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성림은 진학을 포기하고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처녀 농사꾼이 되어 남의 집 품앗이를 비롯해서 논밭에서 잔뼈가 굵었다. 바깥일에 파김치가 돌아오면 또 동생들 뒤치다꺼리로 다리 쭉 뻗고 잘 날이 없었다. 부모님이 남긴 재산이라곤 오두막 집 한 채와 논 서마지기와 세 살 터울의 동생 셋이 전부였다. 하지만 성림은 억척스럽게 살았다. 등에 지게를 걸쳤으니 품삯도 여자 품삯이 아니라 남자 품삯을 받아냈다. 비록 자신은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책과는 담을 쌓았지만 동생들만은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 세 동생을 객지에 보내 놓고 유학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신은 틈틈이 라디오를 들으며 검정고시를 준비할 만큼 당찬 처녀 농사꾼이었다. 외양간에 황소 열 마리를 넣었을 때는 노처녀 소릴 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성림을 도마 위에 올리곤 했다.
“담실 띠 딸내미가 인물이 툭 터졌어. 잘 익은 능금이 따로 없거마.”
“누가 데려갈는지 복 터졌어.”
“조실부모 한 기 흠이제 인물 좋것당, 살림 맛 알것당. 참 아까운 처년디”
“그려. 지 동상들 다 고등과 보냈담서?”
“하암. 둘째는 공무원 시험에 떠억 붙었고, 셋째는 대학 졸업반이라 쿠제. 막내가 벌써 대학 간단다.”
성림은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입도 뻥긋하지 않고 오르지 죽어라 일만 했다. 모내기를 해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볏단을 묶어도 두 사람 몫의 일을 너끈히 해냈다. 사람들은 성림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속이 시원하다 할 정도였다.
그러나 성림이라고 꿈이 없을 리 없었다. 말썽 피우지 않고 잘 자라 주는 동생들이 고맙지만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성림은 마음이 허전할 때면 보현사를 찾았다. 보현사는 뒷 절이라고는 하나 다랑이와 비탈 밭을 지나 야트막한 산을 넘어야 했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 숲 속에 포옥 들어앉은 절은 인가와는 상당히 멀었다. 보현사는 작은 절이지만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골짜기를 끼고 앉았다. 절을 에둘러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치마 바위라는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다. 물은 그 바위 밑에서 콸콸 솟았다. 바위 밑은 작은 폭포와 웅덩이가 있었다. 물은 달고 시렸다. 절 아래 수리 동은 그 골짝 물로 식수를 하고, 농사도 지었다. 사람들은 땅 속에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는 모양이라고도 했다. 폭포 아래 용소에는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산다고 했다. 성림은 어려서 할머니께 들은 용소에 얽힌 이야기를 기억한다.
용소에 사는 이무기는 심술이 사나웠다. 이무기는 용이 못된 보복으로 가끔 물줄기를 끊어 놓기도 하고, 벌물을 내려 수리동과 양전리를 이은 들판을 싹쓸이해버려 흉년이 들게도 했단다. 어느 핸가 탁발을 다니며 암자 자리를 찾고 있던 젊은 스님이 수리 동을 지나게 되었다. 산세를 보니 절 하나가 앉음 직한데 그 골짜기에 서린 기운이 심상치 않아 용소를 찾게 되었단다. 그곳이 바로 자신이 찾던 절터라는 것을 안 스님은 치마 바위에서 바랑을 벗어던져 놓인 곳에 부처님을 모셨다니 그분이 바로 보현 암 주지 스님이었다.
보현 암 주지 스님은 성림에겐 부모와 같았다. 어머니의 당부가 아니라 해도 성림은 인자하신 노승을 의지하고 부처님을 의지했다. 또한 그 절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락거린 탓인지 절에만 가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조용한 산사의 풍경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 나지 않았다.
