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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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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an 09. 2022

4. 욕본다는 말이 주는 따뜻함

   

   <늘 무거운 짐 지고

   고생만 하는 동생

   이제는 편안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기 바란다.>


  농부에게 온 이런 문자를 보면 화가 난다. 늘 무거운 짐 지고 고생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시는 백 살을 코앞에 둔 두 노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는 편안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기저귀 찬 치매노인이신 시어머님도 삼시세끼 잘 드시고, 당신 건강만 챙기는 시아버님도 조석으로 동네 한 바퀴는 여전하신데. 어떻게 우리 보고 편안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라는 말인가. 두 분을 당신이 모신다거나 요양원에 입소시킨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면서 말만 번지러 하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속 보이는 짓이다. 


  정초 첫날 주말이다. 아들과 딸은 반찬거리 챙겨 시댁에 다녀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점심 차려드렸다. 손자 손녀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노인은 행복하실까. 정초가 되어도 이웃에 사는 자식과 손자 손녀 외에 아무도 안 오니 화를 내지만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은 않으실 거다. 노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식들이 모두 노인이란 것을. 먼 길 오가는 것이 힘에 부친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한다. 모름지기 자식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잘 봉양해야 한다는 것만 아신다. 마침 삼촌이 온단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다녀간다. 그나마 오 남매 중 가장 양호한 편이다.

 

 정초 이튿날 일요일, 점심 먹고 삼촌 얼굴도 볼 겸 시댁에 내려갔다. 노인의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마당에 서서 시아버님의 목소리를 듣다가 현관문을 꽝꽝 두드렸다. ‘아버님, 우리 왔어요. 삼촌은 벌써 갔어요?’ 애써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삼촌과 목욕탕 다녀오셨냐고도 물었다. 노인은 퇴직한 삼촌이 어디 직장 다니는 거냐고 묻는다. 며칠 있다 가도 되는데 하룻밤 자고 가기 바쁘다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내한테 그 돈 안 나오모 너희들이 매달 우리 생활비 보태조야 안 되나 말이다.’ 그 말은 맞는다고 했다. 다른 자식들보다 옆에 사는 우리가 힘들 거라고 했다. 두 집 살림 살던 예전에 우리가 참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노인은 요양보호사에게 이틀에 한 번씩은 반찬값을 준다고 하신다. 모든 것을 다 당신 돈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돈이 모자란다는 뜻으로 말한다. 노인이 매달 받는 연금은 우리 아들의 한 달 봉급보다 많다. 바른 소리 했다. ‘부엌에 필요한 것들 제가 사다 댈 때는 돈 드는 줄도 모르셨지요? 아버님이 직접 사들여보니 생활비가 생각 외로 많이 들지요?’ 당신 돈은 당신 몸보신하고 치장하는 것에만 쏟다가 모든 것을 당신 돈으로 해결하니 아깝다는 뜻이다. 자식들이 모두 노인에게 정 떨어져 매달 조금씩 보태주던 용돈조차 딱 끊어버리자 그것이 섭섭해서 화를 내시는 거다.

 

 농부는 시어머님의 기저귀를 갈고 냄새나는 옷들을 벗겨 세탁기에 넣는다. 나는 저녁밥을 짓고 냉장고를 뒤진다. 삼촌이 가져온 반찬 두어 가지가 있다. 노인의 입에 맞기나 할지. 어제 챙겨드린 호박볶음과 꼬막무침이 조금 남았다. 삼촌이 차려놓고 간 밥상을 다시 챙겼다. 두 노인을 보면 몸이 먼저 힘들다. 나를 대하는 노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한동안 당신 뜻대로 안 해준다고 본척만척하더니 다른 며느리들이나 딸보다 내가 낫다는 것을 아셨을까. 당신이 아쉬우니 나라도 잡고 싶은 것이겠지. 어쨌든 노인이나 자식이나 뻗을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하지 않든가. 진작 좀 잘해 주시지.

