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꼬실
“나는 봤지롱. 누랑누랑 솔가리 속에서 뭐뭐 하는 거. 나는 봤지롱.”
왜 그 머슴애 생각이 나는 것일까. 어린 시절 나를 따라 다니며 놀리고 괴롭히던 머슴애였다. 어찌나 미워했던지 먼발치에서도 그 애만 보이면 더러운 것을 본 양 침을 탁 뱉고 내 방패막이인 오빠에게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그 애는 집요했다. 오빠가 옆에 없는 틈새를 어찌 그리도 잘 아는 지. 사방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치렁치렁 땋은 내 머리채를 낚아채거나 치마를 들쳤다. 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울 정도로 그 애라면 치를 떨었다. 그러다가 그 애는 코피가 나도록 여러 번 오빠에게 터진 후엔 나를 놀리는 일은 없어졌지만 언제나 내 주위를 맴돌았다. 먼발치에서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 후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타지로 나갔던 그 애가 몇 년 전에 까꼬실로 돌아와 살다가 이태 전엔가 죽었다. 그가 죽기 전 중년이 넘은 그를 길에서 두어 번 마주 친 적은 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외로 꼬았었다. 둘 다 늙어가는 처진데 싶어 말이라도 붙여 볼까 하다가도 남정네가 못 본 척 하는 데 내가 나서서 손 내밀기도 그랬다. 아마도 어린 시절 워낙 응어리진 것이 많았던 사이라 그런지 쉽게 대할 수가 없었다. 소문엔 심한 속병을 앓고 있다고 했고, 결혼을 했지만 자식도 없이 이혼하고 세상을 떠돌다가 죽을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떠도는 소문이니 다 믿을 게 못 되지만 소문처럼 그는 어느 날 꽃상여에 실려 갔다. 나는 먼발치에서 그를 배웅하며 많이 마음 아팠다. 철없던 시절 내가 너무 심하게 했었지? 이 말 한 마디 못 한 것이 늘 짜안했다. 그래서 일까. 내 처지가 어쩌다 끈 떨어진 둥우리 신세가 되어서 일까. 문득문득 노리끼리하고 깡말랐던 그가 생각났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무 편한가봐. 쓸데없는 생각이나 함서 지내니.
사실 요즘 내려다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평상을 마당가에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좌선을 하듯이 반듯하게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하룻밤 자고나면 달라지는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멀리 아슴푸레 보이는 마을과 그 옆에 펼쳐진 들이다. 들은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지만 마을은 언제나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삶이 어우러져 있지만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한가롭고 평화롭다.
길 아래쪽으로 여자의 둔부처럼 허여멀건 한 단감단지와 나직나직한 야산조차 저마다 다른 빛깔의 녹의를 입고 다투어 피어나느라 부산스럽다. 산 중턱에서 마을 쪽을 내려다보면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녹색의 물이 손을 뻗으면 잠길 듯이 잠방하게 차 있는 커다란 못이다. 그 못의 위쪽에는 젊은 처녀의 허리 곡선처럼 유연하게 휘어지고, 살짝 안긴 듯한 크고 작은 팡파짐한 다랑이가 점점이 거슬러 올라오고, 못 아래쪽을 보면 경지정리가 끝난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의 논들이 층층이 내려가고 있다. 논과 산기슭 사이로 개울이 흐르는 것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 논마다 푸르게 일렁이는 보리 물결과 반듯한 농로에 칠해진 돌가루가 햇살을 받아 분분히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눈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골짜기를 끼고 들 옆으로 장난감 지붕처럼 길게 늘어진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 마을을 바라보며 공상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그 마을 속에 있을 때는 잘 들리지 않던 자잘한 소리들이 그 마을을 떠나 살면서 더 상세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을을 돌고 도는 소문이란 보통 좋은 소문보다 나쁜 소문이 많았다. 뉘 집 서방 다방 가시나 끼고 돌아다닌다는 이야기, 뉘 집 며느리 샛서방 본 이야기, 자식 버리고 도망간 이야기, 뉘 집 할망구 노망든 이야기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소문이란 것이 그랬다. ‘우짜다 그랬시꼬, 우짜것노?’하면서 씹고 또 씹다보면 살이 붙고, 질겨지고, 단맛이 났다.
