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을에서 죽마고우로 자란 삭실 양반을 생각하면 심기가 편할 수가 없었다. 삭실 양반과는 삼이웃이 다 아는 형제 이상으로 가까운 친구다. 삭실 양반이 몇 년 간 지병을 앓자 그의 아들 석대가 고향에 돌아와 조상을 돌보고 가업을 이어가겠다고 귀농을 했다. 도시에서 무슨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였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던 터라 아버지의 병을 핑계 삼아 다 팔아치우고 들어온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효자 아들을 둔 삭실 양반을 부러워했다. 아무리 부모가 아파도 쉽게 농촌에 들어와 살려는 사람이 드문 편이라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젊은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석대는 몇 년 간 착실히 농사꾼의 발판을 다졌다. 부모가 짓던 농사를 물려받아 하우스 특수 재배도 하고, 영농 후계자 자금을 받아 제법 논도 늘리더니 농촌에 뿌리를 내리려면 벼농사 위주로는 아무래도 어렵겠다며 젖소 사육에 뛰어들었다. 축산 진흥 자금을 받아 축사를 짓고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젖소가 백여 마리로 늘어나자 동네 사람들은 삭실 양반이 늘그막에 아들 잘 두어 호강하게 생겼다고 부러워했었다. 삭실 양반은 골골하면서도 아들 자랑이 늘어졌고, 불편한 몸으로 들 가운데 있는 축사를 오가며 행복해했다. 석대가 축사 옆에 번듯한 양옥을 지어 분가를 하자 삭실 양반은 아들 자랑에 날 새는 줄을 몰랐고, 동네 사람들 역시 도시에서 사장 행세를 하던 사람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석대는 또 남다르게 싹싹하고 인사성이 밝았다. 동네잔치라도 하는 날이면 돼지 한 마리 값은 선뜻 내놓을 줄도 알았으며, 이웃 간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가운데 들어서 해결사 노릇도 잘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네들이 관공서에 볼일이 있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하면 석대를 먼저 찾았다. 그러다 보니 동네 이장 자리도 맡아서 하게 되었고, 동네 돈도 석대가 관리하게끔 되었다. 그 동네 돈마저 떼이게 생겼지만 아무도 그 돈에 대해서만은 말을 할 게재가 아니었다.
회관 안은 침묵만 감돌고, 매캐한 담배연기와 구석구석에 피워둔 모기향 연기로 꽉 찼다. 참다못한 새터 아재가 술잔을 돌리며 무거운 분위기를 풀었다.
“자자. 거두절미하고 술맛 떨어진다. 잔이나 받거라.”
“그 말이 참말이가? 석대가 지 장신은 다 해서 날랐다는 거 말이다.”
“하모. 그놈이 진작부터 이런 일이 터질 걸 알고 있었던 기라.”
“그럴끼거마. 관공서 대가리들하고 어깨동무함서 댕길 때부텀 수상쩍었던 기라. 당사자도 없는데 할 말은 아니지만 소문에 농협이랑, 축협도 그 아 땜세 몇 놈 모가지 날라 갈 판이라카드마. 굵직굵직한 대출건이 한두 개라야제. 알고 봉게 축협에서 쇠 사료도 순 공짜로 갖다 믹인기라. 사료 대만 몇 천만 원이라 안 카나. 축협서는 석대한테 얻어 묵은 기 있으니 사료 값 내 노라 소리도 못하고 있었던 기라. 꼬시제. 지 발등에 불 떨어지니 지는 죽기 싫고, 늠한테 떠넘기자니 거기 뉘것노? 도장 찍어준 사람들이제. 그 불똥에 타 죽을 판이 된 젊은것들이 한 둘이가? 모돌 띠리 걸린 기라. 거미줄에 날파리 걸리듯이 말이다.”
“펜대 잡은 놈들은 칼만 안 들었제 순 날강도 겉은 놈들인 기라. 술 얻어 처 묵고 돈 봉투 받을 적엔 좋았것제. 막상 일이 벌어진께네 안면 몰수하고 나서는 기라. 저거가 칼자리 잡았다고 막 휘두르는 기라, 나쁜 늠들.”
“그라모, 우리는 풀인 갑네. 저거가 칼자리 잡았시모 우리는 썩은 풀인가? 칼로 아무리 풀을 베 봐라. 내년에 또 자라는 기라.”
“삭실 양반은 그 사실을 암서 보고만 있었던가?”
“우찌 알았것노? 저거 집이 팔린 줄도 몰랐다더마.”
“참말로 경을 칠 일이라. 다 죽어가는 저거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제.”
“하모. 애초에 지집질하고 댕긴다는 소문이 날 적부터 알아봤다니께. 그것도 다 쇼여 쇼.”