그날 성림은 울적했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봄이었다. 어머니의 제사 파 짓 날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저녁 막차로 왔던 동생들도 아침 첫차로 다 나가고 나니 허전했다. 다른 날 같으면 품앗이라도 나갔으련만 그날만은 쉬고 싶었다. 그런 날은 늘 보현 암을 찾곤 했다.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그리며 노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법당 앞에 앉아 부처님을 바라보다 오면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성림은 집안일을 말끔하게 끝내 놓고 보현 암에 갔다. 풀이 무성한 오솔길 옆은 온통 아카시아 나무숲이었다. 무성한 아카시아 숲에서는 달콤하고 짙은 향기가 코를 찔렀다. 성림은 울적하던 마음을 탁 털어버리듯 가볍게 뛰어 일주문 앞에 섰다. 대웅전을 향해 합장을 하고 절 마당에 들어섰지만 어쩐지 절간이 너무 조용했다. 적막만 가득 고여 있었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도 노스님의 인기척이 없었다. 실망한 성림은 습관처럼 법당으로 향했다. 법당에서 가볍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성림은 ‘참 스님도 별나시다. 법당에서 주무시다니.’하다가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스님을 놀래 킬 요량으로
“스님!”
큰 소리를 내면서 법당 문을 벌컥 열고는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누구야! 쌍!”
한 남자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건장한 체구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였다. 잠이 덜 깬 게슴츠레한 눈빛이지만 그 눈은 날카로웠다. 승복을 입었지만 앞가슴은 풀어헤쳐졌고, 머리는 봉두난발이었다. 한 열흘은 면도를 않았는지 구레나룻은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같았다.
“죄 죄 죄송합니다. 스님인 줄 알고.”
성림은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으며 고개를 숙여고 급하게 법당 문을 닫았다.
“이봐요, 아가씨? 절에 왔으면 부처님을 뵙고 가는 게 도리지, 그냥 가다니요? 내 잠 도로 물리고 가소. 한창 부처님 법문에 푹 빠져 있던 찰란데. 훼방을 놓았으니 보상은 못 해 줄망정 부처님께 사죄는 드리고 가는 게 예의 아뇨?”
남자는 법당 문을 열고나오며 싱글거렸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저는 스님인 줄 알고. 그럼 안녕히 계셔요.”
성림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잰걸음으로 절 마당을 빠져나왔다.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금세라도 우악스러운 손이 목덜미를 꽉 쥘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깐만 아가씨, 진짜 부처님도 안 뵙고 갈 거요?”
억센 손이 성림의 팔을 낚아챘다.
“와 이랍니꺼?”
“내가 아가씨 잡아 묵을라 카나. 그런 눈으로 보들 마소. 나도 심심하던 참인데 이야기나 하다 가소. 우리가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가면 섭섭하지. 햐, 아가씨 눈이 무섭네. 내가 저승 야차 같소? 안만 그래도 그냥은 못 보내 주겠소. 내가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거든. 참 우리 시님 만내로 왔소? 우리 시님은 좀 있다 올 꺼요. 난 공부 좀 하려고 들어온 사람이오.”
“이팔 좀 놓고 말 하이소.”
“아, 미안. 총각이 처녀 팔을 잡았으니 떨어지기가 싫은 모양이오.”
그제야 남자는 성림의 팔을 놓았다. 유들유들한 목소리며 하는 짓거리가 건달 같았지만 몇 마디 나누어보니 그다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참 내, 내 평생 이렇게 사람 그립기는 처음이오. 안 그래도 읍내 나가서 술이나 한 잔 할까 하다가 그랬다가는 이 절에 두 번 다시 발도 못 붙일 게고. 우리 시님 고약스런 성깔 아가씨도 알겠지? 내 꼴이 참 볼만 했지요? 염불에는 맘도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많은 중생이니 부처님 앞에 앉아 설법이라도 들어야지.”
“부처님 앞에서 낮잠 자는 것도 설법 듣는 깁니꺼?”
