돌팔매질당했지. 당신이 뭔데. 당신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뭔데 이제 와서 남편 노릇하고 아버지 노릇 하려고 해. 꿈에라도 볼까 무섭다. 그들은 치를 떨었다. 가족이 아니었다. 내 영달을 위해 그랬던가. 나라를 구하겠다는 영웅심리 때문이었던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래, 떠나 주자. 나는 조용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주고 나왔다. 다 버렸다. 가족이 나를 버린 것인지, 내가 가족을 버린 것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풀 수 없이 얽히고설킨 고는 깨끗이 자르는 게 상수다. 내겐 이미 아내가 있지 않는가. 내 생명, 내 사랑, 나는 아내를 찾아 충주로 갔다. 친정에 가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없었다.

봄이었다. 산기슭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은 산야만 아니었다. 당신을 찾아 떠나는 내 마음에도 연초록 싹이 파릇파릇 돋았어. 이제 나는 거침없이 당신을 사랑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지.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짐 보따리도 홀가분하게 벗어버렸으니 이 세상 어디에 가든 우리 둘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어. 내가 무슨 짓을 하던 당신 하나 건사하지 못할까 싶었지. 용기백배였어. 나는 휘파람을 불었어. 지나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미래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했지. 당신을 만나면 당신과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깊은 골로 들어가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지. 하지만 나는 당신을 만나지 못했어. 대문 앞에서 쫓겨났지. 장인이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나를 밀어냈어.

자네가 여기 무슨 염치로 왔는가. 나는 딸이 없다네. 부모 버리고 남자 따라 야반도주한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네.

장인은 삽짝에서 나를 돌려세웠지.

장모님이라도 뵙고 가게 해 주십시오.

그 사람 진작 떠났네. 그 아이 찾아다니다 실성해서 일찌감치 떠났다네.

진짜 그 사람 안 왔습니까.

거짓말해서 무얼 하겠나. 두어 달 전에 오긴 왔었지. 제 어미 묏등에 가 하룻밤을 잤다고 하더군. 다음 날 떠난다기에 잡지 않았네. 자네랑 헤어졌다고 하더군. 자네들 사랑이란 것이 겨우 그 정도였는가?

이제 자유인이 됐으니 그 사람과 남은 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용서하시고 어디 가면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낸들 알겠나. 정처 없이 떠돌다 어디든 마음 맞는 자리를 찾으면 주저앉겠다고 하더군.

장인은 먼눈바라기를 했지. 뒷짐을 지고 그윽한 눈으로 남쪽을 향해 바라보는데 눈물이 크렁크렁 맺혔더군. 나는 알 수 있었어. 장인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으신 게야. 비록 장모님이 당신 때문에 실성해서 돌아가신 후 둘째 부인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당신 딸을 잊지 않으신 게야.

그래요. 제가 떠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잡지 않았어요. 다만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그 사람과 정리한 게냐?

아니요. 그 사람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저는 그 사람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래, 알았다. 사랑은 사랑한 만큼 고통도 큰 법이다. 네 마음에서 그 사람을 지우면 다시 돌아오너라.

참 마음이 넓고 인자하신 어른이셨어. 그래, 그때 나도 고샅을 나오다가 쓰러졌어. 당신을 찾을 수 없으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어도 죽은 것 같지 않았을 거야. 휘청휘청 고샅을 걸어 나오는데 눈앞이 뿌옇게 변하는 거야.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픽 쓰러졌던 게야. 장인이 나를 부축해서 당신 집에 데리고 들어갔지.

정신을 차렸더니 당신 방이더군. 방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어. 장모님이 밥상을 차려 왔더군. 며칠 쉬었다 가라면서. 꾸역꾸역 그 밥그릇을 비우고 조용히 당신 집을 나왔어. 갈 곳이 없더군. 결국 내가 찾아가서 의탁할 만한 사람은 행운 스님뿐이었어.

달천 운두암! 당신이 왔었지요. 공양주 보살과 함께 살면서 마음의 때가 벗겨지면, 아니, 당신을 지울 수만 있다면 삭발하고 부처님을 섬기겠다고 날마다 백팔 배를 하면서 나를 인도해 달라고 부처님께 매달릴 때였지요. 그때도 이맘때였던가요? 회색 승복이 흠뻑 젖도록 삼천 배를 목표로 절을 하는데 어떤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어요. 나도 모르게 돌아본 그 자리에 당신이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었지요.

그랬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지천에 아카시아 향기가 풀풀 날리던 봄, 아내와 나는 늘 봄처럼 생동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봄이 우리를 만나게 하고, 봄이 우리를 헤어지게 했다. 봄기운을 빌어 태어난 연분이라서 그럴까. 참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이제 아내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다. 내 병수발 하느라 십 년 사이 그 곱던 얼굴이 폭 늙어 파파 할미가 되었는데. 이제 그만 놔주고 싶다. 아내여, 대문 밖에 나가 보오. 당신이 기다리던 손자가 왔을 게요.

할머니, 저 행운입니다.

검은 정장을 한 손자가 앞장서고 그의 뒤에 검은 정장을 한 건장한 네 남자가 관을 들고 등장했다. 아내는 내 옷깃을 한 번 더 다독여 놓고 밖으로 나가 손님을 집안으로 들였다. 검은 정장을 한 사내 넷은 검은 구두를 벗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섰고 내 옆에 관을 놓았다. 그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를 이리저리 뒤척이며 무명 끈으로 묶더니 달랑 들어 관에 넣었다. 내 몸은 가볍게 관속에 들어갔고, 파리한 얼굴은 웃는 듯 우는 듯 고요했다.

나는 리무진이라는 멋지게 생긴 자가용을 탔다. 꽃상여 타고 가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건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꽃상여는 촌스럽다고 없애버린 자리에 리무진이라는 고급 승용차가 등장했다. 나는 그 고급 승용차를 타고 화장터로 향했다. 아내는 내 육체가 든 관 옆에 앉아 손자의 손을 잡고 가만가만 내 삶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다.

너의 할아버지는 애국자란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불살랐지. 쫓고 쫓기다 늘그막에 겨우 자유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지. 고향에 돌아왔지만 자식에게 버림받는 노인으로 외롭게 살다 간 사람이 너의 할아버지란다. 할아버지는 늘 너의 아버지를 그리워했단다. 아니, 죄책감에 시달렸지. 가족을 건사하지도 못하면서 어찌 나라를 지키겠다고 설쳤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하셨지. 너는 너의 할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참으로 장한 어른이시다.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 장롱 안에 있을 게다. 그걸 아버지께 갖다 드리도록 해라. 그리고 집과 텃밭은 너에게 남겼단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란다.

할머니는 어쩌시려고요?

너의 할아버지랑 같이 갈 곳이 있어. 내 육신도 소멸하면 함께 묻히게 될 자리지.

아내는 말을 끝내고 자꾸만 내 육신이 든 관 위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이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을 봤다. 아내는 한 그릇도 되지 않는 재를 쓸어 담은 나무 곽으로 무슨 보물단지 안듯이 안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손자 행운이가 뒤따랐다. 행운이가 우울한 얼굴로 ‘할머니,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하며 묻자 아내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충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내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아카시아 꽃처럼, 아니 이십 대 풋풋한 젊음으로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갑시다. 우리들의 자리로. 당신과 함께 아니면 갈 수 없는 그곳으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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