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향기
사람의 삶 속에는 어떤 향기들이 있다. 그 향기를 향유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반면 무엇이 향기 인지도 모르면서 사는 그런 인생이 대 다수를 차지하고 사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사실 인생의 향기는 눈으로 볼 수도, 코로 맡을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남의 눈에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지위가 높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학식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는 인생의 향기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니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것이고, 혼인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기에 혼인을 했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르쳐 제 식솔 거느리게 되기까지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살이인 줄만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난하게 사는 것도, 농사꾼이 천직이라 믿는 것도 그의 마음에 아무런 의문도 제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자기의 타고난 팔자란 생각조차 해 보지 않고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이른 새벽에 일어나 논두렁 밭두렁을 한 바퀴 돌거나,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뒤뜰에 산더미처럼 쌓는 일이거나, 철 따라 논밭에 거름을 내거나 씨앗을 뿌리거나 거두는 일과 외양간이 비지 않게 소를 키우는 일이었다. 자신이 왜 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행복한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바도 아니었다. 그저 온종일 농사일에 파묻혀 살면서도 그것이 고달프다는 푸념조차 하지 않고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잘 생긴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로서는 좀 작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키에 다부져 보이는 덩치를 가졌지만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온 네모에 가까운 얼굴에, 커지도 작지도 않은 눈과 약간 낮은 듯한 코와 늘 웃는 것도 아니면서 꽉 다문 것 같지도 않은 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얼굴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고집스러운 점도 발견해 내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좀 바보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는 곳은 물레미라는 마을이었다. 물레처럼 둥그스름하게 산이 싸고 있다 해서 붙은 지명이라는 설도 있고, 물레질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라 해서 물레미가 되었다고들 하지만 확실한 내력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오십여 가구의 그 마을에서도 집집마다 외양간에는 소 대신 경운기가 차지하고, 젊은 농군이 있는 집에서는 트랙터나 이앙기 등 농기계를 장만하여 농사를 짓지만, 그는 그 기계들이 무슨 괴물 같아서 옆에 가는 것도 꺼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다 못한 큰 아들이 경운기를 장만하여 주었지만 그는 아직도 경운기에 올라앉아 보지 않았다. 경운기는 헛간에 방치되어 있다가 농사철이 되면 다니러 오는 아들들이 부리는 괴물 딱지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지게나 바지게를 이용하여 거름이나 볏단을 져 나르고, 길들인 암소의 모가지에 멍에를 씌워서 논을 갈고, 밭을 가는 우직하기 짝이 없는 농사꾼이었다. 물론 부농일 수도 없었다. 자식을 오 남매나 두었지만 그다지 속 썩이는 자식은 없었다. 집안 살림 형편 때문인지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만 졸업한 자식도 있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해서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식도 있지만 다들 도시에 나가 제 밥벌이를 하다가 짝 맞추어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이제 군에 간 막내만 제대해서 장가들면 부모 노릇은 그런대로 다 한 셈이었다.
그가 농사를 짓는 농토란, 도시의 아들네를 따라 나가면서 갈라 묵기 소작을 주고 간 서너 마지기의 남의 논과 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벼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천수답 다랑이 댓 마지기와 산비탈에 아내와 둘이 손수 일군 밭 이 백여 평에 불과했다. 그것에다 오두막일망정 텃밭이 넓고, 늙은 감나무 세 그루와 자두나무, 앵두나무 등 과일나무가 마당가에 서 있는 집과 외양간에 매인 소 두 마리가 재산의 전부였다.
그에게 사람 사는 맛이 어떤 거냐고 물으면, 산비탈에 일구어 놓은 논밭에 철 따라 나락이나 보리, 밀 등 논농사를 짓고, 밭에 푸성귀며, 들깨, 고구마, 감자 등 잡곡을 심어 거두는 재미와 외양간에 매어 키우는 새끼 달린 암소의 등을 대빗자루로 쓸어주는 일과, 여물을 쑤어다 구유에 부어주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법 없어도 살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꼭지가 덜 떨어진 사람이라고도 하고, 칠삭둥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남에게 해코지하거나, 영악하여 제 잇속 챙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 좋아서 바보스럽다는 소리를 듣는다고도 했다. 그의 속내를 읽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는 싫은 일도 싫다고 하는 법이 없고, 좋은 일도 좋다고 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아, 그렇십니꺼. 그렇네 예. 지가 뭘 알아야지 예. 잘됐네 예.’등 짧은 대답을 듣는 것도 용한 일이었다.