“참 아가씨는 몰라도 한참 모르네. 낮잠을 자야 꿈에 부처님을 만나고 설법도 듣지. 부처님이야 늘 법당에 버티고 앉아 자애로운 미소만 짓잖소. 그러니 내가 어쩌겠소? 부처님을 만나려면 법당에서 자야지. 안 그렇소?”
성림이 웃자 남자도 웃었다.
“아가씨가 웃으니까 관음보살이 현신한 것 같네. 참 예뻐요. 우리 재미 삼아 뽀뽀나 한 번 합시다. 이리 만난 기념으로다가. 진하게 응?”
“미쳤어 예? 참 이상한 아저씨네.”
“나 아저씨 아니우. 이래 봬도 이팔청춘 노총각이오.”
“아무리 봐도 늙수그레한 아저씨 거마.”
어느새 두 사람은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법당 앞 축담에 앉은 햇살을 가지고 놀았다. 아니 뒤란을 돌아 너럭바위에서 나무꾼의 억센 손에 잡힌 선녀가 되었다. 따끈따끈한 오월의 햇살 속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그때 그 남자는 오데로 갔시꼬?
성림은 갈수록 차가워지는 냉기를 꾹 눌러 참으며 중얼거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 설레 본 남자가 아니었던가. 어머니의 영혼이 어디선가 보고 있다가 자기를 인도한 것처럼 그 남자에게 첫눈에 매혹당하지 않았던가.
내 눈에 콩 깎지가 씌었던 거지. 안 그라모 그 인간이 그리 좋았을 리는 없지. 맨날 일 저질러 놓고 나 보고 메카라 할 때는 몸서리가 나도록 밉다가도 돌아서면 이자삐니 나도 참. 그래, 인연이지. 인연이 아니었다모 벌써 갈라섰겠지. 내 팔잔 걸 뉘한테 하소연할꼬. 그나저나 저 인간을 우짜모 좋을꼬. 쥑이지도 못하고 살리자니 내 속이 다 녹아 내리 것고. 이 일을 우짜모 좋을꼬.
성림은 기가 막혔다. 농촌에서 먹고사는 것도 빠듯한데 그 빚 갚으려면 십 년은 안 먹고 안 써도 못 갚을 거액이다. 거기다 농지 구입 자금이다. 축산 진흥 자금이다 해서 받아 쓴 기존의 빚도 갚아낼 엄두가 나지 않는 형편이 아닌가. 남편은 오랫동안 동네 이장 일을 하다 보니 정부에서 나오는 싼 이자 돈에 빠삭했다. 언변 좋고, 씀씀이 헤픈 남편은 정부 돈도 잘 끌어다 썼다. 공짜도 아닌데 공짜라는 식으로 끌어다 일 벌이고, 안 되면 손 털어버리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아무리 당차고 씀씀이가 모진 그녀지만 남편의 뒷감당을 해내기가 벅찼다. 막말로 똥줄이 빠지도록 움켜쥐어도 우리 구멍은 터져서 새 나갔다. 하도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젠 만성이 되어 어지간한 일은 그러려니 여겼는데 이번 일만은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여자 문제라면 나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바람이 난 적이 있었다. 양전 리 다방에 온 어린 티 순이와 불장난을 벌여 사네 못 사네 한 적도 있었다. 담장 너머로 보따리 집어던지며 나가라고 쫓아냈더니 다시는 그 짓 안 하겠다고 각서까지 쓴 후에 남편을 다시 받아들인 적도 있었다. 싸움이 났다 하면 지붕이 들썩일 정도니 동네에서 호가 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일은 분명 여자 때문은 아니었다. 성림은 여자의 직감으로 알았다. 그럼 어디에, 무엇 때문에, 그 큰돈이 필요했을까? 의심 가는 구석이 없진 않았다.
그 친구 때문일까? 설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힌 연후에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보자.
성림은 풋 방귀 뀌듯 푸시시 웃었다. 그녀의 닦달에 꼬리 내린 개가 되어 도망치던 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남편이 피하지 않았다면 아마 둘 중에 누군가가 박이 터졌거나 가전제품이 수난을 당했을 것이다. 20년을 부부로 살면서 서로가 터득한 게 있다면 맞불을 놓아 봤자 손해라는 사실이었다. 헤어지지도 못하면서 갈라서자 소리 입에 달고 산 날도 있었다.
