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병동에서 볼 수 있는 환우애
오늘은 공휴일이라 병동도 조용하고 환자들도 가족에게 추석 잘 보내라며 안부인사 전화를 돌리느라 바쁘다.
"아니, 선생님 추석인데 오늘 나오셨어요? 내일은 나오세요? 아휴 선생님네는 제사 지내세요?" 명절만 되면 환자분들은 근무자들에게 온갖 질문을 쏟아낸다. 평소에는 할 일이 많아 사소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해줄 여유가 없지만 공휴일인 만큼 병동이 한가로워지면 나도 병실을 돌며 환자분들에게 말을 걸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공유한다. 많은 수의 환자분들이 병동에 있다 보니 서로 얼굴은 알지만 이름을 잘 모르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같이 병동 생활을 하다 보니 치고받고 철천지원수처럼 싸우시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같이 앉아 식사도 하며 장난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싸우시더니 어쩌다가 이렇게 친해지셨데요?"라고 장난스럽게 물어보면 "아유 언제 적 얘기입니까 선생님. 우리 화해했어요." 라며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하신다. 사실 두 분이 싸우게 된 계기도 환자분 한 분께서 망상 호소를 하시며 상대방 환자에게 매일 돌아가며 '나는 환자가 아니라 대학생이야' 라거나 '주님만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 혹은 반대로 '교회 나가지 마요.'라는 이야기를 하자 상대방 환자분이 매일 바뀌는 말에 지쳐 싸웠다고 한다.
어떤 환자분들은 한 환자분께서 크게 다쳐 타 병원으로 잠시 전원을 가셨었는데 친했던 환자분께서 그분이 가신 날부터 우울감을 호소하며 식사도 잘 안 하시고 매일 근무자에게 와서 '그분은 언제 와요? 에휴...' 하며 애타게 환자분을 찾다가 다시 돌아오시자 매일 환하게 웃으며 의자에 앉아 어깨동무를 하며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문득 그분들이 어쩌다가 친해지게 되었는지 물었는데 한 환자분께서는 '그 친구는 너무 착해요.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좋아요'라며 칭찬을 하셨다. 잘 들어준다며 좋아하신 그 환자분은 매일 창문을 향해 울부짖고(왜 그러시는지 여쭤봤지만 질문을 하면 정색을 하고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신다) 지나가는 환자분들을 붙잡고 '외계인이 원무과를 통해 나보고 나오라고 했다.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라며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자 다른 환자분들은 귀찮아하며 피하지만 유독 한분이 '오 정말요? 더 이야기해보세요' 하며 관심을 가진 일을 시작으로 그 두 분은 베스트 프랜드가 되었다.
야간에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야간에는 환자 분들이 주무시기 때문에 조용한데 한 번은 라운딩을 돌다가 친한 환자분들끼리 조용히 병실 바닥에 앉아 근무자 몰래 커피(병동에선 믹스커피가 화폐처럼 사용되고 있다)를 두고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가 딱 걸린 것이었다. 범죄 영화에서처럼 내가 입을 딱 벌리고 "환자분들!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하자마자 서로 각 병실로 후다닥 도망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렇듯 서로 친한 환자분들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정말 혼자서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매일 조용히 입에 거미줄을 칠 듯이 가만히 계신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근무자들이 가서 소소하게 말을 걸거나 면담을 시도하는데 대답도 않고 근무자를 무시해서 가시는 분도 계시고, '네...' 하며 단답으로 대충 대답하고 회피하는 분들도 계신다. 종종 타환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고립된 분도 계신다. 하루 종일 천장을 쳐다보며 병동을 빠르게 돌아다니시는 분이 계신데 앞을 보며 가지 않기 때문에 지나가는 환자분들을 치고 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씩 환자분들이 A/O(acting out 행동화), 쉽게 말해 자해를 하거나 타해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환자분을 때리려고 시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진땀이 나기도 한다. 아예 하루 종일 공허하게 복도를 쳐다보며 입을 벌리고 다른 사람들과 아이컨택도 제대로 하지 않는 환자분도 계신다. 말을 걸면 정말 알 수 없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서 있으신다. '사과 14개.... 사과 14개...' 한번 발동이 걸리면 끊임없이 같은 단어를 이야기하시기 때문에 다른 환자분들도 말을 걸 시도조차 하지 않으신다.
한 분은 MR(mental retardation 정신지체)로 타환과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집중을 많이 해야 하며 알맞은 말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답변을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타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포기하신 분도 있으시다. 어떤 환자는 이런 MR환자를 이용하는 분도 있으시다. 말을 걸며 친한 척을 하시며 몰래 전화카드를 훔쳐가거나 보호자분들로부터 간식이 오면 환자분의 간식을 나눠달라며 강요하여 가져가시기도 한다. 그렇기에 병동 생활 규칙에 따라 타환의 물건을 훔칠 시 주치의와 상의하여 하루에서 길게는 삼일 동안 간식이나 흡연 제한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이 있게 되면 타환을 더욱더 믿지 못하고 혼자서 고립되어 가며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친한 환우가 있다는 것은 좋지만 정신과 병동이라 좋지 않게 작용된다면 특정 환자를 자극하게 되어 A/O(acting out 행동화)을 하거나 관계망상(예를 들어 특정 환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망상 호소), 잘못된 믿음(예를 들어 근거가 없는 잘못된 소문을 듣고 병동에 퍼뜨려 병동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지는 경우도 있었다)을 심어주어 그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근무자가 중재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또한, 너무 타환과 소통을 하지 않고 혼자서 고립된 환자분들도 돌아오는 대답이 거의 없더라도 매일 말을 걸며 환자분의 상태를 확인해 주어야 한다.
뭐, 그래도 여유롭게 병동 라운딩을 돌다 보면 환자분들끼리 웃으며 장난도 치시고 서로를 의지하며 병동 생활을 하시는 모습을 할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는 만성 병동이라 환자분들끼리 서로 꽤 오랜 시간을 보았기 때문에 의외로 힘들어 보이는 환자분을 도우려고도 하며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은 웬만하면 (경험에 의해) 피하려고 하신다. 근무자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지금의 화기애애한 병동 분위기를 만든 것은 환자분들의 노력이 더 큰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도 환자분들이 웃을 수 있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