그에 대한 이미지를 말하려면 우선 어느 대학생이 붙인 별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여름철에 봉사활동을 나왔던 대학생들 중에 그를 눈여겨보았던 한 여대생이 했던 말이다.
지리산 오지 마을인 물레미에도 여름철이 되면 방학을 이용하여 대학생 단체가 <농촌 일손 돕기 봉사 활동>을 나온다. 학생들은 물레미 동네 회관에 모여 기거를 하면서 낮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농사일을 도왔고, 밤에는 동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거나, 글자를 모르는 동네 사람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국의 농촌 현실이 거의가 다 그렇지만 물레미 마을 사람들도 거의가 오륙 십 대에다 칠팔십 대의 양로원 동네였다. 그중에 글자를 깨치지 못한 동민이 반수가 넘었다.
그는 글자를 깨치지 못한 사람이었다. 겨우 김 만석이라는 제 이름 석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밤마다 열심히 회관에 나갔다. 멍석을 깔거나 헌 장판을 깔고 앉아 가갸 거겨를 배웠지만 돌아서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통에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을 볼 면목이 없었지만 그래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어린 여학생 선생님은 항상 첫 번째로 와서 맨 앞줄에 앉아 말없이 경청하다가 빙그레 웃으며 돌아가는 그에게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 다음날 낮에 그 여학생은 친구들과 나락 논에서 피를 뽑다가 먼발치로 그를 보았다. 그는 논두렁에 수북이 자란 풀을 베다가 쉬는 참이었다. 그는 논두렁에 징검다리처럼 베어놓은 풀을 안아다 바지게에 담아놓고, 논 옆의 도랑가에 불룩 튀어나온 바위에 걸터앉더니 이마에 질끈 동여맨 수건을 풀어 얼굴을 닦고는 곰방대에 담배 한 개비를 꽂았다. 그는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댕기더니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면서 먼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여학생은 그 모습을 눈여겨보다가 나다니엘 호오돈의 큰 바위 얼굴이란 소설이 생각났다.
“저분 좀 봐, 큰 바위 얼굴 같아.”
그날 이후 대학생들은 큰 바위 아저씨라는 별호를 붙여 주었다. 그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는 바보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이지만 근실하고, 우직하여 농사일은 빈틈없이 잘 해냈다. 남의 눈치를 살펴 일을 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약삭빠른 행동은 못하지만 행동이 굼뜬 대신 맡은 일은 야무지게 해 냈다. 자기 집 일이나 남의 집 일이나 빈틈없이 해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품앗이나, 품팔이는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그는 몸살이 나지 않는 한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설령 자기 집에 불이 나도 남의 집의 불을 먼저 꺼 주고 자기 집 불을 끌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제 실속을 채울 줄 모르는 그는 아내의 타박도 많이 듣지만 타고난 천성이 그래서인지, 모자라서인지 웃기만 했다.
예를 들자면 자기 집 모내기 날짜를 받아놓고, 모꾼을 맞추어 놓은 아내가 사흘 뒤에 모내기를 해야 하니 논갈이를 끝내 놓으라고 하면 그는 소에게 쟁기를 채워 논갈이를 하려 간다. ‘이랴 이랴, 좌랴 좌랴’ 하면서 무논에서 논을 갈다가 이웃 영감이 찾아와 사흘 뒤에 모를 심어야 하니 당장 자기네 논을 좀 갈아줄 수 없겠느냐고 하면 ‘그러지 예’그 길로 그 영감님 논으로 행차를 해 버리는 사람이 그다. 사흘 뒤에 모내기할 논자리에 물만 흥건해 있어 아내가 성질을 내며 못 살겠다고 펄쩍펄쩍 뛰면 한다는 말이
“그 영감님 논이 더 급하다기에 갔더니 그 옆에 할매도 갈아달라쿠제. 그 뒤에 아재도 갈아달라쿠는데 우짜것노. 그라다 보니 우리 논 갈 여개가 없었다. 우리 모는 사나알 뒤에 심으모 안되나?”
아내는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혀버리곤 했다. 아무리 부아를 내질러도 성을 낼 위인이 아니란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열다섯에 시집와서 여태껏 살 맞대고 살면서도 그가 성을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아내는 더 이상 말해 봤자 쇠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서 가서 우리 논 갈아놓고 오라고 닦달만 하고 말 정도였다.
