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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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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10. 2023

시제 떡을 먹으며

시제 떡을 먹으며


 그는 두루마기를 챙긴다. 지난해 단 동정에 때가 묻었는지 살핀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본다. 동정의 목 부분이 누렇게 변색됐으면 새 걸로 갈아야 한다. 지난해 쓰고 남은 동정을 어디 뒀더라. 머릿속을 굴리며 그의 눈치를 본다. 동정을 안 갈아도 될 모양이다. 한두 번 입고 걸어뒀으니 동정이 깨끗한 모양이다. 혹여 누렇게 변할까 봐 수건을 씌워둔 것이 효과가 있었나. 요즘은 한복집에 가도 남자동정을 구하기 어렵다. 한복집도 귀해진 마당이니 동정 새로 다는 것도 일이다. 그는 두루마기를 차곡차곡 접어 종이가방에 넣는다. 


 시제 모시는 날이다. 아흔이 넘도록 장수하신 백부님과 시아버님도 돌아가셨고, 얼마 전에 백부님 댁 사촌 아주버님도 돌아가셨다. 올해 시제는 말들이 난분분하지 않을까. 백부님은 평생 동생인 시아버님을 문중의 머슴으로 부리셨고, 그가 시골로 돌아온 후 시아버님 대신 문중 일을 봤었다. 나 역시 시집오자마자 시어머님 대신 문중의 안사람 노릇을 했었다. 백부님의 명령에 따르면서 시제 때면 사나흘 씩 문중 손님들 뒤치다꺼리에, 제수거리 장만에, 손님 접대 하느라 파김치가 됐었다. 머슴노릇 실컷 해도 새경 한 푼 없는 무보수 봉사였다. 


 어른들 시대는 조상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셨고, 장남과 장손의 자리가 확고했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가난했던 문중 재산도 넉넉해졌다. 문중 머슴자리도 새경이 매겨져야 하지만 시댁 문중은 여전히 고리타분한 옛 습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중 대표는 백부님 댁에서 맡고 문중 머슴은 작은댁에서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세태다. 그는 ‘형님, 중종은 유사가 다 알아서 합니다. 돌아가신 형님이 대표니 어쩌니 했는데. 대표가 뭘 했습니까. 큰아버지처럼 전화로 지시만 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리 할 수 없습니다. 형님이 대표와 유사를 하시든지. 저보고 하라면 제게 권한을 다 주세요.’ 딱 잘라 말했단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진작 그렇게 해야지. 고지 먹은 것도 아니고 머슴도 아닌데 머슴노릇이라니, 같은 항렬에서 될 법한 일인가. 우리 문중만의 일은 아니지 싶다. 문중 재산 넘보는 후손이 있는 바람에 어느 문중이나 말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는 사십 년이 넘도록 문중 머슴을 했다. 이젠 그것도 내려놓고 홀가분해져야 할 칠십 대 노인이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문중이다. 해체되어야 마땅한데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가.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그 책이 생각난다. 그 책을 읽은 지가 언제였든가.  


 문제는 대표를 형님이 맡고 유사는 고향에 뿌리내린 농부에게 하라는 것이다. 고향에 산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문중 대소사를 봐 왔다. 사십여 년이 넘도록 문중 일을 해 온 그는 이제 그만하겠다고 했다. 형님은 대표를 맡자마자 선산 돌보기를 그에게 맡기려 한다. ‘형님이 알아서 하세요. 시골에도 일꾼이 없습니다. 인력에서 구해야 합니다.’ 거절했다. ‘고향에 사는 자네가 맡아서 해 줘야지. 내가 오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럼 대표고 유사고 제게 맡겨 주세요. 우리는 소문 중입니다. 여태껏 대표가 유사고, 유사가 대표했습니다.’ 농부는 거절했다지만 형님이 시키는데 안 하고 배기겠나 착한 당신.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어쩜 백부님을 보는 것 같았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고 자식은 그 거울을 보며 자란다고 했다. 백부님이 시아버님을 머슴 부리듯 했었다. 나는 시집살이하다 분가해 시댁 근처에 살면서 겪어본 나머지라 불만이 많다. 백부님 돌아가시면 동등한 입장이 될 줄 알았는데. 큰댁 아주버님이 백부님과 똑 같이 농부를 부리려고 한다는 점이다. 내가 새댁으로 시댁에 살 때 격은 일이다. 백모님은 무속을 믿었다. 무슨 액막이굿을 했었다. 그때 백모님이 그러셨다. ‘큰 집이 잘 돼야 안 되겠나.’ 산소에 큰 댁 잘 되는 무슨 방술을 했었다. 그 외에도 나를 정 떨어지게 한 몇 가지가 더 보태졌고 결국 나는 성깔 못 된 며느리가 되었다. 


 십수 년 전 어느 해였다. 문중 대소사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문중 시제 뒷바라지를 못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시어머님은 ‘내가 50년이 넘도록 해 온 일인데 네가 받아해야지. 그럼 누가 할 거냐?’고 화를 냈었다. 나는 ‘어머님이 지금까지 해 왔으니까 어머님 대에서 끝내 시라’고 했다. 저는 이 집 둘째 며느리다. ‘문중대소사 뒷바라지를 맡기려면 맏며느리인 형님을 불러 맡기라’고 항변했었다. 농부는 농부대로 집안 망신시킨다며 화를 냈었지만 내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그 결과 며칠에 걸려 갖추갖추 마련하던 시제 음식을 간단하게 줄일 수 있었다. 시제 전부터 오셔서 이삼일 씩 재실에서 주무시던 문중 어른들도 시제 당일 오게 되었다. 시제 모시고 먹는 점심도 음식점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여파는 상당했지만 나는 눈 찔끔 감고 귀를 막았다. 내 대에 끝내고 싶었다. 전통이니 뭐니 하는 것이 참 가소롭기만 했다. 여자들 등골 빠지게 하는 짓이었다. 


 이제 여자는 시제 때 참석을 안 한다. 여자가 참석해 봤자 미리 재실 청소하고 구석방에 앉았다가 제수거리 챙겨내고 점심 준비하고 뒷설거지하는 일이다. 제수거리를 놓고 잘했니 못 했니 타박하는 어른들 말씀 안 들어도 된다. 여자들이 참석을 거부하자 뒷설거지도 남자들 몫이 되었다. ‘당신은 0가 아니니 신경 끄소.’ 남편의 그 말에 돋친 것이다. ‘나는 0가 아닌데 왜 부리 묵소. 0가가 다 해야지. 같이 사는 여자는 종인 줄 아슈?’ 손님 삼시 세 끼에 문중 뒷설거지 도맡아 하던 내가 빠지자 친인척 형님, 동서, 아주머니도 빠지기 시작했다. 모두 손에 물 묻히기 싫어질 나이였던 것이다. 


 오후 두 시가 넘어 농부가 왔다. 시제 떡을 한 봉지 챙겨 왔다. ‘웬 일이오? 당신이 떡도 챙겨다 주고.’ 고시랑거리며 찰떡 한 덩이를 베어 물었다. ‘사람들이 많이 왔던가?’ 제법 왔더란다. 사촌 아주버님이 대표 운운해서 백부님처럼 그러지 말라고 했단다. ‘당신도 이제 칠십이야. 할 말 하고 살아야지. 우리가 큰 댁 머슴인가. 백부님과 큰 아주버님이 돌아가시니 작은 아주버님이 백부님 행세를 하려 드네. 어이없다. 그것도 집안 내림인가?’ 농담으로 얼버무렸지만 배알이 꼬인다. 왜? 생각해 보시라. 

               202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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