나는 그런 소문이 자연스럽게 들릴 때마다 속이 아렷다. 내가 그 속에 있을 때는 눈꺼풀에 콩깍지가 씌어선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것인지. 우세스러워서 들은 척만 했던 것인지. 나도 덩달아 흉을 보고 수다를 떨었는지 아리송하지만, 저들이 돌아서서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얼마나 난도질을 할까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지곤 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단순하기 때문에 농촌 사람들이 순박하다는 소릴 듣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떻게 까꼬실 사람들이 내게 그럴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참 오지게도 당했제.
어쩌다 내가 소문의 진원지가 되었는지. 나에 대한 소문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소리가 아닌가. 소문이란 원래 본인은 모르게 퍼지는 것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법 없어도 살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듣는 까꼬실 사람들이 이웃 간에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고 싶었다. 점쟁이 할멈인 정산 띠를 찾아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늘어져 분풀이라도 실컷 하고 싶었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그냥 참기로 했다. 똥 씹은 뒷맛 같지만 어쩌겠나. 젊은 내가 참아야지. 정산 할멈에게 분풀이를 한다고 이미 난 소문이 사라질리 없고, 바로 잡아질리 없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그저 생기지는 않았을 터 참아야지. 따지고 보면 빈말도 아니다. 오랜 세월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던 것을 정산할멈이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시시콜콜 해명 하는 것도 신물 나고,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로 침을 뱉는 사람들 얼굴 맞대는 것도 역겨워서 산속 외딴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마을에서 쫓겨난 것 같아서 속이 시렸다.
또한 혼자 지내다보니 속살 깊이 스며드는 외로움을 삭히기는 더 힘들었다. 낮에는 산이랑, 논밭이랑 쫓아다니며 허벅지에 가래토시가 서도록 일 속에 파 묻히다보면 혼자라는 것을 느낄 여가도 없지만 밤이 되면 말거리가 그리웠다. 늙수그레한 마을 아낙네들이 혼자 사는 과수댁이나 할멈 집에 모여 민화투를 치거나, 푸성귀를 다듬으며 세월을 삭일 수가 있었는데.
“아요, 수절 네. 인자 고마 그 골짝에서 내려 온나. 혼자 도 닦는 것도 아니고, 대궐 같은 제 집 놔 놓고 말라꼬 생고생을 사서 하노?”
“이 꼴 저 꼴 안 보니 좋기만 하네. 혼자 수절함서 산 것도 억울한데 또 무슨 근거 없는 쑥덕공론에 휘말리라꼬. 이리 산깨내 편하기만 하제. 내 혼자 골짝에 산깨내 남정네들이 번갈아감서 들린다는 소문은 없더나?”
“하모, 그런 소문도 있제. 곧 수절 네 팔자 고친다는 소문이더마. 참말인가 보네. 그건 농담이고. 참말로 수절 네 그리 살 끼가? 엔간하모 내려 온나. 내가 심심해서 몬 살것다. 정산 띠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것나. 우짜다봉깨 말이 부풀어져서 그리 된기제. 할마씨가 미쳐도 곱게 미치모 좋을 낀데. 입만 뻥긋 하모 넘 험담이나 하니 동네 사람들도 정산 띠 말이라쿠모 고개를 쩔래쩔래 흔든다 아이가.”
“그런 소리 마라. 내가 올매나 서럽었시모 50평생을 살던 동네에서 나왔것노.”
