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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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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Oct 11. 2023

통했다. 이심전심

 통했다. 이심전심   

  

  아침부터 농부랑 진주 시내를 헤맸다. 농부는 낡은 난로를 뜯어고쳐 화력 좋고 완전연소체로 만들어 보겠다고 의욕이 넘친다. 새로 산 난로가 화력이 떨어져 마음에 안 든단다. 나는 낡은 난로 고쳐봤자 돈만 낭비한다고 말렸지만 소용없다. 뭔가에 꽂히면 자기 고집을 밀고 나가는 농부다. 좋게 말하면 장인정신이 있어서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돈 안 되는 일만 벌이는 고집불통이다. ‘해 보소. 소가 뒷걸음치다 쥐도 잡는다는데. 대신 사랑방에 놓으소. 손님들 오면 머물 수 있게.’ 말려봤자 소용없으니 밀어주는 거다. 


 철강공장을 돌고 절곡, 절단 공장을 찾아 헤맸다. 주 오일 근무가 일상화 된 것을 어디서나 느낀다. 꼭 잠긴 공장도 많다. 토요일은 오전 근무만 한다는 공장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 겨우 찾아든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을 건질 수 있었다. 집에 있던 쇠를 끊으려 찾아간 절곡 공장은 녹 쓴 쇠는 재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 작업을 해 줄 수 없단다. 500만 원이 넘는 쇠 자르는 기계가 망가질 수 있단다. 새 것으로 사는 게 낫단다. 돈도 안 되고 귀찮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얼굴이다.  


 배도 고프다. 우선 배부터 채우자.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끔 들리는 산사 아래 있는 쇠고기 국밥집이다. 육전 정식을 시켜놓고 가게 앞에 펼쳐진 황금 배를 살핀다. 해마다 이맘때는 조생종 황금 배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지난해보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농사 잘 지었네요. 당도는 어때요?’ 맛있단다. 지난해는 배가 자잘했는데. 어떤 할머니는 파지 배를 많이 달라고 떼를 쓴다. 아주머니는 손이 크다. 덤을 넣어주는 폼이 촌로다. 나 역시 굵고 좋은 황금 배 두 뭉텅이를 샀다. 아주머니는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슬쩍 두 개를 더 넣어준다. 그 덤이 정이다. 농사지은 것이기에 덤을 줘도 안 아깝다. 장사꾼이라면 흠 있는 배라도 덤 주기 어렵다. 배 하나가 돈으로 보이기 때문이리라. 


 추석이 다가오면 엄마의 자리는 바쁘다. 며느리의 자리를 벗어났으니 홀가분할 것 같은데도 엄마의 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부모님을 위해 챙기던 먹을거리를 자식들 위해 챙기게 된다. 곰국을 끓여볼까. 추어탕을 끓여볼까. 생각 하다가 피식 웃는다. 두 어른이 계실 때는 두 어른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해야 했던 음식들, 곰국이나 추어탕, 부침개, 튀김, 생선, 나물 예닐곱 가지는 기본이었다. 손 많이 가는 음식들이다. 시댁 식구들 맞이할 기본 메뉴였다. 올해는 우리 애들에게 먹일 반찬거리를 챙기는 나를 본다.


 애들에게 이번 추석에는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엄마, 아무것도 하지 마. 우리가 가서 할게.”

 “그래도 너희들 먹고 싶은 거 한두 가지는 준비해야지.”

 “하지 마. 그동안 고생했는데 올 추석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

 말만 들어도 고맙다. 올 팔월에 시어머님도 선산으로 모셨다. 형제자매들 올 일도 없다. 그런데도 명절이 다가오면 챙기던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 참기름도 짜야 하고 고춧가루도 빻아야 한다. 시어머님 관리감독 하에 시댁 식구들 나누어주려고 챙기던 선물이 이번에는 내가 직접 우리 아이들에게 주려는 선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저녁에 딸이 미리 예약해 준『친정엄마와 2박3일』연극을 보러 갔다. 딸과 같이 봤더라면 딸이 펑펑 울었을 것 같다. 엄마 역의 강 부자 배우는 실제 80세가 넘은 줄 안다. 여전히 고왔다. 화장발이라기보다 곱게 늙어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노령임에도 아낌없이 예술 혼을 불사르는 그녀를 보며 대본이 필요 없는 배우구나 싶었다. 몸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는 엄마로서 몸에 밴 모습이기도 했다. 


 연극의 무대는 1970년 대 전북 시골마을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딸을 서울로 보내 대학 공부를 시킨 부모들, 그 딸이 대기업에 취직하고 부잣집 며느리가 된 것이 자랑스러운 무지렁이 촌 엄마, 그 딸을 기다리며 시골 촌집을 지키고 있는 엄마, 나는 친정아버지를 생각했고, 딸을 생각했다. 농부는 시어머님을 생각하고 울었다. 자식을 도시로 보내 공부시키고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은 너무 비약적이었다. 그 귀한 딸이 암에 걸려 죽는 것이다. 희극이면 나았겠다.


 연극을 보고 집에 도착하니 택배가 와 있다. 남해 아우가 보낸 곰국박스였다. 통했구먼. 추석에 곰을 해 볼까. 갈비를 해 볼까. 망설였는데 한방에 해결됐다. 많이도 보냈다. 우리 식구 일주일은 포식해도 되겠다. 그 집 어른의 뫼를 벌초해 준 농부에게 보낸 고마움의 표시라지만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뻤다. 날마다 택배로 받는 추석 선물이 저장고에 들어간다. 희한하게 나는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선물을 받을 때가 많다. 이심전심이 통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그럴까. 인덕이 많아 그럴까. 고마울 따름이다.

                     202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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