“알고보모 다 꿍심이 있었던 기라. 마누라 앞으로 재산 빼 돌리고 이혼장에 도장 팍 찍어놓고, 돈 돌릴 만한 집은 다 훑었다 안 쿠나. 조합 돈이 문제가 아닌 기라.”
“하지만 지가 사람 새끼모 늙고 병든 저거 아배 어매를 저리 놔두것나?”
“허긴 그래.”
다들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는데 난데없이 누군가가 불쑥 뛰어들었다.
“보소. 보소. 삼티 아재!”
“뉘요?”
회관 마당에 새터댁이 서 있었다.
“아니 그래, 여 서는 저 소리도 안 들리요?”
아닌 게 아니라 회관 마당에 나서니 두몰네의 악 써는 소리가 밤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남정네가 가서 좀 말리소. 아무도 두몰네를 말릴 재간이 없소. 삭실띠 머리꺼댕이가 남아나지도 않컷소. 힘깨나 쓴다는 장골도 메다꽂을 정도로 억척스런 여편네를 누가 말리것소. 저라다 일 나것소. 말뚝 맹키로 서 있들 말고 퍼떡 가입시더.”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서둘러 회관을 나섰다.
삭실 양반의 집에 들이닥치자 그런 난장판이 없었다. 반술이나 된 두몰네가 제 성깔에 못 이겨 돌을 들고 장독을 두드려 깨고 있었고, 두몰네의 며느리와 동네 아낙 두엇이 두몰네를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삭실댁은 산발한 모양새로 마당에 퍼질러 앉아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평소에 형님 아우 하며 잘 지냈던 삭실댁과 두몰네 사이를 IMF가 원수지간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구경만 하던 이웃 아낙네 두엇이 삭실댁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가고 삼티 양반은 두몰네 앞에 다가서서 성난 목소리로 나무랐다.
“두몰네 인자 고마 하소. 애민 도가지 깬다고 달라질 기 뭐가 있소? 남세스럽고로 이기 무슨 짓이요? 쇠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꼬, 삭실띠한테 이런다고 돈이 나오요, 분이 풀리요?”
하면서 두몰네의 팔을 휘잡아 장독간에서 끌어내렸다.
“삭실띠 너거 아들이 벌린 일잉깨 니가 책임져야제. 와 애민 우리가 발등을 찍히야 하노 말이다. 집도 땅도 다 경매 들어가서 너머 손에 넘어가는데. 삭실띠 니 겉으모 안 미치고 살것나. 아이고 내가 못 살아. 인자 우리는 알 거진 기라. 우리는 우찌 살란 말이고?”
두몰네는 제 성에 못 이겨 마당에 퍼질러 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다.
“새댁이는 울고 섰지만 말고 얼른 어마이 모시고 가거라.”
“삼티 아재 내 이약 좀 들어보소.”
“알았소. 두몰네 맘 다 아요. 인자 집으로 가소.”
삼티 양반과 새댁이는 두몰네를 부축해 삽짝을 나섰다.
새댁이는 시어머니를 부축해 삭실 댁의 삽짝을 나서면서 시어머니보다 더 큰소리로 울었다.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다 하소연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삭실아지매 집에 가서 행패라도 부려야 하는 시어머니 타는 속을 알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렸다
새댁이는 남편 봉구가 입을 열지 않는 바람에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았다. 논이고 밭이고, 집이고, 산비탈 악산을 일구면서 닳고 닳은 손톱이 새로 돋을 여가 없이 까뭉개고 다진 덕에 얻은 사천 평의 단감단지조차 경매에 붙여졌다는 사실을 알고 까무러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제 겨우 중학생인 두 아이 눈동자를 쳐다볼 염치도 없었고, 삼십 대에 혼자되어 남정네처럼 지게를 등때기에서 떼어보지 못하고 사는 시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고생에 비하면 자신의 낙담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자 마음을 추슬렀다.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겨야만 한다고 밤낮없이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남편의 품새가 눈물겨웠기 때문이다. 새댁이는 남편 보기가 참으로 미안했다. 남편이 하루가 다르게 가뭄에 깻대 말라가듯 하고, 별 하찮은 일에도 성질을 버럭버럭 내며 아이들 웃는 소리조차 듣기 싫어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남편의 타는 속도 모르고 사람 같잖으면 집에 와서 여편네 들볶는다. 하더라며 대거리를 해대곤 했기 때문이다.
일철이 시작되었는데도 남편은 일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밥 한 술 뜨고 나면 간다 온다 소리도 없이 집을 나가 하루해를 꼬박 넘기고 술이 거나해서 들어오기 일쑤였으며,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은 천정만 쳐다보고 누워 줄담배만 태웠다. 새댁이가 한소리 할라치면 들은 척도 않고 휙 나가 버리곤 해서 그녀의 속을 태웠다. 시어머니와 경운기로 거름을 실어내고, 모판에 볍씨 파종을 하면서 비지땀을 흘리는 날에도 남편은 전혀 무관심했다. 부아가 치밀 대로 치밀어 시비를 걸다 보니 부부 싸움도 잦아졌다.
