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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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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ug 27. 2023

 꿈 땜 했다.

 꿈 땜 했다. 


    

  이른 아침이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새벽이면 시끄럽게 잠을 깨우던 새들이 모두 꼭꼭 숨었나 보다. 슬그머니 일어나 뒤뜰로 나갔다. 무성한 칡넝쿨 밑에서도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낮은 하늘은 전체적으로 회색이다. 나무의 우듬지조차 기립자세다. 큰비가 올 예정이라더니 전조증상이 무겁다. 골짜기 물조차 숨을 죽였는지 물소리조차 가냘프다. 흐르는 것이 숙명인 물이지만 소리 안 내고 흐르는 법을 터득한 것인지. 하룻밤 새 물줄기가 확 줄어들어버린 느낌이다.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손에 잡히는 풀도 뽑아 울타리 너머로 던진다. 움직임을 멈춘 식물들조차 긴장한 것 같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손바닥을 편다.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굵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들이 목소리를 낸다. 조심해. 조심해. 비가 쏟아진단다. 저희들끼리 소식을 주고받는다. 


 새벽꿈에 분리된 나를 봤다. 내가 상반되는 둘이었다. 한쪽은 정직했고 한쪽은 변덕스러웠다. 의식의 분리가 일어나는 것인가. 페트 한트케의『어느 작가의 오후』를 읽다가 이입된 감정이 꿈으로 표출하는 것인지. 간밤은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넷플릭스로 영화 한 편을 봤다. 『헝거』태국작품이었다. 뛰어난 거리 요리사인 오이와 유명한 요리사 폴과의 대결이다. 눈과 맛을 즐기는 부자들의 요리와 살기 위해 먹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리는 어떤 차이가 나는지.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의 뒤끝은 허무했다. 기다리는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을 보면서 <엄마 밥>을 최고로 치는 남매를 생각했다. 


 식탁 위에 놓인 오이물김치 맛을 봤다. 하룻밤 새 새콤하게 익었다. 아침을 오이물김치와 삶은 밤과 커피로 때우고 다시 소설책을 잡았다. 『어느 작가의 오후』 주인공 작가처럼 나도 내 주변의 사물을 깊이 바라보고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방 굴뚝을 감아 오른 능소화의 화려한 무더기 꽃과 마당가에 갓 피기 시작한 범부채 꽃 몇 송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생각을 하지 말라했지만 끊임없이 오가는 생각을 놓아버릴 수는 없으니 흘러가고 흘러오는 대로 둘 뿐이다. 


 치과에서 오란다. 인공치아 마지막 손질이다. 불편하진 않지만 이물질이 끼인 것처럼 둔한 잇몸이다. 이빨을 뽑아내고 오랫동안 방치했던 자리라 그럴까. 잇몸이 튼튼해서 인공치아 박기도 수월하다는 의사 말이 빈말 같다. 처음 어금니를 몽땅 뽑았을 때는 잇몸이 선천적으로 약해 인공치아를 박을 수 없고 기다렸다가 틀니를 하라고 했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을 생각하며 내버려 두었더니 잇몸이 튼튼하단다. 인공치아 박아도 끄떡없단다. 약이라곤 산초기름 먹은 것 밖에 없다. 이가 아프거나 잇몸이 아플 때면 잠자기 전에 산초기름 한 숟가락 머금었다가 먹곤 한다. 산초기름 효과라고 믿는다. 


 치과에서 기다리는 시간, 인공이빨 맞추는 시간 보태서 두 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인공 치아를 다시 손질해야 한단다. 며칠 더 걸리겠단다. 소득도 없이 치과를 나서는데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찼다. 겨우 집에 오긴 했는데 어지러웠다. 냉기가 싫어서 군불을 조금 때 놓고 현관에 들어서다 엎어졌다. 왜 이러지? 조심스레 일어나 싱크대 앞에 섰는데 나도 모르게 휘청 넘어갔다. 식탁을 꽉 잡는 짧은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른쪽 무릎이 꺾인 것 같았다. 움직이지를 못하겠다. 어찌나 아픈지 진땀이 솟았다. 꿈땜했구나. 오른쪽 다리를 못 쓰면 운전도 못할 텐데. 병원 데려가 줄 누군가도 없다. 뿔뿔 기어서 거실에 나와 맨소래담 마사지를 하고 비상용으로 처방받아둔 진통소염제를 먹었다.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진땀을 흘렸다. 뼈는 괜찮을까. 인대가 손상당한 것일까. 견뎌보는 수밖에 없다. 얼음찜질을 하고 맨소래담 마사지를 계속했다. 무릎 보호대를 차고 조심스럽게 움직여본다. 뻗정다리가 되어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수반한다. 마침 아들이 전화를 했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별일 없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부터 시켰다. 아들과 정신적 교감인가. 아들은 골짝에도 올라가지 말고 무거운 것 들지 말고 빨래도 하지 말란다. ‘넵, 아드님 걱정 마이소.’ 농담으로 아들을 안심시키고 다시 얼음찜질을 했다. 내일도 움직이기 어려우면 119라도 불러야겠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다치면 문제가 되는 것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내일 아침에는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새벽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둘로 상반된 성격이었던 꿈 중에 내가 다친 것은 선한 나였을까. 변덕을 부린 나였을까. 꼼짝없이 이틀간 묵언 아닌 묵언을 하고, 혼자 있어야 할 판이다. 다행히 오후가 되니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여전히 집안에서도 걷는 것이 불편하다. 덕분에 거실에 누워 책만 잡고 빈둥거렸다. 정형외과 안 가고 버틸 수 있으려나. 남편의 부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노인이 될수록 사람 곁에 살라고 하던가. 노인이 되면 혼자보다 둘이 낫고, 병원 가깝고, 시장 가까운 곳, 평지에 유모차 끌고 다닐 수 있는 곳에 살아야 한다던가. 


 그래도 나는 늘 푸름을 볼 수 있는 조용한 산골 내 집이 좋다. 사람 소리는 없고 자연의 소리만 가득한 내 집이 좋다. 내 무릎이 삐끗한 것은 변덕 부리지 말고 느긋하게 마음 챙기라는 뜻이 아닐까.    

                              202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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