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나는 안전하다.
쑤우웅 비행기가 난다. 나를 깨우는 소리다. 음매애 희미하게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희뿌연 안개가 바다로부터 천천히 퍼져 올라온다. 이불을 푹 눌러 쓴다. 귀를 막는다. 다시 우우웅 쑤우웅 비행기가 낮게 내려앉는다. 비행기는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닌다. 공군 비행장이 있고, 사천공항이 있으니 어디서 날아오고 날아가는 비행긴지 모른다. 일단 비행기가 낮게 비행하면 비행기 소리에 맞추어 지붕이 들썩거린다. 벽이 흔들린다. 살강의 그릇이 달달달 춤을 춘다. 아버지의 소주병이 덜덜덜 떨린다. 아버지의 손이, 손목이, 고개가, 어깨가 흔들의자를 탄다. 재떨이가 마당으로 날아간다. 와당탕탕 뎅뎅뎅 동글동글 굴러가던 재떨이는 제풀에 질려 담벼락 밑에 폭 꼬부라진다. 누나가 사온 꽃무늬 재떨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버지 손에 박살난 사기 재떨이가 몇 개짼지 모른다. 어머니는 아예 사기 재떨이는 치워버렸다. 양철로 만든 재떨이는 아주 볼품사납다. 유기장사가 방자유기그릇을 만들어보겠다고 망치로 두드리다 초벌 망치질도 제대로 못하고 던져버린 꼴이다.
이 재떨이가 딱 너거 아부지 꼴이다. 니도 좀 닮았다. 알기나 하나.
어머니는 재떨이를 비울 때마다 내게 이죽거린다. 담벼락 밑에 꼬부라진 양철재털이는 비행기 소리가 그치면 어머니 손에 의해 얌전히 닦여 안방에 모셔질 것이고, 아버지는 니코틴이 누렇게 밴 손가락 사이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장미 한 개비를 끼고 한 손은 소주병을 입에 물고 나발을 불겠지만 지금 아버지는 소주병을 들고, 한 손은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가운데 기둥을 붙잡고 끙끙 힘을 쓴다. 기둥을 뽑겠다는 사람이 소주병은 한사코 끌어안고 있다. 차라리 아버지 손에 든 소주병을 뽑는 게 빠를 텐데.
내 이 놈의 집을 폭삭 뿌사삐고 말끼라. 저 놈의 뱅기 소리 안 들을라모 그 수밖에 없는 기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다. 이불속에는 이가 버글거린다. 이도 무서워 내 몸 안으로 잽싸게 숨는다. 겨드랑이가 가렵다. 사타구니가 가렵다. 머리카락 속이 가렵다. 나는 북북 손톱이 아프도록 긁어댄다. 어머니는 이불을 뒤집어 쓴 내 몸 위로 납작하게 엎드린다. 숨이 막힌다. 숨 차, 옴마 숨차, 나는 웅웅 비행기 소리를 내며 방바닥을 탁탁 친다.
너거 아부지 또 지랄이다. 뱅기가 날던 말든 무슨 상관이고, 당신 술 처 묵는 기 문제제. 저기 하리이틀 일이가? 여게 산 이래 귀에 못따가리 백히도록 듣는 기 일인데. 글씬하모 뱅기 소리 땜에 몬 살것다고 저 지랄이다. 지랄은. 새복에 눈 뜨자마자 소주병부터 찾는 인간이 세상천지 딱 한 사람 있제. 바로 당신 아이가. 핵교는 가끼요? 안 가끼요?
치아라 마, 저 뱅기 때매 잠을 설친기라. 이 정신으로 우찌 출근 하것노? 선상님들이 내보고 머라카것노? 내 손자 겉은 학생들은 또 머라쿠고. 내 오늘 마 출근 안 할란다. 니가 알아서 핵교에 전화 한 통 넣어라. 나는 마 요대로 잠 한 숨 더 잘란다. 술 더 없나? 니가 빈 병을 준기가? 이기 아무리 빨아도 나와야 말이제.