가끔 속을 터놓고 지내던 가실 띠를 만나면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은근히 내 입장을 변호해 보지만 속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실 지난 일 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젠 이 곳 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가끔은 다시 저 마을 속으로 들어가 버릴까 싶기도 하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 소문도 이젠 잠잠해졌나 보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에서 ‘뜬소문에 생사람 잡았다’고 잔뜩 미안해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네까짓 것들이 그렇지’하면서 고소해 하지만 내 속내는 결코 홀가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러움 같은 것이 울컥하고 솟구칠 때면 혼자 펑펑 울기도 한다. 실컷 울고 나서 마당가의 평상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마을에는 지금 무슨 소문이 나돌고 있을까. 홀에미 너드랑을 지키던 할멈의 환생이라는 점쟁이 할멈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까. 신령의 이름을 빌어 제 입지를 다지려는 의도가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인가. 예전처럼 동네에서 자신의 말이 씨가 잘 먹히지 않자 또 누구에게 무슨 건더기라도 잡아 물고 늘어지려고 하는지.
나는 정산할멈만 생각하면 속에 들었던 음식이 거꾸로 치솟을 것만 같았다.
지난 해 일이다. 골짝 논이고, 들 논이고 냉해가 들어 나락 소출이 반도 나지 않자 정산 할멈이 정초에 동신제를 잘 못 지내서 산신이 노했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산신이 벌을 내려 농사를 망쳤다고 홀에미 너드랑의 산신 할멈이 현몽을 했다면서 동민이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산제를 다시 지내되 제주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년에 풍년이 든다고 외고패고 다녔다. 젊어서는 족집게 소리를 들을 만큼 영험했던 영매인지라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하게 일어났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루 저녁에 마을 회관으로 동민들이 모여서 가타부타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결과는 반대표가 많았다. 미신 타파를 외친지가 언젠데 아직도 점쟁이 할멈의 말을 듣고 동네일을 결정하느냐는 입심이 더 강했던 탓이다. 결국 정산할멈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고, 그 응어리가 동신제의 소임을 맡았던 이장에게 쏟아졌다. 소임의 행실이 불결해서 산신이 노했다며 동신제 소임을 맡고 있던 이장이 상피 붙는 것을 목격했다고 괴발개발 겨워냈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동네 창피라며 이장을 이장 직에서 물러나기를 종용했다. 인두겁을 쓰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느냐고, 예전 같으면 여자와 남자를 조리돌림 시키거나 멍석말이를 해도 싸지만 세월이 좋아져서 그런 형벌은 모면했다고, 사람 서넛만 모여도 입을 모았다.
그 이장이 누군가. 친동기간이나 진배없는 오빠다. 올케언니라 부르는 내 친구 성실의 남편이다. 정산 할멈이 엮은 것이 바로 오빠와 나였다. 정산 할멈의 말 한 마디에 치명타를 입은 나는 나지만 오빠는 어떻겠는가. 올케 언니 볼 면목도 없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보다 말 한 마디가 야금야금 거미줄을 쳐서 사람 병신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는 것을 몸소 깨달아야 했다. 올케언니는 노인네가 실성한 것이라며 그 말 안 믿는다고 하고, 오빠는 콩밥을 먹게 해야겠다고 말은 했지만 송사할 가치도 없다고 접었다. 대신 내가 동네서 떠나 산골짜기로 왔다. 올해는 그 할멈 뜻대로 동신제를 지냈다하니 풍년이 들런가. 두고 봐야 알 일이다.
보통 그 마을의 산신제나 동신제의 소임을 맡을 제주는 마을에서 웃어른 대접을 받는 사람 중에서 가장 신망 있고, 인품이 깨끗한 사람 중에 동민이 정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격식과 형식이 많이 약화되긴 했다. 현재는 까꼬실 동신제 제주 소임은 이장이 맡아 한다. 이장은 그 마을의 이익을 담당하고, 좋은 일,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직책으로 마을 사람들의 신망을 두텁게 받아야 선택될 수 있는 사람이다. 한 마을 이장도 감투라는 것이 분명하다보니 이장을 서로 하려고 같은 씨족끼리 암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 마을의 대표자가 되는 일은 그만큼 책임과 추궁이 따르는 법, 특히나 고운동이라고도 불리고, 까꼬실이라고도 불리는 우리 마을은 깊은 산중에 있었기 때문에 산신과 지신을 지극히 섬기는 관습이 대대로 이어져 오는 마을이다. 현대에 와서는 격식도, 형식도 많이 간소화되어 동신제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지내는 동신제는 마을의 큰 행사였다.
