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해서 꿈을 꾸는 꿈은

서울에서 계속 미용하고 싶었던 나..

by 진혜

꿈을 잘 안 꾸는 나에게 몇 가지 반복되는 꿈이 있다. 그중 하나.

"나 아직도 인턴생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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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 숍을 운영 중인 엄연한 경력 헤어디자이너인데, 꿈에서 아직도 인턴이다.
장소도 열아홉부터 이십 대의 초반을 보낸, 서울 마포구 도화동이다.

그 당시 디자이너 선생님들도 꿈에 나오는데, 어쩐 일인지 내 모습은 여전히 인턴 유니폼 입고 여기저기 눈치 봐가며 열심히 일하더라.( 꿈인데도 너무 고단하다)

꿈속이니까, 꿈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니까 이왕이면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으면 안 될까?
너무 생생해서 일어나서도 속상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 그 당시 디자이너 선생님들은 '신'이었다. 아직도 연락드리는 분이 계실 만큼 스승의 은혜는 너무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유독 눈물짓게 했던 디자이너는 선생님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백 번을 생각해 봐도 그 사람의 언행과 행동은 억지였다. 그분은 지금 어떤 미용을 하고 계실까?

브랜드숍에서 막내 인턴부터 승급시험을 치르는 기간, 참 많은 희로애락이 있었다. 선배님들은 더 힘들게 성장하셨겠지만, '라뗀말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막내 인턴 시절 감정이 북받치면 눈물부터 뚝뚝 떨어져서 내 별명이 '서산 수도꼭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힘들었던 만큼 그때 그 시절 배운 기술과 미용업에 대한 마인드는 지금 나에게 미용의 본질에 대한 뿌리일 것이다. 많은 디자이너 선생님들의 스타일을 보고 배우며 기술도 늘고 내면으로도 많이 성숙해져서 고향에 내려왔으니까.

글을 써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왜 꿈에 반복되어 나오는지 알 것도 같다.

내 마음속 갈증이 꿈에 나온 듯하다.

나는 서울에서 디자이너 생활이 정말로 하고 싶었다.

승급시험에서 한번에 합격했지만 그곳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지 못하고 고향에 내려왔다는 것에 아쉬움과 자책으로 남았던, 그 마음 인가보다. 나의 선택으로 고향에 내려왔고, 현재도 미용을 하고 있으니 이제 그 불편한 마음을 떠나보내야 한다.

이왕 다시 꿈을 꾼다면,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멋진 디자이너의 모습으로 등장하길.

좀!
진짜 좀 웃으며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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