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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08. 2021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문명의 얼굴을 한 야만

 <빨간 머리 앤>은 꼭 보시라 추천하는 넷플릭스 드라마다. 워낙 유명한 스토리라 다 아는 이야기 아니냐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그런 게 늘 함정이다. 원작 자체도 흥미롭지만, 드라마는 원작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배치해두었다. 그리고 내가 드라마를 보며 꽂힌 많은 부분은 그렇게 추가된 스토리들이다.

그중 하나가 오늘 얘기하려는 ‘원주민 기숙학교’에 끌려간 카퀫의 이야기다. 시즌 3로 제작이 종결되는 바람에 아무런 결말도 짓지 못하고 끝나버린 스토리이긴 하다.

기숙학교에 보내진 원주민 소녀 카퀫에 대한 학대, 감금, 폭행 장면은 처음 본 순간 정말 충격이었다. 수녀와 신부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은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백인으로의 동화 또는 가톨릭 개종이란 명분이었다. 드라마에선 간신히 도망쳐 나온 카퀫이 다시 잡혀가는데, 원주민 부모는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한다. 과장 아닐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었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Alberni Indian Residential School의 학생들 1960 @ United Church Archives, Toronto

캐나다 진실과 화해 보고서에 따르면, 1933년 이후 아이들의 보호권이 '부모가 아닌 교장에게 있다'로 명문화된다. 입학 때 양육권을  학교장에게 일임한다는 각서를 쓰게 한 것이다. 당연히 부모가 요구하더라도 결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무단결석이나 탈출 학생은 경찰을 동원해 체포했고 가뒀다. 심지어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내보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학교가 아니라 '집단 감금 시설'이었다.

Kamloops 기숙학교 희생자 추모의 장소 @British Columbia, Canada 6. 6. 2021

요 며칠 캐나다는 암매장된 원주민 어린이들의 시신 때문에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현실은 드라마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5월에 215명의 유해가 나왔고 6월엔 751이 발굴됐다. 지금까지 1100 구다. 문명국가라는 캐나다에서 이뤄진 일이다.

'원주민 기숙학교'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는 1883년부터 1996년까지 100년 동안 정부와 가톨릭 교회가 운영했다. 말이 기숙학교지 '감옥'이었다. 캐나다에 139곳이 있었고 강제로 수용된 7살에서 15살 원주민 아이들만 15만 명이었다.

캐나다 오타와

명명백백하게 국가폭력이다. 1857년에 캐나다 주의회가 원주민을 동화시키자는 법을 만들었고, 1879년에 초대 총리였던 존 A, 맥도널드가 학교에 대한 보고서를 의뢰해 이게 기숙학교로 이어진다. 이때 보고서를 쓴 사람은 다빈(Nicolas Flood Davin)이란 인물인데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유사 시설을 견학하고 보고서를 썼다.


“만약 인디언과 무언가를 하려거든

우리는 어릴 때 손을 써야 한다”


다빈의 보고서(1880)다. 당연히 교육이 목적이 아니었다. 문화 말살이 목적이었다.

1831년 온타리오  Brantford에 최초로 문을 연 기숙학교 Mohawk Indian Residential School @캐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홈페이지
@캐나다 인권 박물관 자료 사진

강제로 아이들을 끌고 가 그들의 고유문화를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원주민과 혼혈(메티스), 이누이트가 대상이었다. 제복을 입히고 머리를 자르고 모국어를 금지시켰다. 원주민 말을 썼다고 혀에 바늘을 꽂는 등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원래 자신의 이름을 못쓰게 하고 유럽식 이름으로 바꿨다. 심지어 이름 대신 그냥 번호로 부르기도 했다.  때리고 학대하고 굶겼다.  옷장이나 지하실 등 폐쇄 공간에 감금시키는 처벌은 허다했다. 때리는 것도 일상이었다. 공개적으로 옷을 벗긴 채 생식기를 가격하는 등 극도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조치도 이뤄졌다. 가톨릭은 그걸 ‘신의 이름’으로 행했고 정부는 ‘국민의 돈’으로 이런 일을 시행했다. 2015년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보면 이 기간 4100명의 아이들이 숨진 걸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록되지 못한 경우까지 감안하면 만 명이 넘을 거라는 게 진실이다.

기숙학교의 의료 시설을 조사한  P.H. Bryce 박사는 기숙학교의 의료 조건을 "국가적 범죄"라고 표현했다  @캐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홈페이지
7살에서 15살 아이들의 강제입소 결정은 1920년 Duncan Campbell Scott에 의해 이뤄진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홈페이지

이런 시설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게 1996년이다. 그때까지 이런 짓을 한 것이다. 유해발굴로 시끄러운 서스캐처원(Saskatchewan)에 마지막 학교 '고든 기숙학교'가 있었다. ‘야만인’ 원주민에 대한 문명화란 미명 하에 자행된 일이다. 문명화. 하지만 발견된 유해 중엔 3살짜리도 나왔다. 이게 뭘 의미할까? 바로 가톨릭 신부들이 인디언 소녀들을 임신하게 했고 태어난 영아까지 살해했다는 끔찍한 얘기다.  이게 언론이 쉬쉬하며 쓰지 않고 있는 실상이다. 그리고 교황의 공식 사죄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Nürnberg, Deutschland

생각해보면 나치에 대해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라도 열렸다. 하지만 이 건으로 누가 처벌받았단 얘길 못 들었다. 보고서만 냈을 뿐 사실상의 문제 해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초반기 캐나다 정부는 범죄를 저지른 정부와 자신들을 분리시켰고 시간 끌기에 치중했다. 이런 식의 말뿐인 사과에 오죽했으면 당사자들이 유해발굴에까지 나섰을까? 그것도 2021년에.


기숙학교가 캐나다에서 처음 이슈화된 건 1990년이다. 당시 후임 필 폰테인(Phil Fontaine)이란 여성이 캐나다 TV CBC에 출연해 기숙학교 3학년 때 자신과 동료 20명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조사를 요구했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증언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간 이들이 지금까지의 변화를 이끈 당사자들이란 얘기다.


또 하나 놀랍고도 충격적인 건 판박이처럼 똑같은 일이 호주와 미국에서도 자행됐다는 점이다. 할 말이 없다.


“다르다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같지 않을 뿐이죠” <빨간머리 앤>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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