아무리 사회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었다 해도 산골 작은 마을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 같은 성씨를 가진 친 인척이 마을을 형성하고, 재실이라던가, 선산을 돌보는 마을의 지킴이들이 있다. 그들은 마을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노인들이고 그 후손들이다. 그 집안이 학자 집안이거나, 무슨 벼슬을 했거나 해서 뼈대가 있는 가문일수록 텃세가 심했고, 가풍을 중하게 여겼다.
또한 까꼬실처럼 오지 마을일 수록 그 마을 대대로 내려온 동신제나 산신제를 지내는 풍습은 살아있었고, 형식적이든 어쨌든 해마다 정초가 되면 제사를 지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의 모태신앙 같은 것이어서 세기말을 산다고는 하지만 깡그리 없애버릴 수 없는 전통이나 관습 같은 것이기도 했다. 개중에 깬 사람이거나, 젊은 사람들은 고리타분한 구습을 고수한다고 답답해하는 측도 있지만 그들도 그것을 미신이라고 버리자니 뒤가 켕기고, 미신인 줄 알면서 믿자니 낯간지러운 무엇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저 동네에서 잘 벗어났어. 이웃 간에 시비 붙을 일 없지,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지. 내 팔자가 상 팔자제. 여편네들이 모여 봤자 남의 험담이나 하지. 별 수 있겠어.
속으로 뇌까리지만 나는 편치 않다. 내 발로 나왔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그 마을로부터 쫓겨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때는 더욱 울화통이 치민다. 어쩌다 내게 이런 망신살이 뻗쳤냐 싶기도 하고, 오빠와 올케, 내 자식들 볼 낯도 없다. 이것도 내 팔자려니 생각하면 차라리 속이라도 편하련만 내 팔자려니 생각하기엔 또 억울했다.
“연아, 소문이란 건 원래 그런 거잖아. 어쩌다가 그 당사자가 니가 됐는지 모르겠어. 정산 할매가 니한테 앙심 품을 일도 없을 텐데. 소문이란 원래 눈뭉치 맹키로 불어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라앉잖아. 내가 널 누구보다 잘 아는 데. 올 신수에 구설수가 있다더니.”
“엉가는 억울하지도 않아? 그런 소리 듣고?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법 있나? 우리가 왜 참아야 해? 난 고소라도 하고 말거야. 없는 말 지어내 퍼뜨린 그 할망구를 가만히 둬는 지 봐라.”
“그래봤자 똑 같은 사람 되는 거다. 똥이 무서워서 피해? 더러워서 피하지. 액땜한 셈 치자 우리. 너보다 오빠 심정은 어떻겠니. 우리가 참자. 그 할매도 아들 죽고 노망이 난 거라.”
올케가 하는 말이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할멈이 내 깊은 곳에 은밀하게 감추어진 내밀한 것을 꺼내 까발린 것 같았기 때문에 분하고 원통하고 서러웠다.
현재 내가 사는 집은 까꼬실 마을에서 해발 700고지가 넘는다는 산허리에 있다. 마을에서 개울을 끼고 쭉 올라와야 보이는 집이다. 남편이 남겨 주고 간 다랑이 서 마지기를 밀어 간단하게 컨테이너 박스를 옮겨 놓은 집이 내가 사는 집이다. 대신 정원은 넓고 기막히게 수려한 나무들과 야생화로 단장한 자연정원이다. 일 년 사이에 집 주위를 빙 돌아가며 심은 차나무가 제법 울타리 역할을 하고, 마당에는 접시꽃이 한창 자라는 중이다.
나는 남매의 어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