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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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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06. 2023

아아~~세월

 아아~~ 세월    

 

 첫눈이 왔다. 지붕과 마당을 뽀얗게 덮은 눈 위를 보리가 신나게 뛰어다닌다. ‘여보, 아침부터 보리를 풀어줬어? 첫눈 왔다고?’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치자 ‘무슨 소리야. 보리를 왜 풀어줘?’ 식빵을 굽던 농부가 다가온다. 보리는 우리를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축담에 올라와 얌전히 앉아 꼬리를 흔든다. 목줄이 닳아서 저절로 터진 것이었다. ‘그래도 멀리 안 가고 마당에서 노니 보리가 철이 들었네.’ 내 말에 농부는 실컷 놀다 왔을 거란다. 개의 눈에는 하얀 눈만 보인다던가. 첫눈 온 날 보리도 행복한 날, 우리도 행복한 날이 될까. 


 동네이장님이 점심 먹으러 내려오란다. 마을사람들 단체로 점심 먹는단다. 오랜만에 나도 동네잔치에 참석하기로 했다. 농부랑 11시 반에 회관 앞으로 나갔다.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 촌로들이 다투어 반긴다. ‘와 그리 보기 힘드노?’ ‘자주 좀 오제.’ ‘감 일은 끝났나?’ 곱게 꾸민 촌로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아무리 꾸며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 검버섯 핀 얼굴, 햇볕 기미가 까맣게 낀 피부, 자글자글한 주름살, 머리카락은 까맣게 염색을 했지만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 촌로의 모습들이다. 음식점에서 승합차 두 대가 왔다. 동네 사람들이 올라탄다. 봉고차 두 대에 모두 탈 수 있는 인원이다.


 동네 노인들 대부분 팔십이 넘었다. 내가 가장 젊은 측에 낀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을 나이에 동네회관 부엌에 들어설 안노인이 없다. 보통 동네잔치에 음식 만들기는 이장부인이 주선하거나 생활개선회 회원들이 봉사를 해 왔지만 생활개선회 회원도 모두 팔십 노인이 되었다. 몇 년은 음식을 시켜 회관에서 먹기도 했지만 뒤처리할 사람 또한 귀해졌다. 주방을 책임질 안노인이 없어지자 음식을 시켜먹거나 음식점으로 가서 먹는다. 그 사이 코로나펜데믹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동네 단체 모임은 음식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동네 사람들 거의 모였다고는 하나 겨우 스무 명 남짓이다. 그 중에 남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돌아가신 분도 많고,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긴 분도 있다. 음식점에 빙 둘러 앉은 어른들은 그나마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할머니들은 서로 권커니 잣거니 하며 음식을 먹는다. 동네 돈으로 먹는 밥 한 끼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을까. 노인은 돈이 있어도 쓰기가 어렵다. 읍내 마트에 나가거나 장날 나들이를 해야 하는데 집 나서기 어렵다. 노인은 시간 차 타고 나갔다 오기도 버거운 세월을 산다. 자연히 자식들 기다리는 낙으로 산다.


 모두 시어른 소식을 묻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 팔월에 두 어른 모두 돌아가셨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아이고, 그동안 참 고생 많이 했다. 호난 시아베 모신다고 고생한 줄 삼이웃이 다 알제. 인자 좀 편하게 지내라. 일도 고마하고. 몸은 좀 나은 거 같네. 수술 했디나?’ 묻는다. 우선 걸음걸이가 낫단다. 머리만 염색하면 십 년은 젊어 보이겠단다. 팔십이 넘은 어른의 눈에 겨우 칠십 문턱을 바라보는 나는 아직도 새댁이다. ‘니는 늙지 마라.’ 우스개 같지만 그 말 속에는 가는 세월에 대한 한스러움이 담겨있다. 늙기 싫다고 안 늙어지나.  


