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너머 그곳에 1

by 박래여

재 너머 그곳에


밤중에 선잠을 깨어 고양이들이 서로 싸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카락이 쫙 서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또한 고양이 우는 소리를 가냘픈 어린애의 우는 소리라고 착각해 보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밥 달라고 우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야아 옹! 하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슴에 묘한 일렁거림이 일어난다. 애처로운, 너무도 애처로워서 품어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하는 소리다. 애처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로 울다가 가르랑 가르랑 가래 끓는 소리에 이어 벽이나 현관문을 긁는 날카로운 발톱 소리가 들리면 섬뜩하다. 고양이가 화가 났다는 소리다. 배고픈 고양이들은 먹이 하나를 놓고 싸운다. 두 마리가 먹이 하나를 놓고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면 아마 여러분은 ‘앙칼지다’는 뜻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자식에 대한 고양이의 애정은 표상 감이다. 부부가 모두 새끼들을 애지중지 한다. 먹이를 잡아다가 새끼들 앞에 갖다 놓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 새끼들이 먹는 것을 지켜본다. 새끼들이 먹이를 다 먹고 나가면 빈자리를 핥는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가 어른이 되어도 젖을 빨린다. 자기 입에 들었던 먹이도 새끼가 다가와 입술을 비비면 바닥에 뱉어 놓는다.

잠자리에 누운 내 귀에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모두 원망의 소리로 들린다. 밥 줘, 배고파 죽겠단 말이야. 왜 너만 먹고 우리는 안 주는 거야. 하면서 파아란 불꽃이 이는 눈으로 째려보는 것 같다. 고양이의 저녁을 굶겼기 때문이다. 귀를 막고 잠을 청해 본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창밖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양이는 현관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문을 긁으며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울음을 반복한다. 듣기 싫어 제발 저리 가라. 가서 쥐 나 잡아서 배를 채우란 말이야. 사방에 들쥐들 천지잖아.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덮어써 본다. 그래도 그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양이와 나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지만 번번이 내가 지고 만다.

“이놈의 새끼들 저리 안 가나?”

창문을 사정없이 열어젖힌다. 창문 밑에 옹송그리고 있던 검은 물체는 꿈쩍도 않는다. 오히려 나를 빤히 올려다보면서 합창을 한다. 창문을 꽝꽝 때려도 보고, 손으로 쫓는 시늉도 해 보지만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고양이란 놈은 눈만 말똥거린다. 플래시를 들고 현관으로 나간다. 날렵한 물체는 사방으로 후닥닥 도망을 치지만 멀리 가지 않는다. 나와의 거리가 적당히 벌어진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야옹’ 거리다. 플래시 불을 비추면 파아란 불꽃이 고양이의 눈에서 되쏘아져 돌아온다. 그 푸른 빛살은 내 심장에 와서 박히는 유리 파편 같다.

“가서 쥐 나 잡아먹어라. 성가셔서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내 목소리는 촉촉하게 젖어 달랜다.

“야아 옹!”

고양이는 쉬지 않고 울어 제킨다.

“너희들 배를 다 채우려면 우리 식구 한 달 양식이 거들 난단 말이야. 제발 내 마음 좀 이해하고 멀리 마을로 가 버려. 아니면 산속에 들어가 들쥐나 잡아 배를 채우던지.”

까만 새끼 고양이가 살금살금 기어서 내 발치께에 다가온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그놈을 안는다.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는다. 고양이의 털은 어째서 이렇게 부드러울까. 어린아이처럼 내 품 안에서 편안해하는 것을 본다는 것이 괴롭다. 죄받지. 이 귀한 생명의 배를 곯리다니. 고양이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와 멸치 한 주먹을 내어 들고나간다. 마당에다 멸치를 놓고 고양이 새끼를 풀어놓는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고양이들이 떼를 지어 달려든다.

“오늘 밤에도 내가 또 졌구나.”

집안으로 들어와 보온밥통에 남은 찬밥을 된장국에 말아 들고나간다.


저녁 무렵이었다.