젊어서도 못 헤어지고 산 여편네가 뭔 할 말 있겠노.
성림은 한증막 나무 의자에 큰 대자로 누웠다. 얼굴에만 수건을 덮었다. 천정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피부가 따끔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정도도 못 참는다면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되는 순간 참을 수 없을 테니까. 눈을 감으니 옛날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그를 처음 만난 날부터 여우에 홀린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성림은 남의눈을 피해 가며 밤을 낮 삼아 그를 만났다. 밤중에 성림을 찾아온 남자는 새벽이슬을 맞으며 절간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염불에는 뜻이 없으면서 절간 문턱이 달도록 디디고 다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아무리 조심해도 좁은 시골구석에선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담실 띠 딸이 참한 줄 알았더니 밤이슬 맞고 다닌다는 둥, 남정네를 집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둥, 소문이 퍼져 나갔다. 벌써 배가 남산만 하더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결국엔 보현사 노스님이 알게 되어 두 사람은 스님 앞에 불려 갔다.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간단하게 식을 올리게. 남의 눈도 있으니. 과년한 처니 총각이 만나다 보면 온갖 추접스러운 소리들이 나돌지 않을 수 없고 그걸 잠재우는 길은 어서 혼인을 하는 수 밖 없어. 두 사람 다 조실부모하고 의지가지 할 곳도 없으니 서로 의지해 살면 좋은 일 아닌가.”
보현 암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간소하게 식을 올렸다. 그는 정말 가진 게 없는 남자였다. 그녀처럼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 여기저기 떠돌다가 중이 된 백부를 찾아와 의지하고 있던 참이었다. 공부를 한다기에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놈팡이였다. 신접살림을 따로 날 필요도 없었다. 몸만 달랑 여자 따라 들어온 남자는 사람이 좋아서 금세 동네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언제나 농담 잘하고, 인심 좋은 데다 다 방면에 박식한 그는 어딜 가나 인기가 좋았다. 농사일도 곧잘 거들었다. 어려서부터 도시 속을 굴려 다니며 편하게 살아온 몸뚱인지라 농사에 농자도 몰랐지만 그녀를 도와 조금씩 농사일을 익혀 갔다. 동네 사람들은 담실 띠 딸이 서방복은 타고났나 보다는 소리도 했다. 신혼 때는 그야말로 꿈결 같았다. 성림에게 남편은 든든한 울이었다. 동생들에게도 관대했고, 아버지처럼 돌봐 주었기 때문에 동생들도 곧잘 따랐다.
세월이 흐를수록 수리 동에서 남편의 입지는 든든해졌다. 수리동의 반장을 거쳐 이장을 할 정도가 되었다. 성림도 어느새 두 아이의 어미가 되었고, 동생들도 모두 짝 만나서 제 밥그릇 차고 도시에 나가 산다. 알고 보면 남편의 힘이 컸다. 어찌 그것뿐이랴.
수리 동도 이십여 년 사이에 많이도 변했다. 죽자 사자 품앗이에 놉으로 짓던 농사일이 기계 농으로 바뀌었고, 수리 동의 좁은 다랑이도 경지 정리가 되어 반듯반듯해졌다. 재래식 집을 현대식으로 뜯어고치는 붐이 불어 좁은 토방을 넓히고, 마루와 축담을 막아 바람이 들락거리지 않게 유리문을 달고, 아궁이 대신 연탄보일러가 다시 기름보일러로 바뀐 입식 부엌에 현대식 목욕탕과 양변기가 놓이는 집이 늘었다. 살기가 넉넉한 집이나 주택 개량 융자금을 받은 집은 옛 집을 뭉개버리고 번듯한 양옥집을 지었다. 집집마다 콤바인이다, 트랙터다, 이앙기다 하다못해 바인더며, 경운기 정도의 농기계는 갖추어 놓았다. 알고 보면 그것들이 다 빚 덩이인 셈이지만 농촌 사람들에겐 귀하디 귀한 재산이었다.