 

 노인은 애들이 갔느냐고 묻는다. 집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감 재포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며칠 바쁘다고 했다. 며칠 내로 일이 끝나면 제 터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떠날 때 인사드리러 올 것이라고. 노인의 마음을 안다. 우리 애들이 오면 살갑게 대하니 옆에 와서 당신 시중들고 지냈으면 한다. 자식이든 손자 손녀든 누구든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길 바라는 것이 노인이다.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다. 노인은 삼촌이 하룻밤 자고 가기 바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나는 ‘바쁜 일이 있겠지요.’ 삼촌을 두둔하면서 노인의 마음을 쓰다듬어주기 바쁘다. 

 

 내가 설거지를 끝내고도 꼼지락거리며 안방과 부엌을 들락거리자 농부가 집에 가자며 끌어당긴다. 다음에 또 오겠다며 시댁을 나섰다. 두 노인의 눈이 등에 앉아 따라오는 것 같다. 삐거덕, 대문을 여닫으며 마음의 무거움도 내려놓고 골목을 나서고 싶다. 내 발자국에 반질반질 윤이 났을 것 같은 골목이다. 골목 앞 문중 재실의 청기와집의 위상도 쇠락해 간다. 친인척 형님과 동서들이 모여 시제 준비를 하며 시시덕거리다가 어른들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었다. 정숙하고 조용하게 정성을 다해 제수 거리를 장만해야 하는데 아녀자들이 방정맞게 수다 떤다고. 머쓱해서 집 뒤란으로 숨어들어도 웃음을 못 참아 킥킥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새파란 새댁일 때는 시제 때 오시는 어르신과 아재, 아주버니, 시동생 등등, 친인척 잠자리와 삼시 세 끼도 챙기고 시제 음식도 만들었고, 시제 뒤처리며 설거지가 몽땅 내 몫이 되어 손발이 시렸었다.

 

 그렇게 삼십몇 년이 지나갔다. 나도 노인이 되었지만 시부모님은 여전히 지척에 계신다. 구부정한 농부의 뒷모습을 보면 측은지심이 인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을 새록새록 새긴다. 옆 집 아낙이 인사를 하며 웃는다. 조금 모자라지만 참 선한 아낙이다. 그 아낙의 어머님을 ‘아지매, 아지매’하며 따랐었다. 시부모에 대한 불만도 스스럼없이 토로하면 토닥토닥 마음을 쓰다듬어주던 아주머니, 팔십이 넘으면서 퇴행성관절염으로 걸음 걷기가 어려워지자 당신 스스로 요양원에 보내 달라하셨다. 가끔 당신 집에 사는 딸이 궁금해 돌아오면 시어머니께 요양원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르겠다며 영감님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당신 따라가자고 하시던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 북망산 떠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휘청거리며 시댁 골목을 나오는데 왜 눈이 뻑뻑할까. 아랫 담, 윗담 아주머니들이 모두 상노인이 되어버렸다. 치매 환자가 된 아주머니도 있다. 자식들이 요양원으로 모신 아주머니도 서너 명 된다. 골목에서 마주치는 아주머니들도 모두 허리가 구부정한 상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백 세 시대라지만 노인 혼자 삼사십 년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벌써 2년째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동네 회관은 자물쇠가 채워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이웃 간에 모이지도 못한다. 노인들끼리 모여 삼이웃 동네 소문을 양념으로 놀던 자리가 없어지면서 모두 외로움에 시달리는 얼굴이다. 오랜만에 뵙는 시댁 마을 아주머니들이 파파 할머니가 된 모습을 보면 슬퍼진다. ‘너도 머리가 하야네. 시모 시부 때문에 고생이 많다. 뭐니 뭐니 해도 옆에 있는 자식과 며느리가 젤 욕본다.’ 헛말이라 해도 고맙기만 하다.  

 

  <늘 무거운 짐 지고

   고생만 하는 동생

   이제는 편안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기 바란다.>

  이런 문자 보내는 형제자매보다 욕본다는 이웃 할머니 마음이 더 살갑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주말에 와서 노인들 곁에서 무슨 말씀이든지 들어드리고 삼시세끼 따뜻하게 챙겨주고 가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효도고 그 부모님 옆에서 고생하는 동생을 편안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단 하루 만이라도. 아니면 차라리 ‘욕본다. 미안하다.’ 이런 문자 날려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욕보는 줄 아니까 마음이라도 편하라고 하는 애정 어린 말이겠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화가 난다. 잠깐 툴툴대고 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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