산속의 어둠은 들녘보다 한두 시간은 빨리 내린다. 저녁 햇살이 산 아래 동네에 가서 머무는 시간이었다. 구월이라곤 하지만 아직도 낮은 한 더위 같았다. 낮 동안 이마를 태우던 불볕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은 집안은 갑갑했다. 나는 더위도 식힐 겸 마늘도 깔 겸 해서 마늘 바구니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사방에서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면서 달려온다. 먹을거리라도 들고 나오는 줄 알고 눈을 빛내며 내 발치께로 모여든다. 너희들 먹이 아니다 저리 좀 가라. 발에 걸리는 녀석을 차 버리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탁자 앞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고양이들이 탁자 위와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를 쳐다보며 가르릉 거린다. 웅크린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살쾡이 새끼가 아닐까? 어미는 집 고양이지만 아비는 산고 양이다. 그래서 쉽게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 늘 밥그릇을 챙겨주는 내게도 인색한 녀석들이다. 나는 고양이의 눈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고양이의 직사각형 검은자위가 움직인다. 눈을 깜박거린다. 밉지 않다. 어젯밤에 녀석들 때문에 잠을 설친 걸 생각하면 얄밉지만. 의자 밑에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빨리는 어미 고양이의 느긋한 모습도 상큼하고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푸른 하늘과 누리끼리 해지는 녹색의 숲은 맑고 깨끗했다.

더위가 한풀 꺾인 바람이 서늘하게 어슬렁거렸다.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며 그렇게 저녁때의 잔잔한 향기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개들이 집 앞을 바라보며 짖었다. 예민한 개들은 낯선 방문객이 있음을 금세 알아차렸다. 마늘을 까던 손을 멈추고 사철나무 울타리 너머로 내다보았다. 길 아래 머리가 하얗게 센 승복 차림의 할머니 한분이 목에 긴 염주를 걸고 바랑을 지고, 지팡이에 의지해 모롱이를 막 돌아 올라오는 길이었다. 하얀 흰 고무신이 유난히 내 눈길을 끌었다. 내 발에도 흰 고무신이 신겨 있기 때문이었을까. 하얀 머리와 흰 고무신이 닮아서일까. 할머니는 우리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뒤로 쭉 펴며 잠시 고른 숨을 내 쉬셨다.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분의 첫인상은 참 곱게 늙은 분이구나 싶었다. 해맑은 피부에 깔끔한 승복차림이어서 그렇게 느낀 것일까.‘아이 씨헌타.’하시면서 나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서셨다. 등에 진 바랑은 그다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저 재 너머에는 절이 없는 데 어디까지 가시는 분일까. 해가 지면 재를 넘기가 무서울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산 아래를 굽어보고 서 계신 할머니의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았다. 물이 잠잠하게 잠겨 있는 못과 누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한 들녘을 넘어 한가롭게 앉아있는 마을 어딘가에 눈길을 주고 있는 듯 한 할머니의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고 있다가 아주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머리 모양을 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쪽을 찌고 계셨다. 조막손에 넣어도 찰 것 같은 머리 묶음 옆에 삐죽이 나온 것은 틀림없이 은비녀였다. 그 순간 할머니는 짚고 있던 지팡이를 몸에 기대 놓고 비녀를 빼어 입에 물었다. 외가닥으로 땋은 머리가 옛날 처녀들의 댕기머리처럼 등에 뚝 떨어졌다. 할머니는 익숙하게 손빗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다시 쪽을 쪘다. 내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참으로 단아하고 신비로웠다.

나는 울타리 옆에 있는 감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듯이 하고 할머니의 거동을 감탄 어린 눈으로 주시했다.

우리 집은 길에서 올려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집이다. 대문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길에서는 풀이 무성한 돌담만 보고는 그 돌담 옆으로 난 길이 있어도 그 위에 논이나 밭이 있는 줄 알지 집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더구나 사철나무가 내 허리까지 오도록 다듬어져 울타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흔히들 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다가 재에 올라서서 내려다보고서야 중턱에 집이 있다는 것을 알 정도다.