그녀도 몇 년 전에 남들처럼 집을 뜯어고쳤다.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일한 집이라 다 헐어버리지도 못하고 지붕과 기둥만 남기고 벽을 헐어 위채는 마루와 부엌을 합쳐 안방을 넓히고, 아래채와 위채 사이의 공간을 달아내 입식 부엌과 목욕탕, 수세식 화장실을 넣었다. 아래채에는 방 두 개를 넣어 아이들 공부방으로 주고 축담을 높여 보일러를 깔고 유리문을 달았다. 축사에는 소 대신 온갖 농기계가 진열되어 있고, 거기다 승용차도 부리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은 담실 띠 딸내미가 알부자라고 했다.
그러나 속 빈 강정인 줄 알면 사람들은 뭐라 할까?
성림은 냉탕에서 나와 다시 황토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잠자기 딱 좋은 온도였다. 한숨 잤으면 싶은데 한증막에서 만났던 때밀이 여자였다. 여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서예. 분명히 아는 아지매 같은데. 오데 삽니꺼?”
“수리 동에 삽니더.”
“수리 동 예? 그라모 혹시 박영준이란 사람 압니꺼?”
“예? 아지매가 그 사람을 우찌 압니꺼?”
“요새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기 신기해서예.”
“어떤 사람인데예?”
“몇 년 전 IMF가 터지면서 우리 집도 부도가 났지예. 우리 집 양반도 씀씀이가 헤픈 데다 사람 좋아하다가 당한 기지예. 친구 보증 섰다가 살림 몽땅 날리게 됐던 기라예. 작년 가실에 살림집까지 경매에 들어갔는데 잡을 길이 있어야지예. 이미 신용 불량자 명단에 올라 있으니 대출도 받을 수 없었고예. 나는 친정 돈 끌어다 대고, 남편은 시댁 돈 끌어다 대도 한 2천은 도저히 못 구할 판이었지예. 막판에 우리 집 양반이 수리 동에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말이라도 해 보까 하데예. 밑져야 본전이다. 만내 보이소. 했지예. 수십 년 만에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카데예.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체면 차릴 짬이나 있었겠습니꺼. 그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했답니다. 그분은 두말도 안 하고 자기도 현금이 없으니 농협에 가자하더랍니다. 그분 이름으로 대출을 내서 주더랍니더. 세상에 그리 고마운 분도 있데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따악 맞는 말입디더.”
“그래 예? 그라모 그 돈을 갚았어 예?”
“아직 못 갚았지 예. 하지만 우리 집 양반이 그라데 예. 다른 돈은 다 떼먹어도 그 친구 돈은 꼭 갚을 기라고. 참 고마운 분이지예. 목돈으로 갚을 수는 없지만 매 년 원금이라도 조금씩 갚아보려고 저도 때밀이를 시작한 깁니더. 차차 단골도 생기고 기술도 늘겠지예.”
“그리 고마운 사람이 있으니 살아지는 것이겠지요.”
여자는 다시 손님의 부름을 받고 나갔다. 성림은 중얼거렸다. ‘박 영준, 너란 인간을 어째야 하나.’ 언젠가 남편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와서 ‘이런 우연도 있더라. 이건 필연이야, 죽은 우리 부모님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갑더라’고. 읍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길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그 친구 부모님과 남편 친구 부모님이 의형제를 맺어 친 동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고향 떠나 살면서도 가끔 생각하던 친군데 ‘만났어. 그 친구를 만났다고. 나도 불알친구 있어 임마, 까불지 말라고.’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갈 짓자 걸음을 걸으면서 든든한 친구가 만났으니 천군만마를 거느린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었다.
성림은 목욕탕을 나서며 보현사 아니, 연화사 부처님이나 뵙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