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폐쇄되었던 때의 정신과 병동 이야기
3년 간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해왔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딜 가든 답답한 마스크를 써야 했으며, 폐쇄된 실내공간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코로나에 걸릴까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줄이게 되었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야외에서의 활동을 줄이기 시작하니 답답함이 커졌고 답답함은 우울로 이어지게 되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확 걸리고 말지 지겨워!'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그나마 가볍게 지나간다던 오미크론 확진에도 나는 골골 되며 일주일 간 온갖 고생을 했다.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가 계속되고 있어 처음에는 '금방이면 사라지겠지'했던 것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코로나 19 누적 확진자 수가 1000만 명에 돌파했을 시기에 바깥세상에서 코로나로 인해 떠들썩했지만 우리 정신과 만성 폐쇄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오랜 기간 병동에 입원해있다 보니 '코로나'라는 것이 와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갈 일이 없으니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물론 병동 환자들도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조금은 느꼈을 것이다. 원래는 외출, 외박도 가능했으며 보호자와의 면회도 가능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 모든 것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환자들의 외출, 외박을 막았을 뿐이었으나 조금씩 갈수록 코로나 확진자 수가 더욱더 늘어나 바깥세상에서도 모든 야외활동을 중단하며 국민들이 코로나로 인해 공포를 느끼기 시작할 때 즈음엔 병동에 있는 환자들에게도 매주 pcr 검사를 시행하도록 했다.
병동 상황이 최악으로 가기 시작한 것의 발단은 한 근무자가 코로나에 확진되고 나서부터였다. 병동에 있는 환자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지만 근무자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때문에 환자들은 전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병동 생활을 했으며, 코로나에 확진된 근무자는 머리가 좀 띵했으나 자신이 확진되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근무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무자는 이내 자신의 몸 상태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음날 출근 전 신속항원검사(자가 키트)를 통해 확인해보니 코로나 양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병동에 바로 연락을 하여 이 사실을 알렸다. 이로 인해 병동은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출근 전 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던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으며 슬슬 불안하기 시작하며 별의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걸렸는데 모르고 있는 거 아니겠지? 아닌데 며칠 전 병동에서 나갔던 PCR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는데... 그 사이 걸린 거 아니겠지?', '우리 병동 환자들 코로나 걸리신 거 아냐...? 아 그럼 우리 병동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 많은 인원이 다 확진되면 우리 병원 뉴스에 대문짝만 하게 나오는 거 아냐? 이거 큰일이다...'.
그렇게 한 달 내로 우리 병동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인 상태가 되었다. 처음엔 한두 명씩 환자들이 확진되기 시작하더니 며칠 지나서 10명씩 묶어서 확진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근무자는 하루 종일 환자들에게 병동이 떠나가도록 소리 지르며 마스크를 써달라고 했으며 환자들은 계속해서 마스크를 벗었다. 확진된 환자들과 확진되지 않은 환자들을 분리하기 위해 긴 병동 통로 사이에 바리케이드를 쳐서 분리시켰고 환자들이 넘어가지 않도록 했으나 기존 습관대로 근무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넘어갔다. 원래 규정대로라면 확진된 환자들은 코호트 격리(감염자들끼리 묶어 동일집단으로 전원 격리)를 위해 전동을 보내야 하지만 확진된 인원도 워낙 많았고 다른 병동에서도 막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따로 근무자를 빼서 새 병동을 열기에는 근무자도 부족했고 많은 그 외의 어려움이 있었다. 병동에 처음 한두 명 나왔을 때에는 확진된 환자들만 더 큰 병원으로 바로바로 전원을 보냈으나 병동에서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하며 그 인원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자 우리 병동 자체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근무자들은 우주복같이 생긴 방호복을 껴입고 페이스 실드까지 착용하며 일을 하였고, 코로나로 인해 업무가 심각하게 늘어나면서 하루 13~16시간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근무자들은 점점 지쳐갔고 환자들에게 매일 아침마다 PCR 검사를 했으며 그날마다 확진된 환자 명단을 보고받고 병실 변경을 했다. 정신과 병동이기에 내과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에 focusing을 두고 간호를 해야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병동을 폐쇄하면서부터는 어려움을 겪었다. 환자들도 매일 해야 하는 PCR 검사와 확진되면 저 병동 끝으로 옮겨졌고, 흡연이나 산책 같은 것도 병동 폐쇄로 인해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더 예민해지게 되었고 근무자를 찾아와 힘들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시한폭탄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근무자들은 환자들을 더 꼼꼼히 사정해야 하나 그 시간이 줄어들었고 환자들도 예민 상태가 되면서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에는 느끼진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나서 환자들이 얼마나 노력해주었는지, 다행히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아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조심하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환자들과 근무자들 모두 코로나 확진이 되고 나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일들 중 하나가 있었는데, 금요일 오후 세시쯤 환자 한 명이 확진이 되었음을 공지받고 그 환자를 더 큰 병원으로 전원 보내려고 했다. 저녁에는 주치의가 퇴근을 해야 하며, 주말에는 타 병원에서 받지 않으므로 얼른 퇴원약 오더를 받고, 주치의가 작성한 의뢰서를 가지고 환자를 보내야 하는데 그때 주치의는 외래 업무도 보고 있으셨기에 아무리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고, 이 환자는 특이하게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기에 ANC(절대 호중구수 absolute neutrophil count), 쉽게 말하자면 타환에 비해 면역 수치가 현저히 낮아 코로나에 의해 사망까지 이를 수 있을 만큼 취약한 상태이셨기에 전원 보내려고 했던 타 병원에서 DNR(심폐 소생 거부 Do not resuscitate)을 받지 않으면 환자분을 받아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DNR 동의도 주치의가 보호자, 환자에게 직접 설명 후 받아야 하는 것이었기에 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시간은 없는데 주치의 선생님은 전화도 받지 않았고 간호부에서는 환자분 전원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병동으로 연락을 하였다. 그때 나는 혼자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조언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에는 겨우겨우 주치의와 연락이 닿아 해결이 되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전원을 보낼 수 없게 되었지만 운이 좋게도 전원 보내려고 했던 타 병원에서 그다음 날 받아주겠다고 하여 상황은 좋게 마무리되었다. 그 당시 나는 시간에 쫓겨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태일 뿐 아니라 가뜩이나 코로나 폐쇄병동으로 바뀌어 과도한 업무와 오버타임으로 일하고 있던 터라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지친 상태였기에 그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나왔다.
시간이 꽤 지나고(그래 봤자 몇 개월 전이지만) 나서 지금 가장 힘들었던 그 당시를 생각하면 정신과 병원이 아닌 일반 병원에서는 얼마나 더 고생을 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고 모든 의료진분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환자분들도 팬데믹이 지속되자 지치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환자들은 3년 동안 밖에 나가는 것이 제한되어(물론 오랜 기간 입원한 이유도 있다) 햇빛을 충분히 쐬지 못해 일반인에 비해 vit D 수치가 결핍되어있어 약을 처방받아서 드신다. 나는 오늘도 힘들어하는 환자분들을 보며 팬데믹이 종결되고 어서 서로 웃으며 햇빛을 쐬며 산책도 나가시고 보호자분들과 면회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날까지 힘을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