 모두 점심을 먹고 음식점을 나섰다. 다시 승합차 두 대에 나누어 탔는데 ‘우리 할멈 탔소? 이 차에는 없는데 저 차에 탔는가?’ 팔팔한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찾아 승합차를 쫓아다닌다. ‘저 차에 탔소. 할멈은 되게 챙기네. 여서 할멈 이짜삐도 괜찮소. 집 못 찾아 오까.’ 이웃 할머니가 퉁을 주자 할아버지는 승합차에 오르며 ‘우리 할멈은 안 무 탈이오. 아침은 굶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은 그냥 자는 것이 일상이오. 오늘 쇠괴기 몇 점 먹었더니 눈이 튄다네. 기운 나서 오데로 내 뺐삤는가 싶어 그러요. 내가 가난해서 쇠괴기 사 줄 형편도 아니고.’ 우스개를 한다. 


 노인의 특징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거다. 오늘 점심도 쇠고기 버섯전골인데 밥은 그대로 남기고 전골만 한 그릇 씩 먹고 일어나는 노인들이 대다수다. 밥도 술도 추가주문이 없다. 내가 오십 대만 해도 동네잔치가 있는 날은 밥도 술도 모자랄 정도로 옹골차게 드시던 어른들이다. 음식점에 밥 먹으러 간다고 나름 씻고 바르고 좋은 옷을 꺼내 입었지만 촌로의 모습은 추레하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늙어가는구나. 그들의 모습이 몇 년 후 나란 것을 깨달을 따름이다. 곱게 늙어가기도 어렵고, 편안하게 죽기도 어려운 세월이 남아있다. 어쩌겠나.


 그렇게 한 나절이 갔다. 첫눈처럼 그동안 몰랐던 삼이웃 소식 한 아름 안고 온 날, 허전한 마음자리에 바람은 차갑기만 하고, 서리 맞은 나뭇잎은 바람에 떨어져 뒹군다. 오후가 되자 첫눈도 녹아버리고 칼바람만 분다. 나는 추워서 달달 떠는 상추 한 아름 따 들이고 서리 맞은 무를 쓰다듬어줬다. 무가 얼었다면 밭에서 녹은 후에 뽑아 들여야 싱싱하다. 배추는 추워야 단맛이 든다. 내일부터 날씨가 풀린다니 다행이다. 올해는 추위가 일찍 왔다. 첫눈도 일찍 왔다. 


 아직 단감 수확을 한다는 젊은 농군이 대봉을 가져왔다. ‘단감은 얼면 못 써, 이삼일 추웠는데 언 단감 따 봤자 돈 안 돼’ 그래봤자 쇠귀에 경 읽기다. 단감이 괜찮더란다. 오늘도 단감을 땄단다. 단감 가격이 아직 좋단다. ‘자잘한 것은 아깝다 생각 말고 버려. 일만 많지. 경비 제하면 남는 게 없어. 죽어라 고생하고 오히려 손해야’ 그래봤자 소용이 없다. 소를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이치다. 단감농사 오래 지은 어른이 말을 하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손익계산에 빠른 젊은 농군은 듣지를 않는다. 그 농군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나를 농부는 ‘대봉도 알아서 팔게 둬라. 당신이 팔아준다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고생 그만 해라.’ 일침이다. 


 새벽시장에 가서 소매로 대봉을 판다는 청년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청년의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난전에서 장사를 한 경험이 있는 것일까. 논밭에 심은 것은 뭐든지 준비해서 새벽시장에 나가 판단다. 오늘도 쪽파랑 대봉을 팔러갔단다. 청년이 장거리를 실어다 시장에 놔주면 어머니는 온종일 그 물건을 팔고 파장 무렵 청년이 모시러 간단다. 대봉 네 박스를 주문 받아줬더니 두 박스만 가져왔다. 두 박스는 다른 곳에 주문이 들어와 팔았단다. 우리고장은 대봉과 단감 고장인데 대봉농가가 실농했다. 덕분에 대봉이 귀하다. 가격도 비싸다. 


 오지랖 넓은 짓 안 해야겠다. 팔아준다고 내게 떡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간상인처럼 거간비를 받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그런다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손 떼라.’ 지당한 말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도 자꾸 팔아주고 싶다. 내가 오지랖이 넓은가. 어쩌면 나를 믿고 우리 집 단감과 대봉을 주문해 주는 오랜 지인 때문이기도 하다. 얼굴도 모르는 고객이지만 신뢰 하나로 쌓아온 정이 깊어서 거절을 못했고 솔직히 좋은 대봉을 구해 보내주고 싶을 따름이다.


 낮에 만난 동네 촌로들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아아~~ 세월’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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