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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나의 무릉도원에서

by 박래여

나의 무릉도원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유난스러운 아침이다. 하루 종일 햇살이 뜨거울 것을 아는 건가. 저희들끼리 모여 회의 중인지. 새소리고 각양각색이다. 가끔 까마귀 울음도 가세하는데 기선 제압하는 느낌이다. 재잘재잘하던 새들이 일제히 입을 닫는다. 까마귀가 울고 나면 다시 지저귀기 시작한다. 쯧쯧쯧 쯧 혀 차는 소리도 들리고, 별꼴이야, 그냥 못 들은 척 해. 분위기 깨는 데는 뭐 있어. 삣쫑삣쫑 툴툴거리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새 울음소리를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귀에 들리는 음을 낱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의 울음소리를 통틀어 재잘거린다거나 지저귄다고 할까. 더울 때는 일찍 일을 시작해야 한다. 농부는 새벽 형이다. 텃밭과 나무에 물 주는 것도 농부 몫이다. 늦잠 형인 나도 농부가 바깥일을 끝내고 들어올 즈음이면 일어나 밥을 챙긴다. 직접 챙겨 먹을 테니 걱정 말고 더 자라지만 농부의 밥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농부의 현관문 여는 기척은 어찌 그리도 잘 아는지. 오랜 세월 함께 산 부부의 습관이랄까. 닮은 꼴로 거듭나고 있다는 뜻이랄까.


농사를 줄이면서 밥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없다. 일꾼을 쓰지 않으니 새벽부터 동동걸음 칠 일도 없고, 새참과 점심반찬 스트레스도 없다. 두 어른 안 계시니 어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없다. 농부 역시 날카롭고 예민하던 성격이 누그러졌다. 내가 밥상을 차리면 밥을 푼다. 설거지도 한다. 과일도 깎는다. 아침 차나 커피는 농부가 전담한다. 내가 하도록 기다리지 않고 거들어 준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신경 쓰였다. 눈치가 보였다. 편하지 않았다. 부부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해 왔던 세월이 길었으니 농부의 변화에 익숙하기 어려웠다. 편하지 않았지만 못하게 말리지도 않았다.


농부가 명상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다. 어차피 부부도 언젠가는 혼자된다. 칠십이 넘으면 재혼도 어렵다. 남은 시간은 혼자 살아내야 한다. 아흔 중반이 넘도록 장수하신 시어른 두 분의 노후 삶을 봐왔기에 깨달은 점도 배운 점도 많다. 두 어른 아니었으면 농부가 변했을까. 내가 털팔이(칠칠치 못한 행동) 짓을 해도 웃어줄 정도로 여유를 갖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으리라. 사람은 타고난 성격을 바꾸기 힘들다. 평생 타고난 성격대로 살다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격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지만 돌아서면 제자리걸음이기 일쑤다.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면 성격도 바꿀 수 있다. 농부로 인해 나를 바꾸는 것도 나름의 명상법이라고 생각한다. 부부로서 공존하는 길, 양보와 이해와 놓아버림과 받아들임이 필수 아닐까. 내가 왜! 하는 애고를 버리기, 당신 뜻대로 해! 밀어주기,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감정 앞세워봤자 몸과 마음만 피곤하니 받아주거나 무심하게 대하기, 이런 것들도 삶의 지혜 아닐까. 농부가 변해서 내가 변한 것인지, 내가 변해서 농부가 변한 것인지, 어차피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그러려니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인지. 우리는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


마침 장 시인의 문자와 사진이 도착했다. 시인은 우아하게 금계국이 가득한 들판 옆 탁자에서 후식을 먹는 사진이다. 시인은 천국이란다. 거기가 천국이면 여기는 무릉도원이라고 말했다. 보고 싶다. 막힘없이 시원시원한 말솜씨를 가진 멋쟁이 시인이 보고 싶다. 훌쩍 날아가 볼까? 마음을 내다가 만다. 집 나서기 귀찮다. 나는 매사 귀차니즘에 빠져 사는데 농부는 매사 열공 파다. 농부가 부는 대금소리가 들린다. 아직 서툴지만 나날이 조금씩 매끄러워지고 있다. 나는 짙푸른 창밖을 바라보며 새소리에 귀를 연다. 천국이거나 무릉도원이거나 내 마음자리에 있다.


문제는 이승의 마음자리가 무릉도원이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살아간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릉도원은 내 마음자리에 있을 뿐 삶은 지속적이고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다는 거다. 어쩌랴. 내 태생이 본래 민초였으니 내 삶의 자리도 민초의 자리다. 내 삶에 만족하고 싶은데 아직 내 삶의 자리에 있거나 날아 앉는 티끌을 쓸어내는 중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라지 않는가. 천국에 산다는 시인처럼 나도 무릉도원에 산다고 날마다 내게 주문을 걸어야겠다. 맞다. 나는 무릉도원에 젖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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