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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27. 2021

늪, 도시로 바뀌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표트르 대제의 광기 또는 꿈을 만나다

도시는 삶이 쌓이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도시는 100년도 넘게 기본 바뀌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로  틀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어쩌면 도시의 역사를 만드는 변곡점이 아닐까? 오스만 때의 파리 대개조 작업이 대표적인 가 되겠다. 우마차가 다니던 시대에 도시를 설계했지만 파리는   자동차가 다니는 지금도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운용되고 있다. 문득 이런 도시를 만든 이들의 상상력이 궁금해졌다.

 번째로 생각난 도시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다.  ‘북구의 베니스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역은 1703년까지 그냥 숲과 늪이 가득했던 황량한 벌판이었다. 네바 강이 흐르는 곳인데,  네바라는 말이 핀란드어로 늪이란 뜻이다. 늪지대가 지금위 도시로 변한 것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누가 여기에 도시를 만든 걸까?

주인공은 바로 표트르 대제다. 러시아를 바꿔 유럽과 같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던 인물이었다. 사실 페테르부르크를 만든  그가 왕이라서 가능했던 일이긴 했다. 권력이 있었기에 4 명의 병사와 농부 3 명에 전쟁포로까지 동원할  있었고, 덕분에 도시를 만들  있었다.


건축 공사에 필요한 인력은 대략 추산해 보면 연 4만 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제 동원된 노동자와 농노들은 18,000명 정도밖에 안됐다. 결국 부족한 인력은 수감 범죄자와 전쟁 포로들로 채웠다. 이건 노동 강도나 처우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뼈 위에 건설된 도시'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병에 걸리거나 과로 때문에 숨진 이들이 6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아름다운 도시 건설 이면의 이야기들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는 이들이 빠지지 않고 들리는 곳엔  이삭 성당있다.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조망하고 싶은 이들이 많이 찾는다. 표트르 대제가  이삭의 날인 5 30일에 태어났는데 그를 기념해서 만들어진 성당이다. 사실  성당이 만들어진 과정을 상상해보면 도시 만들기의 숨은 노력을 잠작할 수 있다. 습지 위에 돌로 만든 성당을 올리기 위해선 먼저 지반을 다져야 한다. 그러려면 늪지의 땅을 파서 물을 빼야 한다. 그리고  바닥에다 원목들을 지하층의 암벽에 닿을 정도의 길이로 박아 넣는다.  개가 넘는 말뚝이 그렇게 박혔다.  위에 기반을 조성하고 성당 건립을 시작한다.  모든 과정은 매서운 추위와 맞서 싸우며 진행해야했다.


결국 늪이 가득한 곳에 다리가 놓이고 물길이 트이면서 운하 도시가 만들어졌다. 지금 다리 개수만  해도 대략 365개다. 100개가 넘는 섬이 연결되고 네바강과 발틱해가 조화를 이루게 됐다. 그러고 보면 ‘운하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면적의 10%는 그냥 물이란 걸 새삼 발견한다.


왕은 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기도 했다. 일례로 다른 지역의 석조 건축을 금지시킨 것이다. 또 귀족들한테는 이 지역에 의무적으로 저택을 짓도록 했다.

흥미로운  표트르 대제다. 유럽을 배우겠다면서 하사로 위장하고 네덜란드 조선소에 취직하기도 했다.  만드는 일을 직접 배운 것이다.  재밌는  표트르 대제의 키가 210m였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엔 이미 러시아 왕이 왔다는 소문이  퍼졌었다. 누가 표트르 대제인지는 당시 네덜란드에선 누구나  아는 비밀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꿈꾼 도시의 모습은 암스테르담 같은 운하도시였다. 지금도 페트로파블롭스카야 요새 건너편 삼위일체 공원 옆에 오두막집이 하나 남아 사연을 아는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바로 표트르 대제가 6년간 살면서 도시 건설을 진두지휘하던 곳이다. 왕의 거처라기엔 너무나 소박하지만 한 도시를 세워 올린 거대한 꿈의 산실이라 생각하니 그 집념을 느낄 수 있다.


표트르 대제는 1712년에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옮긴다. 사실 러시아 같은 큰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변두리 바닷가로 정해지는 것도 매우 특이한 경우다. 유럽과 가까운 곳, 또는 바다를 향한 집념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흔히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유럽을 향한 창’이라고 부르는데 주변에 세워진 그의 흉상은 지금도 네바강과 그 너머를 내려다보고 있다.


푸슈킨이 나중에 이 표트르 대제의 청동 동상을 소재로 시를 썼다 그중 일부다. "그곳, 황량한 파도 옆에, 그가 서 있었네, 강인한 사고를 북돋우면서, 그리고 응시했네, 오로지 먼 곳으로만 넓은 강 하구에 초라한 돛단배 한 척"


참고로 많은 관광 안내 책엔 표트르 대제가 베드로의 이름을 따 Peter와 도시를 뜻하는 부르크 burg를 합해서 Peterburg라 이름 붙였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실은 표트르 대제는 스스로를 피터 대제라고 불렀고 그렇게 불리길 원했다. 결국 페테르부르크는 사실  '표트르의 도시'였던 것이다. 한 인간의 광기일지 꿈일지 모르는 생각, 하지만 그 결과물인 도시는 여전히 아름답긴 하다.

사진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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