“차라리 나가서 들어오들 말든가, 내 과부입네 하고 새끼들 데리고 꼬시고 오지도록 살낑깨. 서방이라는 작자가 저 꼴이니 내 팔자가 요 모양 요 꼴이제. 참말로 내가 도망을 가삐든지 해야지 나도 인자 더는 못 참것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나 삽시다. 와그라는지?”
“당신은 알 필요 없어.”
“와요? 와 내가 몰라야 돼요? 참말로 복장 터져서 못 살것네. 내가 알 필요 없시모 누가 알아야 하요? 아무리 그래도 올 농사는 지야 될꺼 아니요. 단감 산에 거름은 온제 낼끼요? 다른 사람들은 다 냈는데.”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돌아눕기 일쑤였다.
“차라리 나가서 콱 죽어 삐던가.”
새댁이가 악에 바쳐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할라치면 예전 같으면 길길이 날뛸 남편이었지만
“얼씨구. 간뎅이가 부었구마. 남편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고? 이걸 그냥, 콱. 에이 더러버서. 오냐 내 나가서 팍 뒤질 테니 잘 묵고 잘살아라.”
하면서 집을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새댁이는 IMF 한파로 호주머니가 비어 그러나 보다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차압 딱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만나서야 남편의 고충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가. 부모 반대 무릅쓰고 농촌 총각에게 시집와서 진날 갠 날 없이 서툰 농사일에 매달리며 흘린 눈물 콧물을 다 합치면 남해 바닷물보다 많으리라. 농촌에 튼실한 말뚝 하나 박으려고 마음고생 몸 고생도 많았다. 결혼 초기엔 농사에 대해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 탓에 하우스 속에 자라는 고추와 멜론이 저절로 익는 줄 알고 신기해했다. 막상 손톱 밑이 다 닳고 땀 절은 옷에 덕지덕지 묻은 흙을 털 여가도 없이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멋모르고 시작한 농촌살이가 서러워 울기도 많이 했다. 노동의 대가치곤 너무 보잘것없는 수입에 치를 떨기도 하고, 이것저것 시작해 보기도 했지만 농가 부채만 늘어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버텨야 했고, 살아내야 했다. 아이들은 나날이 자랐고, 그만큼 씀씀이도 늘었다. 어쨌든 농사꾼으로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남편은 쓸모없다고 버려두었던 산을 개간할 계획을 세웠다. 악산이지만 그 산에다 단감단지를 조성하여 장래를 내다보자고 했다. 그 산은 대물림으로 내려오는 조상의 뫼가 있는 선산이기도 했다.
억척스러운 시어머니와 우직하리만큼 바지런한 남편 덕분에 산은 개간되었다. 단감나무 묘목을 심은 지 7년 여 만에 지난해부터 단감 수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산은 새댁이의 꿈이었다. 더구나 불팃골이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데다 황토 땅이라서 그런지, 불팃골 단감이 당도나 육질 면에서 딴 지역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불팃골 토질이 단감을 생산하기엔 적지라는 판정이 났던 것이다.
새댁이는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농촌에서 십오 년을 버텨온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농촌살이가 암담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농을 꿈꾸었던 적도 있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동경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때마다 새댁이를 지켜준 것은 남편의 우직한 애정과, 시어머니의 다독거림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푹 절어서 이제는 도시 속에서는 숨이 막혀 살 재간이 없을 것만 같았다.
어쨌든 새댁이는 남편을 믿었다. 이제 농협이나 축협에서 남편에게 돈을 대출해 줄 리가 없지만 무슨 방도가 생길 것이라 믿었다. 남편은 그만큼 불팃골에서 신용을 담보로 내놓고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안 시어머니께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다가도 화가 뻗치면 벌떡 일어나 삭실아재 집으로 쳐들어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것이 곤혹스럽긴 해도 새댁이는 시어머니 속내를 이해했다.
새댁이는 삼티 아재를 붙들고 하소연을 늘어놓는 시어머니의 어깨가 많이 야위었다는 생각을 했다.
“삼티 아재. 내 맘 알지요? 석대 그놈을 내 아들캉 같이 생각했소. 둘도 없는 친구라고 그리 잘 대해 주었건만. 이런 법이 오데 있것소?”
“따지고 보모 가 잘못만도 아니것제. 시상이 그런기제.”
삼티 양반이 두몰네를 달래면서 하는 말은 기실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기도 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사람들은 풋 방귀 새듯이 다들 제 집으로 숨어 버리고, 골목엔 어둠만 가득 고였다.