아버지는 소주병을 거꾸로 물고 쭉쭉 빨았다. 혀끝으로 날름날름 핥았다. 나는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장단에 웃음이 난다. 하루 이틀 일인가. 태어난 이래 늘 봐 오던 풍경이니 안 봐도 훤하다. 내가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누워서 하늘을 볼 때도 그랬을 것이다. 안 봐도 훤해. 무의식 속에 든 아버지 모습은 그래, 아버지 정자도 술에 취해 비칠거리며 어머니 난자와 만났을 것은 불 보듯 뻔해. 그러니 내가 이 모양이지.
어머니가 슬그머니 이불을 들춘다. 나는 땀이 번질거리는 눈으로 어머니를 올려다본다. 어머니가 내 얼굴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넘긴다. 내 눈가를 쓱 훔친다. 미안한 눈이다. 안타까운 눈이다. 불쌍해하는 눈이다. 울 것 같은 눈이다. 눈, 노리끼리한 어머니의 눈, 슬픈 눈이 나를 본다. 내가 헤벌쭉 웃는다. 어머니의 입가도 옆으로 찢어진다.
괘한나? 뱅기 소리 니도 듣기 싫제? 니 안 들으라고 내가 귀를 좀 막는다는 기 니 숨통 맥힐 뻔 했다. 철아, 퍼떡 일어나 목장 집에 가야지. 쇠들이 니 지달리다 병 나것다. 퍼떡 가 봐라. 올 때 우유 한 주전자 갖고 오는 거 잊지 마라. 저 인간 멕이 핵교 보내야제. 그래야 우리가 묵고 살제. 나가다가 아랫방 열어봐라. 너거 누부 들어와 자는지. 저 화상이 아침부터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놨는데. 지라고 자것나 마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불을 확 들치고 일어나 어머니 앞에 선다. 어머니는 내 다리 사이를 본다. 삼각팬티를 뚫고 나올 것처럼 부푼 내 양물을 쳐다본다. 꼴에 니도 사내라고, 빨리 가서 오줌 누고 온나. 어머니는 내 허벅지를 탁 친다. 밤새도록 참은 오줌이 찔끔거리며 나올 것 같다. 나는 한 손으로 내 거시기를 꽉 잡고 마당을 가로 질러 뒤뚱거리며 달려간다. 저것이 온전하기만 하모 올매나 좋을꼬. 등 뒤에서 어머니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합판으로 만든 변소에 들어가기 바쁘게 물건을 꺼내 오줌을 눈다. 콸콸 수돗물이 터진다. 누런 물은 시커먼 직사각형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얼룩이가 꼬리를 치감아 올리면 거기 도톰하고 납작한 곳이 벌어지며 콸콸 쏟아지는 오줌, 얼룩이의 오줌발을 닮았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춥다. 변소에서 나오자 어머니는 벽에 걸어놨던 작업복을 걷어 내민다. 우주복이다. 나는 우주복만 입으면 멋쟁이 신사가 된다. 나를 기다리는 얼룩이 친구들의 퉁퉁 불은 젖통이 눈앞에 어룽거린다. 빨리 가야지. 마루 밑에 밀어 넣어 놨던 쇠똥이 묻은 장화를 꺼내 신자 어머니는 내게 노란 주전자를 내민다. 어머니가 주는 노란 양은 주전자를 받아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우리 집 대문은 파란색이다. 파란색이지만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녹물이 벌겋다. 낡고 찌그러진 파란 대문 두 짝이 엇갈려 아귀가 맞지 않는다. 대문을 살짝 밀고 나와 누나의 방을 엿본다. 대문 옆에 붙어있는 아랫방은 조용하다. 누나의 방은 골목을 보고 있다. 출입문이 골목 쪽에 있다. 골목으로 여닫이문이 달린 누나의 방은 안채를 등지고 있지만 대문 안쪽으로 작은 쪽문이 있어 안집으로 들락날락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그 방은 남의 방이었다. 셋방으로 내 놓았었다. 누나가 자기만의 방 타령을 하기 전까지. 자기만의 방이라.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소설이었던가. 누나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그 책을 읽다가 누나에게 혼쭐이 난 적이 있다. 누나는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사족이고, 어쨌든 누나와 나는 사천농고를 졸업했다. 그 방은 누나가 축협에 취직을 하기 전까지 셋집으로 남에게 내 줬었다. 누나가 취직을 하면서 자기만의 방을 고집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세 들었던 사람을 내 보내고 그 방에 누나를 세 들였다. 누나는 봉급에서 방세를 지급해야 하는 의무를 떠안았다. 아버지는 세상에 부모 자식 간에도 공짜는 없다는 거였다. 고등학교까지 보내줬으니 당연히 밥값은 해야지. 아버지의 말은 한 치도 깔축없었다.
