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손 잡고 또 돌아온 벚꽃
봄이다. 벚나무가 꽃을 틔우고 떨어진 꽃잎이 온 땅을 점령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비록 그 기간은 짧아도 벚꽃은 늘 그랬듯 인간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자신들의 관객으로 만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차갑지도 녹지도 않는 눈보라가 휘날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벚꽃의 마력에 홀려 시선을 빼앗긴다. 벚나무가 즐비한 길을 걷는 내내 고개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아 눈과 호흡기를 간지럽힐 꽃가루와 작년에 깨끗이 빨아둔 봄 신발에 잔뜩 밟힐 꽃잎과 버찌가 덮쳐온다. 맛도 없으면서 빨갛고 끈적거리는 즙과 신발 밑에 씨를 콕콕 박아서 성가시게 하는 그 버찌가. 나무에서 우수수 쓰레기가 떨어진다. 또 어느 세월에 다 치우나 막막하다.
그래도 예쁘긴 예쁘다. 꽃이 지고 난 뒤의 일이 골치 아프긴 해도 참 예쁜 식물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산은 물론 공원과 거리에서 아름다운 빛깔과 자태를 뽐내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그들을 보면 그제야 새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얼마 전 다녀온 대만에서도 벚꽃을 보았다. 찬바람을 견디며 피어있는 분홍빛의 벚꽃을 미리 만난 덕인지 새해에 이곳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쓸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한반도에서는 4월은 되어야 피어나고 한 달도 못 가서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하는 벚꽃을 더 일찍 눈에 담을 수 있었으니 행운이 아니겠는가. 이토록 아름다운 식물이라서 국보이자 유네스코 등재유산인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제작하는 데도 쓰인 모양이다. 전체 목판의 64%가량이 벚나무(산벚나무 품종)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목재가 단단하면서 가공이 쉽고 결이 아름다워 가구와 식기, 악기 등 다양한 물건의 제작과 건축에도 쓰이고, 껍질은 습기 방지용으로 활 안쪽에 덧붙이거나 약재로도 쓰인다니 예로부터 참으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선조들은 먼 옛날부터 한반도에 뿌리내려 인간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이 땅을 지켜온 나무에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염원을 새긴 것이다.
너무 미워하지만은 말아야겠다. 어차피 땅 위에 온갖 것들 밟느라 더러워지는 게 신발이다. 봄비가 내리면 빗물이 다 씻어주겠지. 꽃도 나무도 우리도 언젠가는 모두 시든다. 뭐 하러 미워하는 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까. 내일도 모레도 벚꽃 보러 가야겠다. 가서 오래오래 눈에 담아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