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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l 04. 2023

 산 사람은 살고

산 사람은 살고    

  

  그는 문화원에서 가는 야유회에 참석하고 나는 온종일 집에서 논다. 아무도 간섭할 이 없으니 적당히 시간 때우기 해도 되련만 부지런히 대청소를 하고, 빨래를 해 넌다. 요즘 내가 무엇을 하고 사나 싶다. 책 보는 것도 뜸하고, 중국 드라마만 줄 창 켜 놓고 본다.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눈으로 인터넷 화면만 바라본다. 드라마 속 인간의 진심은 조석지변이다.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라고나 할까. 인간이란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당연시 해 버릴 수도 있을까. 인간의 애증 관계, 권력을 향한 욕망덩어리, 믿음과 불신, 빤한 이야기를 빤하게 본다. 드라마를 보다가 눈이 피곤하면 눈을 감는다.

 

 오전이 오후가 된다.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수영장에 간다.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줄기차게 수영을 하나 싶다. 건강을 챙기려는 목적보다 물이 좋아서 물에서 노는 시간이 무념무상이라 수영장을 오간다. 온종일 다른 사람 만나는 곳이 수영장이기도 하다. 누구를 만나 밥을 먹는 것, 여행을 하는 것조차 귀찮아져버린 일상, 문화원이든 복지회관이든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그 속에 끼어들 자신이 없다. 사람 많은 곳은 한사코 피해 다니는 격이다. 더불어 사는 사횐데. 

 

 그를 왔다. 아침에 떠날 때는 빈손이었는데 가방 하나를 들고 있다. 그의 얼굴이 밝지 않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죽마고우 친구가 죽었단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친구다. 한 해에 태어난 일곱 명의 친구는 오래전부터 계모임을 한다. 젊어서는 자주 만났지만 나이 들수록 만남의 횟수가 뜸했다. 그 친구 중 두 명은 퇴직하고 고향에 들어와 살고, 한 친구는 산기슭에 작은 별장을 지어놓고 오갔었다. 주말이면 고향 별장에 왔다가 이삼일 있다 가곤 했는데. 그 친구가 죽었단다. 암이었단다.   

 

 오월 들어 이승 떠난 사람들 소식이 여러 장이다. 팔구십 대 노인이 돌아가셨다면 잘 가셨구나 싶지만 육칠십 대 초반이 떠났다면 아릿하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명운이라고 한다.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부부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병도 없이 건강하던 사람도 자는 잠에 갈 수도 있다. 오늘 이승 떠난 그의 친구는 고향에만 오면 친구들 청해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그의 마음이 많이 힘들 것 같아 조심스럽다.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음이 다가오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일곱 명의 죽마고우(竹馬故友) 중 건강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 지병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다. 노인의 길에 들어서면 병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건강하게 살다가 자는 잠에 가고 싶다는 것은 모든 인간의 바람일 따름이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병으로 오래 앓다가 죽거나 갑자기 죽는다. 나 역시 잔병치레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랫동안 환자로 살았다. 아파가며 사는 것이 노년이라지만 남은 인생이 참 길게 느껴져 불편하다. 어쩌겠나. 산사람은 살 수밖에 없는데.

                      202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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