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못 살 것 같다.
사흘이 금세 갔다. 첫날은 감산 형님과 보리밥집과 찻집 나들이 했고, 다음날은 수영장 갔다가 농장에 들러 계란을 사 왔다. 농장 안 주인은 선물이라며 흠 있는 계란 한 판을 더 준다. 농장에서 직접 사 오는 계란은 싱싱하다. 서른 개 한 판을 선물 받고 나는 무엇으로 보답을 할까. 고사리 농사도 접었으니 나눌 게 없고 표고버섯이라도 갖다 줄까. 텃밭의 오이꽃이 눈에 들어온다. 오이 몇 개 따다 줄까. 계란 세 판을 다 먹을 때까지 오이가 열려 줄까.
며칠 따 모은 30여 개 오이를 씻어 소금물에 절였다. 잘 절여진 오이는 여름 내내 입맛 돋우는 찬거리가 된다. 조물조물 무침반찬도 되고 시원한 냉국도 된다. 잘 삭기를 바라며 저장고에 넣었다. 비트와 상추 한 소쿠리를 땄다. 혼자 있으니 끼니 챙기기도 귀찮고 반찬이 굴지 않는다. 누구 갖다 줄까. 수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양파랑 마늘 수확기인 이맘때는 어느 집이나 푸성귀가 넘친다. 농장에도 푸성귀를 가꾸어 먹지 않을까.
집 아래 들녘도 모심기가 끝나간다. 이앙기로 모심기를 한지도 오래되었다. 일주일이면 아랫녘 들판이 파릇해진다. 우리 집은 농번기에 일꾼을 못 구해 허덕대던 시절도 지나갔다. 인력에서 놉을 부르면 하루 일당이 남자 15만 원이라고 했다. 외국인 일꾼은 소통도 어렵고 일도 시원찮지만 일손이 부족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농민은 늙고 농토는 묵정이가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땀 흘려 일하는 농민을 보기 어려워졌다. 농촌도 생필품이나 먹을거리조차 수입 산에 의존해야 될 때가 올 것만 같다.
촌부로 자리매김하고 살면서 주변 옥토였던 곳이 망가지는 것을 본다. 우후죽순 건물이 들어선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거대한 건물만 늘어나는 것 같다. 한 때 전원바람이 불 때가 있었다. 낡은 재래식 건물 대신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외지인이 이사 올 때만 해도 귀농귀촌 붐이 불어 기대감도 있었다. 그것도 딱 한 때였다. 그때 평당 육칠십만 원 하던 길섶의 논밭이 지금은 반타작에 내놨지만 살 사람이 없단다. 귀농귀촌 했던 사람들도 나잇살 늘면서 읍내 근처나 도시로 이농을 하는 추세란다.
노인의 길을 걷게 되면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농부가 집을 비우고 딸도 떠나자 혼자 남은 집이 적막강산이다. 이삼일은 좋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유유자적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지만 사흘이 지나자 슬슬 가족이 그리워진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끼니도 챙기고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온종일 조잘거리는 새소리도 귀만 고단하게 한다. 자꾸 기운이 빠진다. 눌 자리만 보다가 깜짝 놀란다. 몸에 기운이 달린다는 것은 먹는 음식이 부실하다는 뜻이다. 농부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당신 또 쇠고기 먹을 때가 된 것 같다.’며 외식을 종용했을 것이다.
사람 몸은 늙어갈수록 영양섭취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어린애들은 고루 잘 먹여야 잘 자라지만 노인은 아무리 잘 먹어도 흡수 기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보약과 영양식, 곰탕을 달아놓고 드셔도 기운 없다며 짜증을 내시던 시어른을 생각한다. 그때는 저리 잘 드시는데.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답답했던 심정을 이제 겨우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오늘 딸이 온단다. 딸이 떠날 때는 ‘내 걱정 말고 너 할 일이나 해라. 안 와도 된다.’ 했던 내가 사흘 만에 생각이 바뀐다. 딸이 온다니 반갑다. 노인의 변덕 같아서 부끄러워진다. 제프리 디버의 『고독한 강』을 펼쳐 보다가 덮었다. 눈이 금세 침침해져 책 읽기도 어렵다. 어제는 폭염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더웠다. 싸놨던 선풍기를 꺼냈다. 그래서인가 재채기가 나온다. 찹쌀을 불려 통마늘 한 주먹 넣고 푹 고왔다. 환절기에 면역성 떨어지면 감기부터 드는 덩치 값도 못하는 저 체질이라 미리 방지하는 거다.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