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지만 하늘과 땅 양쪽에서 그 커다란 몸집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는 생명체가 있다. 가히 조류는 공룡의 후예라는 말에 걸맞은 존재이다. 왜가리는 서울 한복판의 청계천에도 나타날 만큼 인간과 가까이 살고 있다.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산다고 한다. 물가에서 또는 물속에서 흔들림 없이 우뚝 서서 매서운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하천의 최상위 포식자다운 위엄이 느껴진다. 평소 움직임이 거의 없고 설령 이동하더라도 매우 느릿느릿 걸어서 얼핏 둔한 동물처럼 보이나, 길고 뾰족한 부리로 먹이를 잡을 때는 젓가락으로 딱 하나 남은 고기 한 점을 낚아채는 인간보다도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자신에게 시선을 빼앗긴 인간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활공하는 광경은 웅장할 지경이다.
물가에서 사냥 중인 왜가리를 보고 있으면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살갗을 태울 듯이 뜨거운 여름에도, 살갗을 할퀴는 듯이 매서운 겨울에도 물에 발을 담근 채 한참을 미동도 없이 서 있다. 하천을 지나며 왜가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가 두어 시간쯤 뒤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그 자리에 아까 봤던 자세 그대로 서 있다. 모형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신중을 기하는 것이겠지만 정말 굉장한 인내력이다.
왜가리를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살면 마음이 얼마나 편할까?' 인간의 시선으로는 이해 못 할 삶이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이 허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늘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낭비 없이 현명하고 의미 있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왜가리는 그저 배를 채워서 살아가기 위해 그 긴 시간을 물속을 들여다보는 데 쓴다. 나는 오히려 그러한 그들의 삶이 더 의미 있어 보였다. 자연에 순응하며 유전자에 각인된 대로, 살아지는 대로 그냥 살아가는 삶. 얼마나 평화로울까.
인간도 왜가리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인간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삶에서 뭔가 대단한 걸 이루고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시간과 수명을 그저 의미 없이 써버리면서 살면 안 되는 걸까. 그렇게 별 의미 없이 자유롭게 억새 줄기처럼 마른 다리에 갈라지며 흐르는 물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왜가리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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