축담에는 누나의 빨간 구두와 까만 구두 한 켈러가 더 놓여 있다. 어떤 때는 남자의 구두가 있기도 하다. 남자의 구두가 있는 날은 도둑고양이가 된다. 쪽문을 통해 누나 방 옆으로 난 작은 통로를 통해 축담까지 간 후, 그 구두에 장화에 묻은 쇠똥 한 덩이를 떼어 넣어놓는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누나의 축담에는 누나의 구두만 얌전히 놓여 있곤 한다. 남자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예쁜 검정 구두가 더 있다. 궁금하다. 누나보다 작은 구두, 여자 구두다. 나는 호기심을 누를 수 없다. 누나의 여자 친구라면 음음. 감을 잡았다. 금세 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홧홧하다. 나는 발자국 소리 안 나게 조심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가 쪽문을 열고 누나의 방문 앞으로 갔다. 살그머니 누나의 방문을 열었다. 누나는 없고, 침대에는 이불만 둥그렇게 놓였다. 이불 속에 든 누나는 고치 속에 든 애벌레다. 발가벗고 꿈틀거리는 애벌레, 언제나 비상을 꿈꾸는 불쌍한 누나, 꼭 이 집에서 탈출하고 말 거야. 너만 알고 있어. 지긋지긋한 이 지옥에서 탈출 하는 게 내 꿈이야. 시시한 놈은 싫어. 이 미모, 이 몸매, 어때? 죽이지? 난 모델이 될 거야. 이 촌구석에서 썩기엔 아깝지? 돈이 조금만 더 모이면 서울로 갈 거야. 누나는 거웃이 무성한 곳을 두 손으로 살짝 가리고 나를 보고 폼을 잡는다. 탱탱한 젖무덤이 출렁거리며 내 얼굴에 닿는다. 나는 누나의 젖꼭지를 꽉 물어주고 싶다. 내가 손이라도 뻗치면 누나는 찰싹 내 뺨을 후려친다. 이 바보 등신아, 어디다 손을 대, 저리 가, 안 가? 꼴에 지도 남자라고.
야, 추워 문 닫아!
이불 속에서 누나의 얼굴 두 개가 쑥 솟아난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누나 둘이가 얼굴을 내 놓고 킥킥 웃는다. 나도 씩 웃으며 일어나 궁둥이를 툭툭 털었다.
놀래기는, 쇠똥냄새 난단 말이야. 빨리 가서 우유나 가져와. 우리도 갈증 나거든.
나는 코를 만지작거린다. 손가락으로 아버지 딸기코를 그린다. 술병을 뒤집어 마시는 흉내도 낸다. 인상을 팍 찡그리고 눈을 씰룩 거린다.
누나들이 다시 끼들끼들 웃는다.
알았다. 알았으니 됐지? 문 닫아 빨리. 춥단 말이야. 누나 출근하기 전에 빨리 와. 참 너, 아저씨한테 명아 누나 여기서 잤다고 말해라. 까먹지 말고 꼭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럼 가 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나의 방문을 닫아준다. 누나의 품에 안긴 명아 누나가 한쪽 눈을 찡긋한다. 나는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누나들이 다시 끼들끼들 웃는다. 누나 둘은 애벌레다. 고치 속에 든 애벌레다. 언젠가는 예쁜 호랑나비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나는 호랑나비가 된 누나를 잡으러 잠자리채를 들고 따라갈 거다. 예쁜 우리 누나, 예쁜 명아 누나, 초등학교에서 왈패 가시내로 통했던 우리 누나, 누가 나를 바보라고 놀리면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그 아이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선명하게 냈던 우리 누나, 뒤뚱뒤뚱 걷다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책가방을 명아 누나 손에 잡히고 나를 업고 산비탈 집으로 오던 누나, 셋이서 비행장으로 놀러 가면 비행장에 근무하는 아저씨들이 예쁘고 착하다고 막대사탕을 쥐어주던 두 누나, 세상에서 젤 예쁜 우리 누나 이준서와 박명아.
