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by 박래여

단풍


푸른 천으로 온 몸 가렸던 숲

조금씩 속내 드러내는데

때론 창백하게

때론 붉게

꼭꼭 숨겼던 비밀의 문 여는 일

가슴에 고인 앙금 풀어내는 일

어쩌면 더 깊이 묻어두고 싶어

오색이불로 감싸는지 몰라.


텃밭에 물을 주면

푸들푸들 속 차오르는 배추와

하얀 밑동 둥글게 키워내는 무

붉게 익고 싶어도 기운 딸린 푸른 토마토

영겁의 시간을 주무르는

신의 손길이 잠깐 한눈파는 사이

알토란같은 생의 이면이

땅속으로 숨어드는지 몰라.


가난을 노래해도

노래로만 듣는 무수한 귀

내 것 아닌 것에 대한 잊힘 서러워

붉으락푸르락 하다

내 위에 너를 포개고

쓰러져 눕는지 몰라.


*올해는 고운 단풍보기 힘들었어요. 여름에서 가을도 없이 겨울로 진입한 것 같은 숲을 바라보며 서글펐지요. 서글픔도 잠깐인지 겨울 숲이 아늑한 느낌입니다. 계절은 늘 이렇게 오가는데 사람만 앞으로 갈 뿐이네요. 나잇살 늘면 내 몸 하나 이기기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팔팔하던 때가 있었던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노인이 되면 기억은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아쉽고 그리운 것이겠지요.

모두 남은 나날 잘 보내시고 새해맞이 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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