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탐욕, 그 어딘가에서
<하라쇼 러시아>란 여행기를 읽다가 ‘카잔의 성모’ 얘기가 흥미로워 좀 더 찾아봤다. 반 페이지 정도의 설명으론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아서. (표지 사진은 페테르부르크 카잔 성당의 외관이다)
카잔의 성모 이콘이 처음 그려진 건 콘스탄티노플에서였고 이게 13세기 정도에 카잔에 전해진 걸로 추정된다.
카잔은 어디에 있는 도시일까 궁금해 찾아보니 볼가강이 흐르는 타타르스탄 지역이었다. 모스크바 아래쪽이다. 몽골계인 투르크계 민족이 정복했던 땅이란 흔적이 지명에 턱 하니 남았다. 버젓이 ‘타타르인의 땅’이라고 쓰고 있다. 카잔이 이렇게 타타르스탄의 주도였던 시기, 성모 성화에 대한 기록은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흘러 16세기 폭군 이반에 의해 카잔이 러시아 영토가 될 때까지는.
이야기의 출발은 1579년이다. 당시 카잔에 큰 불이 났다. 그때 열 살짜리 소녀 Matrona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한 곳을 파보라고 했다. 소녀는 이 사실을 주교에게 말했지만 주교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소녀는 두 번 더 꿈을 꾼 후에 어머니와 함께 성모 마리아가 가르쳐 준 곳을 파헤쳤다. 무너진 건물 잿더미 아래에는 성화가 있었다. 타타르인으로부터 지켜진 성모 성화였다. 이게 1579년 7월 8일의 일이다.
주교는 당장 이 성화를 니콜라스 성당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날 성당에 있던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 후로 크고 작은 기적이 이어졌다. 처음 성화가 발견된 곳엔 결국 수도원이 만들어졌고 성화가 보존된다.
모스크바는 당시 폴란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있던 주교가 3일간 금식 기도를 드리는 중에 성화를 러시아 저항군 지도자에게 가져가라는 응답을 듣는다. 충실히 따랐고, 1612년 10월 22일, 모든 폴란드 군사는 모스크바를 떠나게 된다. 러시아인들이 카잔의 성모 성화를 더 추앙하게 된 이유다.
그 후 성화는 두 세기 정도 모스크바에 머물렀다. 덕분에 모스크바엔 카잔 대성당까지 지어진다. 그 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또 승리하는데 러시아인들은 ‘카잔의 성모’가 도왔다고 믿는다. 1821년 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새 수도가 되면서 성화는 페테르부르크로 옮겨진다. 당연히 페테르부르크에도 카잔의 성당이 새로 지어졌다.
흥미로운 건 당시까지 이적을 행했다고 주장된 카잔의 성모 성화가 러시아에 10개 정도 있었는데 모두 성화로 여겨졌다. 다만 원본 논쟁은 계속됐다. 누군가는 카잔에 남겨진 게 원본이라 했고 누군가는 페테르부르크로 옮겨진 게 원본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금 둘 다 원본이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카잔에 있던 성화는 절도를 당했다. 성화보다 그 위에 씌워진 금 프레임을 노린 범행인 게 분명했다. 범인은 잡았지만 성화를 찾진 못했다. 페테르부르크 것도 혹자는 1917년 혁명 당시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볼셰비키로부터 지키려고 그랬단 얘기도 있고, 볼셰비키들이 나라 밖으로 팔아먹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성화가 2차 세계 대전 ‘레닌그라드 봉쇄’ 때 참호를 파는 과정에서 행렬 맨 앞에 있었다는 기록도 나오니 뒤죽박죽이다. 확실한 건 이제 원본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도 카잔에 가면 성화가 있는데 이건 포르투갈에서 넘어온 것이다.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봉헌된 성모 성화인데 연도 측정을 해보니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성화로 인정됐고 바티칸으로 보내졌다가 요한 바오로 2세가 카잔에 선물한 것이다.
원본은 어디에 있을까?
참고로 ‘이콘’은 캔버스 위에 금박을 입히고 템페라 화법으로 그려진 동방정교의 성상화다. 얘기가 번지긴 하지만 이콘 감상 팁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콘은 내가 보는 시점에서 그려진 게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림 감상이 목적이 아니고 경배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콘 속 등장인물이 나를 내려다보는 구조로 그려졌단 얘기다. 성모 마리아가 나를 내려다본다는 느낌, 이게 감상의 포인트다.
동방정교의 나라 러시아에서 가장 귀한 성물로 여겨지는 이콘 ‘카잔의 성모’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