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잠을 자야 하나
자꾸 게을러진다. 읽을 책이 없다고 하자 딸은 도서관 다녀오잔다.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왔다. 빌려온 책을 쌓아놓고 제프리 디버의 『고독한 강』소설책을 먼저 잡았다. 첫머리를 펴자 금세 빨려들지만 여남 장 읽고는 덮어놓는다. 눈이 침침해서다. 책 읽기에도 벅찬 나날이다. 인터넷 왓차를 켠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역시 선남선녀들의 날개옷이 훨훨 날아다니는 중국 드라마가 최고다.
농부는 3주간 마음공부를 떠났다. 나는 내 보호자가 된 딸과 노는 시간이 즐겁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노는데 농부는 아내 건강을 못 믿는다. 과보호라고 툴툴거리지만 딸이 있으니 든든하다. 딸은 농부가 지시한 것을 빈틈없이 해 낸다. ‘이럴 때 백수 딸이 쓸모가 있지? 너무 좋아하지 마소. 돈 떨어질 때까지야.’ 딸은 당당하다. ‘울 집에 있으면 돈 쓸 일도 없는데. 엄마가 쓰잖아.’ ‘그렇긴 하지.’ 딸의 수중에 돈이 얼마 있는지 모른다. 돈 있냐고 물으면 늘 ‘내가 가진 건 돈뿐이잖아.’한다.
딸은 야물다. 저를 위해 돈 쓰기보다 ‘보고 싶은 책 있어? 주문할게. 엄마아빠 개량한복 한 벌 사 줘야겠네. 엄마, 수용 복 다 됐어? 아빠는 뭘 좋아할까.’ 이런다. ‘돈 쓸 필요 없다. 있는 옷도 다 못 입는다.’ 그런데도 내가 입는 옷들은 딸이 사준 게 제법 된다. 수영복은 낡았다는 말만 하면 배달된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젊은 너나 좀 가꿔라. 예쁜 옷도 사 입고, 화장도 하고, 사치도 좀 부려봐.’ 그렇게 말하면 대학 다닐 때 다 해 봐서 할 게 없단다. 마음공부 탓을 해야 할까.
그 딸이 서울 나들이를 떠났다. 집안 대청소까지 말끔히 해 놓고 갔다. 내게 이삼일 간 완전한 자유를 준다나. 나대지 말고 제발 조용히 책이나 읽고 있으란다. 밥 잘 챙겨 먹으란다. 삼십 대 딸이 육십 대 어미 보고 할 소린지 모르겠다. 그렇게 딸을 떠나보내고 혼자 있으려니 너무 조용하다. 슬그머니 텃밭에 나가 오이꽃을 감상하고 오이도 딴다. 풋고추 몇 개도 딴다. 올해는 고춧가루가 매울 것 같다. 약도 안 오른 풋고추가 맵다. 여름엔 풋고추 몇 개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어릴 때 기억에 사로잡힌다. 여름철 점심은 샘에서 갓 길어온 찬물에 찬밥 말아 풋고추 된장 찍어 먹는 것이 예사였다. 그 맛을 기억하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일찌감치 저녁을 챙겼다. 풋고추랑 된장만 내놓고 찬물에 밥을 말았다. 풋고추 서너 개에 밥 한 그릇 뚝딱했다. 딸도 남편도 없을 때 다이어트 해 볼까? 먹는 것을 줄여도 살이 안 빠지는 체질이다. 안 먹고는 못 사는 체질이라고 해 두자.
다시 소설책을 폈다. 사십 대 여자 수사관 캐트린 댄스의 활약이 기대된다. 인간 거짓말 탐지기라고 알려진 그녀는 사람의 표정, 목소리, 작은 행동 등에서 거짓말을 집어낸다. 흡입력 강한 소설이다. 범죄 스릴러물은 독자로 하여금 추리를 할 수 있게 해서 더 재미있다. 반전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다음 장면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범인은 누군가.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읽어가며 유추할 수 있다. 형사가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앞부분에 이미 범인이 나왔다.
강이 있는 작은 마을 솔리튜드 크리크에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마을 클럽에 밴드 공연이 있는 날 어딘가에서 불이 났고, 놀란 관중은 우왕좌왕하며 비상구로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몇 사람이 깔려 죽고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그 사건을 파헤치게 된 인간 거짓말 탐지기 여형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인간의 심리는 한 마디로 정의를 할 수 없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평생을 함께 산 부부도 서로를 모를 수 있다.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고, 누구 간섭도 필요 없는 혼자 있는 밤, 책 보다 컴퓨터 하다 드라마보다 보니 새벽이다. 잠자리에 들었다. 평생 자는 잠이다. 하룻밤 날 샌다고 달라질 것도 없던 젊은 시절이 그립다.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나는 하룻밤 날을 새고 나면 다음날은 소금 친 열무 같아진다. 잠 오면 자고, 잠 안 오면 안 자는 거지. 꼭 잠자리에 들 필요가 없잖아. 내게 말을 건다. 그렇게 꾸물거리다 새벽 두 시를 넘겼다. 피곤이 몰려온다.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