“야아 옹!”

갑자기 내 옆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아이고 마야!”

순간 고함을 캑 지르면서 획 돌아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공포랄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섰던 할머니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합장을 했다.

“나무 관세음보살!”

“할머니 놀라셨어요?”

“......”

“많이 놀라셨나 봐요. 죄송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할머니는 천천히 목에 건 염주를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렸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의도 같았다. 나는 정말 미안했다. 적막한 산속인 데다가 고요하게 명상에 잠겨 있던 찰나 갑자기 인가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고양이의 울음을 들었으니 나라도 놀랐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한참을 그렇게 서서 염주를 굴리다가 물었다.

“좀 전에 고양이 울음소리 아니었수?”

“맞아요. 우리 집 고양이예요.”

“고양이를 키워요?”

“예. 할머니. 어디까지 가시는 길이예요? 곧 해가 질 텐데.”

“저 재를 넘어야 한다우.”

“좀 쉬었다 가셔요. 산길이 가팔라서 힘드실 텐데. 저 재를 넘어도 한참을 걸어야 동네가 있는 데 힘드시겠어요.”

“그럼 물이나 한 그릇 주시려오?”

“그러셔요.”

“고양이 때문에......”

“괜찮아요.”

“그래도 난 고양이가 무섭다우.”

할머니는 머무적거리다가 결심한 듯이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낯선 방문객으로 인해 마당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개들은 목이 찢어져라 짖어대고, 고양이는 여기저기서 휙휙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어 달아났다.

“무슨 고양이가 저리 많우?”

“그렇게 됐어요.”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무섭지 않우? 이런 산속에서 사는 것이?”

“괜찮아요.”

“장하우. 사실 사람들 속에 끼어 산다고 외로움이 가시는 건 아니라우.”

할머니는 가을바람처럼 쓸쓸하게 말했다. 영이 맑은 사람은 표정만 보아도 알 것 같았다. 할머니의 모습이 그랬다. 곱고 깨끗한 모습에서 나는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우리 할머니도 늘 회색 승복을 입고 계셨다. 젊어서 신이 내린 할머니는 그 신을 달래기 위해 집안에 칠성단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렸다. 귀신을 모셔놓고 점쟁이 노릇을 하면 대물림을 해야 한다는 소리에 칠원 성군을 모셔놓고 주야장천 염불을 염송 하셨다. 몸이 조금 노곤하다든가, 잡신이 말문을 열려고 입술에 앉아 횡설수설하면 승복에 바랑을 메고, 염주를 목에 걸고 절 나들이를 시작하셨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염력을 잠재우려는 의도라고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염주를 굴리는 할머니에 대해 궁금해졌다. 뭘 하시던 분이실까. 어디에서 오시는 길일까. 재 너머엔 무슨 일로 가시는 길일까. 조상의 묘에 성묘하려 오셨을까. 할머니의 거동을 살피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가득 찼다. 한 칠순은 됨직했다. 그 보다 더 젊을지도 모르고, 더 연세가 높을지도 모르지만 무척 동안이셨다. 불심이 대단하신 분 같았다. 노인이 입은 승복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재 너머 절이 있었다는 소문은 못 들었수?”

“옛날에 절이 있었다는 소문은 있어요. 절 골이라는 푯돌만 있는 걸요. 언젠가 애들을 데리고 절 골이란 곳을 찾아가 본 적이 있어요. 조그마한 암자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어요. 재 너머 골짜기 이름이었어요. 좁다란 오솔길 옆으로 묵정이가 된 다랑이를 따라 골짜기를 끼고 한참을 올라가니 오래된 삼층 석탑이 하나 서 있었어요. 그곳이 절터 같았어요. 돌이끼가 허옇게 핀 탑이 밭 가운데 있었어요. 몇 년 전에도 밭에 풀만 무성했으니 지금은 가시덩굴에 파묻혀 찾을 수 있을는지. 아마 숲이 짙어서 찾을 수도 없을는지 모르죠.”

