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너머 그곳에 2

by 박래여


그러니까 70여 년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일제 식민지 시절이었다. 도처에서 학교라는 것이 생겨나 한글을 없애고 일본어를 가르쳤다. 서양 귀신에 신식 문화가 판을 치고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진기한 물건들이 보부상의 어깨에 메어 아녀자의 품까지 파고들었지만 그것은 곡창지대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가고, 늑대가 가축을 해치는 깊은 산중에서 풀뿌리로 연명하는 토박이 농투성이에게는 조선시대나, 일본 식민지 시대나 살아가는 데 있어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감투 쓴 사람들이 어쩌다 마을에 들려 이래라저래라 하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린 줄만 아는 그런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산중이었다. 산중에는 가끔 먹고살 길이 없어서, 세상 돌아가는 꼴이 보기 싫어서,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거나 숯을 굽거나,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집집마다 골짜기를 개간하여 손바닥만 한 다랑이에 농사를 지어 식량을 얻었고, 고나 덫을 놓아 산토끼나 노루를 생포해 고기를 얻었고, 산에서 나는 나물이며 버섯, 약초 등을 채취해 자급자족을 했다. 자연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오일장에서 구했다. 보통 사오 십리, 멀면 백리 길을 걸어야 하는 산중 사람들에게 장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장 구경을 가기로 한 날은 마을에 명절 기분이 났다. 아녀자들은 장 보려 같이 가자면서 우물가에 모여 앉아 눈을 빛냈고, 남정네들은 사랑에 모여 앉아 텁텁한 막걸리 한 주발에 곱게 분단장한 주막집 아낙네의 살랑거리는 엉덩이 구경할 맛에 눈을 빛냈다. 그날은 열일 제치고 쉴 수 있는 날이기도 했지만 보통 보부상을 통해 곡식을 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물물교환에 의지했다. 관솔불을 밝히고 살던 산중 사람들이 등잔이란 것에 석유를 넣어 불을 밝히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재 너머 둔네라는 마을도 그런 산중이었다.

마을이랄 것도 없었다. 움막 여남 집이 다였다. 그 마을에 어린 소녀가 있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삼촌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자라는 일곱 살 난 소녀였다. 눈빛이 맑은 소녀는 다섯 명이나 되는 사촌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였지만 유순하고 눈물이 많았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젖먹이를 업고 마을 옆에 있는 다랑이 논두렁에 앉아 쑥을 깨고 있었다. 소녀는 등에 매달린 아이의 무게에 짓눌려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열심히 쑥을 캐어 바구니에 채우고 있었다. 논두렁에 보랏빛 제비꽃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참 예쁘다. 소녀는 살그머니 꽃을 따려다가 멈칫했다. 쑥을 한 소쿠리 안 캐 오모 저녁 굶을 줄 알아라. 내 새끼 믹일 것도 없는 판에 군식구 치다꺼리가 쉬운 줄 아남? 싸늘한 냉기가 도는 작은 어머니의 눈이 어디선가 지켜볼 것 같아서 소녀는 가슴을 웅크렸다. 소녀는 제비꽃을 따려던 손을 거두어 연신 이마에 흐르는 비지땀을 훔쳤다. 소녀의 등에 업혀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어린 사촌 동생은 힘들다고 비비적거리며 칭얼댔다. 쪼맨만 참아라. 금세 한 소쿠리 되겠다. 집에 감서 참꽃 꺾어 줄게. 소녀는 동생의 궁둥이를 다독거렸다.

“아가? 심들쟈?”

등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승복을 입고 바랑을 진 노스님이 소녀를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시님, 안녕하십니꺼?”

“아이쿠, 인사성도 밝아라. 저 땀 좀 보소. 이름이 뭐꼬?”

“덕이라예.”

“니 내 따라갈래? 배부르도록 쌀밥 줄낑깨.”

소녀는 쌀밥 소리에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일 년 두 달 쌀밥 구경은 할 수 없었다. 꽁보리밥이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밥보다는 나물죽으로 연명하는 생활이었다. 그것도 없으면 물배를 채워야 했다.

소녀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너거 집이 오데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제?”

소녀는 반쯤 찬 나물바구니를 끼고 집으로 내달았다. 삼촌 집에서 자기 입 하나만 덜 수 있다면 식구들이 모두 좋아할 것 같았다.

오두막에 도착하니 돌절구에 보리쌀을 찧고 있던 여자가 냅다 고함을 질렀다.

“아이고 저 문디 가스나 보소. 니 쑥은 안 캐고 또 꽃 따고 놀다오제? 요놈의 가스나 다리 몽뎅이를 작신 분질러 삐 끼다.”