그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외양간으로 갔다. 토실토실 살이 오르면서 젖떼기를 한 중송아지 누렁이의 때깔을 보면서 늘름한 황소의 모색을 닮아가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누렁이의 코뚜레를 뚫을 일이 걱정으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누워 떡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송아지의 코를 뚫는 일은 잔뼈가 굵어지면서 여태 해 오던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코뚜레가 될 만한 감태나무와 늙은 칡덩굴을 한 짐 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허참, 고놈 갈수록 부룩데기 기질이 나는구먼. 싸움 쇠 조짐이 보이는 걸. 종자가 좋은 놈이 맞긴 맞는 모양이제. 담에 쇠장사한테 앵길 때는 임자 잘 찾아주라 캐야 되것구마.”
그는 목을 쭉 빼고 있는 누렁이의 목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하다가 한숨을 푸욱! 하고 쉬었다.
요즘 그를 괴롭히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58년여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그런 기분을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도 들면서 자신의 머리 반 넘게 차지한 흰 머리카락이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이십 년만, 아니 십 년만 더 젊어도 뭔가 길이 보일 것 같은데 가만히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 보니 환갑이 코앞에 닥쳐 있었다. 손자 녀석도 본 마당에 이 무슨 해괴한 행동 거진가 싶어 스스로를 탓해 보지만 자신의 마음을 그도 알 도리가 없었다.
“당신 진짜 벌써 노망들었어 예?”
엊그제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 해 오다가 진달래가 어찌나 흐드러지게 피었든지 한 아름 꺾어 나뭇단에다 꽂아 와서 아내에게 내밀자 꽃다발을 받은 아내가 한다는 말이었다.
“하도 예뿌길래.”
사실 그도 자기가 하는 행동을 알 수가 없었다. 젊어서도 아내에게 해 본 적이 없던 행동이었다. 알뜰살뜰한 정 한 번 준 적이 없는 아내였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아내도 이웃 간에 부모가 맺어준 사람이었다. 첫날 밤이 지나서야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람이 그 이기도 했다. 수더분하게 생긴 아내를 예쁘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여자는 궁둥이가 펑퍼짐해서 애만 쑥쑥 잘 낳아 기르고, 살림 똑 부러지게 살아주면 그만이었다. 아내는 그런 여자였다. 그도 그런 아내에 만족하면서 살아온 셈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내에게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못난 남정네 만나 일복만 터져서 손톱이 길 새도 없이 흙 알갱이 채워 살아온 아내에게 자꾸만 미안해졌다.
“참말로 요상하네 예. 안 하던 짓을 하모 구들장 지고 누울 때가 된 기라데 예. 요새 당신이 좀 이상해 진거 알아?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모 죽는다쿱니더. 제발 정신 좀 채리소. 당신 하는 짓을 보모 예 꼭 우리 아들 사춘기 때 같거마. 밥맛을 잃어 삔 걸 보모 무슨 고민이 있는 것도 같고, 오데가 아푼 기라 예?”
“아니다. 우짠지 밥알이 목구녕에 걸린다.”
“쑥물이라도 해 주까 예? 밥맛 돌아오는 데는 생 쑥을 집내 묵는 기 제일인데.”
그는 아내 얼굴을 차마 마주 보지 못했다. 그 까닭을 아내가 안다면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는 퉁을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별 시답잖은 소리도 다 듣는다면서 우스갯소리로 넘기면 다행이지만 아무리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라도 여자라면 질투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길길이 날뛰면서 ‘내가 헛살았다’고 내 인생 돌려달라며 앙탈을 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그 소문이 아이들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엔 망신살이 단단히 뻗칠 일이었다. 아니 동네 사람들 쳐다볼 염치도 없어질 노릇이었다.
“봄 타는 모양이제.”
“당신도 보약 한 제 묵어야 되것소. 참 이장이 댕기 감서 주택개량 신청 안 할랑가 묻데 예. 우리도 이참에 방이라도 늘카 보입시더. 애들이 들이닥치모 잠자리가 불편해서 영 며누리 보기 미안커마. 어지간하모 그 자금 받아서 새집을 짓든가. 거기 안돼모 부엌 개량비라도 받아 방이나 넓히든가 양단간에 무슨 수를 내야 안 하것소. 아 들도 쬐맨씩 보탠다쿵깨내.”
아내는 또 집 고치자는 소리를 들고 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