“그 절 골에는 인가가 없소?”

“예. 전에는 그 아래 마을이 있었다는 데 다들 외지로 이사를 나갔대요.”

“언제 그 마을이 없어졌는지 알아요?”

“남편이 오면 알지 모르죠. 이곳 토박이니까. 우리 집 가까이에도 절은 없어요. 할머니 참 이상하죠? 절이 있을만한 산세 데.”

우리 집 가까이엔 절이 없다. 내가 알기론 재 너머에도 절은 없었다. 아주 옛날에는 산세가 험하고 숲이 짙어서 절이 많았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골짜기를 낀 산이 높고 경치가 수려한 곳에는 항상 절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해도 우리 집 근처에 절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자굴산은 꽤 높았다. 해발 897m라고 했다. 산꼭대기 아래 기암괴석이 치솟아 있다. 그 아래 금지 샘이란 옹달샘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곳이다. 등산객들의 목을 축여주는 고마운 샘이 있는 그곳에는 아주 옛날, 그러니까 신라나 고려 시절에 큰 절이 있었다고도 했다. 산에 갔다가 향료나, 기와 같은 것을 주운 사람들도 있었다. 돌담의 흔적과 평평하게 닦인 터는 절이 있음 직했다. 작은 암자라도 있음 직한 산세 건만 이상하게 절이 없는 산이었다.

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해거름이 마당에 내렸다. 나는 할머니께 어디서 오시는 길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서울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재 너머엔 어떻게 가시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웃기만 했다.

“잘 쉬었수. 이젠 슬슬 일어나 볼까?”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산을 넘겠어요? 저 아래 마을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의 배는 걸어야 인가가 있는데요.”

“요즘은 큰 짐승도 없을 텐데. 달빛을 친구 삼아 걸어도 되겠지요. 내일이 보름 아니우.”

“그럼 쉬었다가 저녁 드시고 애들 아빠에게 태워다 달래면 되겠네요. 집에 차가 있으니 가시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도록 할게요.”

나는 이상하게 그 할머니를 붙들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차 소리가 났다. 아이들을 태운 남편의 차가 집 앞에 와서 멎었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투명한 웃음소리에 이어 엄마를 부르는 소리, 개들의 반가운 낑낑거림 등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할머니를 소개했다.

“남매 구려. 아이들이 참 밝고 귀엽구먼.”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을 차근차근 바라보더니 뜻밖에도 ‘아무래도 저녁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할머니는 아이들과 금세 친해져서 할머니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야단이었다. 나는 그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등을 기대고 노닥거릴 수 있는 언덕 같은 존재가 아닐까. 비비고, 뛰고 굴려도 느긋한 사랑으로 감싸주는 언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다과상을 준비해 들어가니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남편과 두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옛날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너무도 가족적으로 보였다. 할머니가 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묘한 일이었다. 만난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문득 저 할머니와 우리 가족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어요?”

“어서 오우. 구전 재전 이약이지. 애들이 좋아하니 나도 절로 신이 나는구려. 애기 어멈도 좀 앉구려. 괜히 늙은이가 끼어 귀찮게 하는구려. 식구들이 다 모여 앉으니 이 적막한 산속도 포근하구려. 지금부터 내가 아주 묘한 이야기를 해 주려 하는 데 듣겠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남편은 빙그레 웃었다.

“할머니, 피곤하실 텐데 괜찮겠어요?”

“아니우. 참 좋아요. 사실은 밖에 있는 저 고양이들을 보니까 생각이 나서. 고양이에 대한 이약이라우. 혹시 쥔 양반은 그 절 골에 대해서 들은 이약이 없수?”

“동네 노인네들 말에 의하면 고양이 때문이라고도 하데예. 재 너머 절 골에는 지금도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도 있지예. 절이 있긴 있었던 모양인데 알 수가 있어야지예.”

“그럴 거요.”

“할머니 이야기 빨리 해 주셔요.”

“오냐. 알았다. 아주 오래전 일이란다. 저 재 너머에 둔네라는 마을이 있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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