마당 빗자루를 들고 달려 나오던 여자는 소녀 뒤에 서서 염주를 만지작거리는 스님을 보고 멈칫했다. 소녀는 잽싸게 스님의 등 뒤로 숨었다. 스님은 나무 관세음보살을 읊조리며 깊숙이 합장을 했다. 여자는 엉겁결에 같이 합장을 하고는

“아이고 시님, 미안시럽거마. 시주할 쌀 한 톨 없구마예. 우짜모 쓰까? 들어 오이소. 찬물이라도 잡수실랑가? 니 퍼떡 새미에 가서 물 한 바가지 안 떠 오나? 이 웬수덩거리야.”

“이 아이를 시주 하시지요? 제가 데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요 등 너머 골짝에 있는 암자에 사는 중이올시다.”

여자는 스님의 말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참말로 그래도 될랑가? 우리 형편에 입 하나 더는 기 큰 은덕이지예. 어구 겉이 묵어대는 저것을 데리고 가서 엇따 쓸랑가. 애들 아부지가 허락을 할랑가 모르것네예. 우쨌던 들어 오이소. 낭구 하로 간 양반이 올 시간이 됐소만.”

여자는 금세 사과처럼 사근사근해졌다.

소녀는 그렇게 삼촌 집을 떠났다. 스님을 따라 절 골로 들어온 후 동자승이 되어 스님의 수발을 들었다. 한가한 시간이면 스님에게 글과 부처님의 법을 배웠다. 스님은 인자하고 따뜻했다. 비록 넓은 절간을 쓸고 닦는 일이 힘에 부치긴 했지만, 노스님 곁에서 소녀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스님에게는 수보리란 암고양이가 있었다. 부처님의 제자 이름을 딴 수보리는 영리하고 귀여웠다. 그 고양이는 산고양이라 했다. 스님이 밥을 나누어 주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스님이 절에 있을 동안에는 절간을 떠나지 않았지만 스님이 없을 때는 산으로 가 버리는 영특한 고양이였다. 보통 고양이보다 몸집이 크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고양이는 좀체 소녀와 친 하려 들지 않았다.

스님이 탁발을 떠나면 소녀는 빈 절간에서 부처님과 지냈다. 부처님을 목욕시키고 법당을 청소하면서 스님이 가르쳐준 염불을 외우고 또 외웠다. 부처님 옆에서 잠을 자고, 부처님과 이야기를 했다. 부처님은 소녀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다. 소녀는 부처님이 좋았지만 살아있는 고양이가 더 그리워지곤 했다. 소녀는 수보리와 친해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덕아, 사람이나 짐승이나 정성을 쏟으면 복이 오니라. 수보리도 니 마음을 알면 품에 안길 날이 있을게다. 너무 보채지 말고 잘 거두어라. 내가 없더라도 끼니 챙겨주는 것 잊지 말거라.”

스님은 수보리를 안아 소녀의 오지랖에 싸 주었지만 고양이는 소녀의 손등을 할퀴고 달아나 버리곤 했다. 스님이 절간을 떠나면 고양이도 어느 틈에 사라졌다가 스님이 오시면 소리 없이 나타나서 야옹거렸다. 소녀는 스님이 안 계실 때도 날마다 밥을 떠다가 절 문간에 놓아두었다. 밤을 새우고 나면 어김없이 절문 앞으로 달려가 고양이의 밥그릇을 쳐다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먹이는 밤새 쥐가 먹고 가는지 빈 그릇만 놓여 있곤 했다. 소녀는 빈 그릇을 들고 와 자기 밥을 덜어다 다시 제 자리에 가져다 놓곤 했다. 소녀의 정성이 통했는지 해가 바뀌자 고양이는 소녀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친근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소녀의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렀다.

소녀가 자라는 것처럼 고양이의 수도 불어났다. 공양 시간이 되면 고양이가 먼저 부엌문밖에 줄을 섰다. 두 사람이 먹는 밥을 다 주어도 고양이의 식사량을 다 채울 수 없을 만큼 고양이는 대 식구가 되었다. 소녀는 끼니때가 되면 고양이 먹일 걱정에 짜증이 묻어나곤 했다.

“스님 저 고양이들 배를 다 채울 수가 없어요.”

“괜찮다. 내 밥을 덜어내 수보리한테 주거라. 콩 한 조각도 열두 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어야 부처님의 자비니라. 있으면 같이 먹고, 없으면 같이 굶어야지 어쩌겠니.”

