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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사방 댐 공사를 다시 한다는데.

by 박래여

사방 댐 공사 다시 한다는데.

박래여



농부는 폭우에 막히고 유실되고 우리 집 쪽으로 범람하는 물길이 담긴 사방댐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산림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여기저기서 공무원이 다녀갔다. 산림청에서 왔다는 세 남자는 사방댐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단다. 이번에는 댐을 크게 키워야 할 것 같단다. 우리 집으로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축대를 한층 더 높이는 공사를 해야 할 것 같단다. 우리 집보다 위쪽의 골짜기에 굴착기가 동원되면 다시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기겁을 했다. 집 위쪽 골짜기를 사방공사 한다고 손을 댔다가는 산사태 나기 십상이고 그 산사태가 우리 집을 덮치게 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절대 안 됩니다. 이대로 두든가 기존 만든 사방댐의 둑을 우리 집보다 낮게 낮추든가 해야지 우리 집 위쪽으로 사방댐을 넓힌다면 다음 폭우에는 우리 집이 물난리를 겪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젊은 남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단다. ‘당신이 뭘 알아. 우리가 전문가다’하는 표정이다. 한 대 팍 쥐어박고 싶은 걸 참았다. 당신들이 골짜기 옆에 살아본 적 있느냐. 벌물의 위력을 아느냐고 했더니 안단다. 이런 거짓말쟁이들, 책에서 배운 것과 경험에서 배운 것은 다르다.


산사태의 주범은 자연재해보다 인재가 많다. 농어촌개발이란 명목으로 벌목을 하고, 산을 파헤치는 것이 산사태의 원인이 되기 십상이다. 다시 우리 집보다 위쪽에서 흘러오는 골짜기에 손을 댄다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고 폭우와 태풍이 잦아지는 추세다. 작은 개천이나 강 옆, 혹은 산골짜기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벌물의 위력을 모른다. 벌물의 힘은 엄청나게 세다. 급류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집 아래 작은 못으로 들어가는 토사물이나 돌을 걷어내기 위해 사방댐 공사가 필수라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한 결과만 나왔다. 사방댐 공사를 다시 한다니 불안하기만 하다. 우리 가족은 30년이 넘도록 골짝을 끼고 살았지만 산사태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골짝에는 선녀 탕이 두 곳이나 있었다. 반석이 깔린 바닥과 폭포를 이루는 바위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여름 손님이 오면 골짜기로 안내할 정도로 멋졌다. 폭우가 지나고 나면 깨끗하게 청소도 되고 물의 양도 많아서 여름 나기에 제격이었다. 맑은 폭포아래 평상을 깔아놓고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기도 했었다. 사방댐 공사로 그런 호사를 접어야 한다.


더구나 유실되어 버린 사방댐 공사 덕에 뒤꼍의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말라가고 있다. 사방댐 공사 하면서 뿌리를 잘라버린 것 같다. 태풍이 오면 우리 집 쪽으로 쓰러질 것 같은데. 이래저래 걱정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일이다. 벌목을 하고, 임도를 내고, 사방댐이나 사방공사를 한다고 굴착기가 들어가면 이미 산사태 위험지구로 변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평탄할 수 없다. 삶마다 크고 작은 고충이 따른다. 집도 사람 따라 태어나고 죽어가듯이 자연도 태어나고 죽어간다. 한 자리에 붙박이로 살다 보면 주변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사람이 손댄 적이 없는데도 자연은 스스로 알아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부유물이 섞인 흙탕물이 축대를 넘어 우리 집 쪽으로 범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겁났다. 예측불허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일단 대피해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가지고 집을 나가나? 가지고 나갈 게 없었다. 겨우 챙긴 것이 내 글이 든 유에스비(작은 이동식 기억장치)였다. 그것도 마당을 나가다 다시 돌아와 놓고 갔다. ‘우리 집은 괜찮을 거야. 비야 제발 그만 와라.’ 믿었다.


이웃에도 산사태 피해를 입은 집이 있다. 사방공사 한 현장 옆에서 산사태가 난 것이다. 사방댐이니 사방공사니 하는 것이 산사태를 일으키는 주범 같다. 봉사활동을 해 주는 지인들도 있었다. 모두 돕고 사는 세상, 따뜻한 인정이 숨 쉬는 세상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얼굴 내기 위해 다녀가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을 다해 도와주려고 오는 사람도 있다. 삼복더위에 생고생하는 이재민들 생각하면 마음이 되다. 지구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 대에서는 무사할지 몰라도 먼 미래에 지구도 폭발하면서 생명 있는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인공지능 인간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뭉게구름 둥둥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가을하늘 같았다.


이른 아침 농부가 붉은 고추를 땄다. 태양초 고추 말릴 생각을 하면 뜨거운 햇살도 좋은데 냉방기 안 돌리면 숨이 막히는 복더위를 나기는 힘들다. 그래도 꿉꿉한 이불을 빨랫줄에 널 수 있어 좋다. 윤유월 해도 길다. 아직 복더위는 두어 달 계속될 조짐이다. 모두 건강하게 여름 나기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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