삼티 양반은 두몰네를 달래어 집으로 보내고 휘적휘적 밤길을 걸었다. 시멘트를 발라 돌멩이 하나 차이지 않는 골목길이지만 발걸음은 마냥 무겁기만 했다.
삼티 양반은 면소재지에 유일하게 있는 선술집에 가서 한잔을 더 하고 밤이 이슥해서야 집을 향했다. 여편네 잔소리를 또 들어야 할 만큼 술을 마셨지만 취기가 전혀 오르지 않았다. 자꾸만 그 소란에도 방문도 열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있던 친구가 눈앞에 어룽거려 친구 집으로 향했다.
따지고 보모 그 친구한테 무슨 죄가 있것노. 다 세상 잘못 만낸 죄제.
삼티 양반은 불이 꺼지지 않은 삭실 댁의 대문 옆에 붙은 마구간 앞에 섰다. 마구간은 비어 있었다. 바지런하기로 소문났던 삭실 양반의 마구간에는 늘 황소가 매어 있었지만 석대가 젖소를 키우면서 황소 대신 집 지킴이 개가 새끼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개마저 빚쟁이가 돈 대신 끌고 가버려 마구간은 개똥 냄새만 풍기고 있었다. 삼티 양반은 마구간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현관 앞에서 헛기침을 하려다가 집 안에서 새어 나오는 삭실 댁의 하소연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놈의 자슥이 우리한테 이럴 줄 몰랐소. 내가 지를 우찌 키왔는데. 부모 가슴에 대못을 친다요. 늠 부끄럽어서 고개를 들고 댕기질 못하것소. 온 동네방네가 손가락질하는데 고마 칵 죽어삐모 좋것소. 참말로 모진 목숨이요. 농약이라도 칵 마시고 자빠졌으모 좋으련만 질긴 목숨 끊지도 못하고 이기 무슨 꼴이요. 진작 이 꼴 저 꼴 안 보고 저승사자 따라갔시모 좋을걸. 내 두몰네 탓 안 하요. 그놈의 자슥 땜새 길거리에 나앉게 된 두몰네 생각 하모 우리가 이리 당해도 싸지요.
인자 고마 해라. 다 내가 못난 탓이다.
잔기침에 가래 끓는 소리가 섞인 삭실 양반의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삼티 양반은 마당을 돌아 나왔다.
친구야 맘 독하고로 묵어라. 알고 보모 너거 아들 죄만도 아닌 기라. 너거 아들이 첨부터 사기 칠라고 했것나. 농촌에 들어와 잘 살아볼라고 지도 엔간히 고생 안 했나. 죄가 있다모 칼자리 진 놈들한테 있제. 배부른 저것들이 탁상공론이나 함서 저거 뱃속 챙기다 나라가 거덜 난 기제. 챙길 거 다 챙긴 배부른 족속들이 우리 한데 것들 안중에나 있것나. 너거 아들도 알고 보모 피해잔 기라. 뱁새가 황새 따라갈라다가 가랭이 째진 꼴인기라.
삼티 양반이 마악 삭실댁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젊은 아낙이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야밤에 뉘요?”
“아직 여게 계셨십니꺼?”
새댁이었다.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꼭 싸서 가슴에 안고 있었다.
“오데 가는 길이요?”
“죽을 쪼매 끼리서 삭실아지매 디릴라꼬예.”
“아암, 그래야제. 어여 가 보시게.”
“어르신, 우리 어머이 너무 탓하지 마이소.”
“새댁이 어마이 맘 다 알제. 참 고맙구마.”
“그럼.....”
삼티 양반은 삭실댁 삽짝으로 사라지는 아낙의 뒷모습이 참 곱다고 느꼈다.
두몰네가 자식 하나는 잘 키웠어. 자식이 반듯하니 저런 며느리도 들어왔것제. 다들 옛말함서 살날이 오것제. 하모. 칼이 아무리 날카로바도 자꾸 써모 무디지는 기고, 자주 갈아주지 않으모 녹이 슬어 못 씨게 되지만 풀은 아무리 베어도 뿌리가 죽는 벱이 없어. 엔간히 독한 풀약을 쳐도 잘 안 죽는 벱이제. 후년 봄에 또 그 자리에서 풀이 솟는 걸 보모 사람살이가 뻔한 이치 아니것어. 저거 놈들이 칼이모 우린 풀인 기라. 하모. 낼은 나락 논에 풀이나 뽑아야 하것구마.
삼티 양반은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을 막았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삭실댁 담장을 넘는 울음소리가 불팃골을 우울하게 감쌌다. 삭실 양반이 새벽에 농약을 마시고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떠난 것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