이제 스님은 거동이 불편해 탁발을 다닐 수 없었다. 차츰 가난한 절간에는 밥솥에 불 지피는 일이 뜨음해졌고 소녀는 스님을 위해 마을에 내려가 구걸을 해 와야 했다. 소녀는 둔네 마을에는 절대로 들리지 않았다. 모롱이 하나를 더 돌아내려 가면 들 가운데 들몰이라는 50여 가구가 사는 제법 큰 마을이 있었다. 집집마다 궁핍을 면치 못했지만 승복을 입은 소녀를 대하는 인정은 후했다. 소녀는 탁발을 한 음식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 둔네 마을을 지나치면 습관적으로 삼촌 집 사립문을 바라보곤 했다. 먼발치에서 사촌들의 다툼 소리도 듣고, 작은 어머니의 고함소리도 들었다. 소녀는 왠지 그 소리들이 듣기 좋았다.

소녀가 보리쌀도 얻고, 밥도 얻어서 절에 오면 스님은 고양이에게 둘러싸여 있곤 했다. 고양이는 스님의 품 안에, 어깨에, 등에 올라앉아 있었다. 스님은 천수관음보살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참선에 들어갔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님?”

“쉿. 수보리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중이다.”

산중에서 가장 혹독한 계절인 춥고 배고픈 겨울이 왔다.

“시님, 이번에는 사나흘 걸릴 낍니더. 정지에 낭구도 해 놓고 반찬도 맹글어 놨응깨. 따시게 하고 계실소. 얼렁 댕겨 오겠십니더.”

열세 살 짜리 소녀는 승복에 바랑을 메고 탁발을 나섰다. 보리쌀이라도 많이 얻어 와야 겨울나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남부지방에도 겨울이면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소녀는 산중을 벗어나 인가가 많이 사는 먼 마을로 내려갔다. 둔네나, 들몰에는 너무 신세를 많이 졌다는 생각에 더 먼 곳으로 탁발을 떠난 것이었다. 소녀는 눈이 오기 전에 돌아오려고 열심히 탁발을 다녔다. 어린 동자승에게 인심이 후한 집도 있었고, 야박하게 내쫓는 집도 있었다. 짓궂은 아이들을 만나면 놀림감이 되어 돌멩이 세례도 받았지만 소녀는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다. 바랑이 소녀의 힘에 겨울 정도로 가득 차자 서둘러 돌아왔다. 소녀는 둔네 마을이 눈앞에 나타나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젠 저 마을을 지나 십리길만 오르면 스님이 반겨주실 거야. 소녀의 부르튼 볼과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얇은 승복 속으로 스며드는 눈보라는 소녀의 여린 살갗을 콕콕 찔러댔다. 소녀는 비지땀을 흘리며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랐다. 길은 금세 눈보라 속에 묻혀 흔적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미끄러지고 엎어지면서 소녀는 둔네 마을 초입에 접어들었다. 눈앞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눈물 한 줄기가 볼에 흘렀다. 삼촌 집 사립문이 보였다. 소녀는 잠깐만이라도 그 집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었다. 삼촌 집 울타리 너머로 집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니가 누고? 우리 덕이 아이가?”

헛간 쪽에서 나오던 작은 아버지가 소녀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소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이 어린것이 때 꺼리 구하로 갔다 오는 길인갑다. 시님이 바깥출입을 못한다는 소문이더마 참말이었나뵈. 아이쿠 불쌍도 해라. 꽁꽁 얼어서 동태 새끼 같구나.

가물거리는 의식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다가 소녀는 꿈을 꾸었다. 스님이 관음보살의 손을 잡고 오색구름을 타고 오르는 꿈이었다. 스님 가지 마이소. 나 혼자 우찌 살라고 가십니꺼? 시님, 시님......

“야야, 정신이 쪼맨 드나?”

소녀는 눈을 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빨리 시님한테 가야 돼. 쌀도 떨어졌을 낀데. 소녀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사지는 나무토막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덕아, 맘 푹 놓고 있거라. 니가 사흘 만에 깨어난 기라. 온몸이 얼어 터져서 움직일 수가 없다. 우짠다꼬 이 춥은데 길을 나섰더노? 니가 살아난 기 요행이다. 우리는 초상 치는 줄 알았다. 불쌍한 거. 지 밥이나 안 굶길라고 시님 따라 보낸 긴데. 지지리도 박복한 것아. 이기 뭐꼬. 니 꼬라지가 이기 머란 말이고.”

소녀는 작은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았다.

“절에 가야 되예. 시님 혼자 있어예.”

“지금은 갈래야 갈 수가 없다. 눈이 니 키만큼 쟁여서 절 골에는 올라갈 엄두도 못 낸다. 눈이 녹아야 행보를 하던지 하제. 그동안 니 몸이나 추스르거라. 날만 따시모 사나흘 만에 길이 터일랑가.”