누나보다 세 살이 어린 나는 사천비행장이 생긴 해에 태어났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 일곱 달이 되었을 때란다. 하루는 엄청나게 큰 비행기가 사천 비행장에 불시착 한 적이 있었다. 그 비행기는 우리 집 지붕을 덮칠 듯이 낮게 날아 비행장 활주로 쪽으로 갔고, 그때 마침 시장 보러 사천읍내 장터에 갔다 오던 어머니는 멀리서 우리 집을 덮칠 것 같은 비행기를 바라보며 걷다가 허방에 빠져 앞으로 꼬꾸라졌다고 했다. 남산만한 배는 땅바닥에 사정없이 배치기를 했고, 시장바구니에 담겼던 산 고기들은 삼천포 바다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날뛰고 게는 옆걸음을 쳤다지. 무는 두 쪽이 나고, 두부는 으깨져서 만두 속이 되었다지. 나는 그렇게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어머니 뱃속에서 탈출했다.
아이고, 말도 마라. 철아, 니가 이리 된 거는 다 그 비양기 탓이데이. 고마 배가 참지름 털에 넣어 쥐어짜는 거 맹키로 아푸더라. 에미는 부끄런 줄도 모르고 길바닥에서 대굴대굴 굴린 기라. 그때 길 건너 목장 집 아재가 안 봤시모 니도 내도 이승 사람 안 됐을 기라. 마침 목장 집 아재가 본 기라. 내를 덜치 업고 뛰었다 안 카나. 우리 동네 산파 할매 집으로 갔다 아이가. 그라이 우짜것노. 그 목장 집 아재가 니 생명의 은인인 기라. 그라이 니도 은혜를 갚아야 항께 꾀부리지 말고 쇠젖을 잘 짜 조야 한데이.
내가 명아 누나 집이자 젖소를 키우는 목장 집 일꾼으로 나가게 된 내력이다. 내가 사는 곳은 사천읍 구암리, 사천공항 바로 지척의 동네다. 진주에서 삼천포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 손 편에 사천공항이 있고, 사천 공항을 지나 고갯마루를 오르는 길 왼쪽의 축대 위에 있는 동네가 우리 동네다. 그 구암리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집이 우리 집이고 우리 집에서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오면 사천초등학교가 있다. 아버지가 다니는 학교다. 아버지의 직책은 학교 소사, 학교의 잡역부란 뜻이다. 사천공항에서 고갯마루를 올라와 삼천포 쪽으로 내리막길을 넘으면 국도 변 아래 목장 집이 있다. 목장 집은 사천공항 옆에 있는 공군기지의 높은 회색 담장 옆에 있다. 공군기지의 담장과 목장 집 마구간 사이의 좁은 틈새에는 다랑이 몇 개가 포개져 있다. 목장 집은 여러 개의 손바닥만 한 다랑이를 밀어 맨 위에 축사를 짓고 나머지 땅은 소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얼룩이는 좁은 축사가 싫어 늘 마당에서 놀았다. 어떤 녀석은 울타리를 따라 뱅뱅이 질을 하고, 어떤 녀석은 뒷발질을 탁탁하고, 어떤 녀석은 쇠똥 밭에 느긋하게 배를 붙이고 앉아 꼬리를 탁탁 치며 놀지만 내 발자국 소리만은 기차게 알았다.
음무우우........
얼룩이의 합창소리를 듣고 내 발걸음도 빨라진다.
나는 새벽마다 도로 축대 위에 있는 우리 집에서 내려 와 큰 길을 건넜다. 내리막길에 그어진 하얀 점선을 따라. 내리막길을 신나게 쌩쌩 달리는 자동차는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느렸다. 느릿느릿 걸었다. 나처럼 느림보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에게 그 길은 목숨을 내 놓고 건너야 하는 위험천만한 건널목이었지만 어머니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속삭여 주실 뿐이었다.
길 건널 때 아래 위 잘 봐라. 헛눈(딴눈) 팔았다가는 니 에미 다시는 볼 수 없을 기다.