“안돼 예. 가야 합니더. 시님이 기다리는데.”

소녀는 일어나려다가 쓰러지기를 거듭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스님한테 가야 한다고 헛소리를 해 댔다. 그 형상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소녀에게 모질고 독하게 굴었던 작은 어머니도, 사촌들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하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라 군식구라 구박하던 조카지만 스님을 딸려 보낸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일주일 만에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는 바랑을 짊어졌다. 피골이 상접한 조카딸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집을 나서자 작은 아버지는 소녀의 바랑을 빼앗아 어깨에 걸쳤다.

“내가 절에 데려다 주꾸마.”

겨울 햇살에도 꽁꽁 얼어붙었던 눈이 녹았다. 소녀는 질척거리는 산길을 헐떡거리며 달렸다. 끼니조차 잇지 못하고 있을 스님의 얼굴이 어룽거려 한시도 꾸물거릴 수가 없었다. 꼭 노루 새끼가 뜀박질하는 것 같구나. 누가 저 애를 보고 사경을 헤매다 일어난 아이라 생각하것노. 시님이 올매나 잘 거뒀으면 저럴꼬. 작은 아버지는 소녀의 뒤를 허둥지둥 따라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멀리 절간이 보였다. 괴괴한 고요가 감도는 절간은 아직도 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녀는 한달음에 일주문을 들어섰다. 시님, 덕이가 왔어예. 시님 덕이가 왔어예. 반가움에 울먹거리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작은 아버지는 천천히 일주문을 들어섰다. 대웅전 귀퉁이에 달린 풍경이 은은하게 울었다.

“아악, 시 이 니 임......”

갑자기 정적을 깨는 소녀의 새된 소리가 요사 채에서 들려왔다.

스님이 기거하는 방문 앞에 하얗게 질린 소녀가 석고처럼 서서 벌벌 떨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바랑을 절 마당에 떨어뜨리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방안 풍경을 들여다보던 작은 아버지가 소녀를 덥석 안자 소녀는 기절해 버렸다. 작은 아버지는 소녀를 어깨에 걸치고는 일주문 밖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작은 아버지의 목덜미를 낚아채듯 휘몰아치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돌아보지 마. 절대로 돌아보면 안 돼.

야옹, 야아옹......

갑자기 문밖에서 고양이가 앙살스럽게 울었다. 문을 긁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쉬었다. 형광등 탓일까. 할머니의 눈빛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내 품 안에 파고든 채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남편은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됐어요?”

“고양이들이 떼거리로 스님을 뜯어먹고 있었어. 사방에 피가 튀어 연꽃이 핀 것 같았지. 소녀가 작은 아버지의 어깨에서 정신을 차려 절 골을 바라보았을 때는 불꽃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어. 기왓장이 탁탁 튀는 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지. 너희들 무섭지? 그래서 이 할미는 고양이가 싫다우. 저 고양이들을 내가 데리고 갈까? 따라 올려나 모르겠네. 자. 이제 나는 슬슬 일어나 볼라우. 달빛이 환하니 산길 넘기가 수월할 것 같으이. 저녁 대접 잘 받았수. 혹 시간이 나면 그 절터에 한번 댕겨 오시구려. 아직도 석탑이 있는지 궁금하구려.”

“주무시고 가셔요. 아무리 달빛이 좋아도 밤길이 위험할 텐데.”

“말은 고맙지만 오늘 밤에 꼭 가 봐야 하우. 떠도는 영가들을 천도시켜야 하거든.”

“그럼 남편이 모셔다 드릴겁니더.”

할머니는 손사래를 강하게 치셨다. 혼자 가야 하우. 이 늙은이에게 마음 쓰지 말어.

할머니는 총총히 산길로 사라졌다.

“고양이들이 다 어디 갔지?”

이상한 할머니가 다녀간 다음날부터 고양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며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꾸가 없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배가 고프니까 들쥐 잡아먹으러 갔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며칠이 지나도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부탁해 절 골로 향했다. 절 골이라는 돌 팻말이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산길의 흔적을 찾았지만 길의 흔적은 찾기가 어려웠다. 논두렁을 따라 그 묵정밭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밟고 지나간 듯 한 길이 밭 가운데로 뚫려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보니 돌이끼가 하얗게 핀 장골 한 아름은 됨직한 3층 석탑이 서 있었다. 석탑 주위에는 풀줄기도 가시덤불도 없었다. 무심히 석탑 주위를 돌던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파실 거리는 땅 위에 지팡이가 누워있고, 승복과 바랑, 그 위에 은비녀가 놓여 있었다. 사람이 가만히 앉은 자세에서 몸뚱이가 사그라진 것처럼 그것은 참으로 희한한 형태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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