나는 절대로 헛눈 팔지 않았다. 어머니가 없으면 나도 없으니까. 어머니가 없으면 누나도 아버지도 없으니까. 술병을 숟가락처럼 빨고 사는 아버지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칠삭둥이라느니 바보등신이라고 내치지 않았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길하고 입을 맞춘 나니까. 길치는 절대로 될 수 없었다. 자동차나 비행기 소리에 지독히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자동차가 사천공항 입구를 지나오는지, 고갯마루에 올라오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삼천포에서 올라오는 차 역시 소리로 어디까지 오는지 알았다. 차가 보이지 않아도 어디만큼 버스가 오고 있는지, 트럭이 오고 있는지, 하늘에 비행기가 보이지 않아도 비행기가 어디만큼 날고 있는지 알았다.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 챈 사람은 아버지였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을 거다. 그때 아버지는 젊었다. 술을 마셨지만 딸기코는 아니었다. 아침마다 나를 리어카에 태우고 학교에 갔었다. 리어카는 아버지의 자동차였다. 학교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리어카에 담아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그때만 해도 우리 집은 연탄아궁이가 아니라 불 때는 아궁이었다. 장작이나 삭정이 같은 땔감이 마당가에 가득 쟁여 있었다. 아버지가 수시로 인근 산에 가서 해 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학교에서 가지고 오는 쓰레기는 좋은 땔감은 아니지만 불쏘시개로는 괜찮았다. 종이는 종이대로 분류하고, 나뭇잎은 나뭇잎대로 분류하여 우리 집 땔감이 되었다. 가끔은 리어카에 돌이나 사금파리 같은 태울 수 없는 것들을 싣고 건널목을 건너 공군 부대 담장 아래 빈터에 갖다 버릴 때가 있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친구가 없던 나는 늘 아버지가 퇴근할 때까지 그네를 타거나 미끄럼틀에서 놀았다. 아버지가 퇴근을 하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나올 때까지 하늘을 보며 공상을 하거나 운동장에 그림을 그리며 흙장난을 하며 놀았다. 나는 칠삭둥이였지만 깡패 누나가 있는 소사의 아들이라 아무도 쉽게 놀릴 수 없는 존재였다. 해거름이 내리는 운동장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가을이었나 보다. 노란 은행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졌고, 은행나무 잎을 손으로 긁어모아 그 위에 누워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눈이 시리게 바라봤다.
철아, 집에 가자. 춥제?
아버지였다.
이거 집에 갖고 가
나는 내가 깔고 누웠던 은행나무 잎을 한 아름 안았다.
오늘은 안 된다. 다른 걸 갖다 내삐야 된다. 낼 싹 씰어서 담아가자. 나뭇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지달리다가는 온 마당이 은행잎 천지가 되것다. 교장선상님이 오늘 청소 하라카더라마는. 가자.
아버지의 리어카에는 깨어진 벽돌과 항아리 깨진 것이 가득 담겨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기거하는 관사를 수리한다더니 거기서 나온 쓰레기 같았다. 아버지는 리어카를 끌고 나는 아버지 옆에 서서 잰걸음을 치는데 건널목이 보이는 곳에 닿았었다. 아버지는 내게 먼저 집으로 올라가라 했다. 우리 집은 건널목을 건널 필요가 없었지만 아버지는 리어카에 든 것을 버리고 와야 하기 때문에 건널목을 건너야 했다. 나는 집으로 오르는 골목으로 들어서고, 아버지는 길 아래위를 살피며 건너려는 찰나였다. 내 귀에 차바퀴 구르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것은 커다란 트럭이나 버스가 최고 속도로 고갯길을 내려온다는 뜻이었다. 건널목에 막 들어선 아버지를 향해 악을 쓰며 달렸다.
아바아~~~~지 자~~~안깜만
길에 들어섰던 아버지가 나를 돌아봤다. 내가 사색이 되어 아버지에게 달려가자 아버지도 깜짝 놀라 리어카를 끌고 길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아버지를 꽉 끌어안았다. 그 순간 고갯마루에서 굉음을 울리며 내리막길을 질주해 가는 커다란 트럭을 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