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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Oct 10. 2022

정신과 간호사의 일기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정신과 병동에 들어왔을 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물론 학생 때 실습으로 정신과 병동이 어떠한 곳인지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일 때와 근무자로서 정신과 병동에 들어오는 것은 확연하게 달랐다. 근무자는 정신과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 폐쇄 병동이라니! '내가 이곳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까?'와 '얕보이면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날 수 간호사 선생님 인솔 하에 병동에 계신 환자분들과 간단히 인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초반에는 새로 온, 어리숙하고 어린 근무자로 인식해 환자분들께서 반갑게 맞이해주기도 했지만 거짓말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행동하기도 했다. 무시하는 환자분도 계셨다. "내가 여기 얼마나 오래 있었는데! 선생보다 내가 더 잘 알지!"라며 인계받지 못한 병동 규칙을 멋대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초반에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신체화'증상이었다. 신체화 증상은 실제로 내과적인 질환을 갖고 있지 않지만 머리, 복부, 다리 등 통증 호소를 하는 것이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필자는 과거 암 병동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환자분께서 진통제를 요구하면 대부분 그대로 드린다. 하지만 이곳은 정신과이기 때문에 이분이 실제로 내과적인 질환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품고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분들 파악이 잘 되지 않았을 때에는 내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충돌했었다. 또 어떤 환자는 환청, 환각이 보이면 속이 울렁거린다고 표현하시고 어떤 환자는 약 부작용으로 눈이 자꾸 올라간다며 약 부작용 방지 약을 달라고 한다. 일반 병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들이라 우왕좌왕했었다. '내가 올바르게 처치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내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었다. 또한 이상하게 우리 병동 환자분들은 약 드시는 것이 좋은지 계속해서 육안으로 보기엔 특이 증상이 없어 보이는데 '콧물과 기침이 나와 감기약을  먹어야 한다', '소화가 잘 되는 약을 달라', '저 환자가 먹는 약이 맘에 든다 나도 달라' 등 자꾸만 약을 처방받아서 달라고 졸랐다. 초반에는 잘 모르기 때문에 모든 걸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드려 약을 처방받았으나 조금씩 일을 하면서 환자분께서 증상이 없는데 억지 부리 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적절하게 자제시키게 되었다. 


나를 만만하게 보아 어떤 덩치가 큰 MR(정신지체 mental retardation) 환자분은 내 앞을 가로막고 나를 빤히 노려보았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내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덩치는 크지만 속은 여린 환자인 것을 알게 되어 단호하고 정중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 길을 터 주셨다. 가끔 근무자에게 욕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그 부분은 근무자가 정신과 병동에 들어온 순간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 년 조금 넘게 같은 환자들을 보니 어느 정도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조금씩 더 확연하게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근무자와 환자 사이에 라포(상호 신뢰관계) 형성을 했기 때문에 나를 근무자로 인정(?) 해 주었기 때문에 병동 라운딩을 돌 때마다 "오 선생님 나오셨어요?"라며 먼저 웃으며 인사도 건네시고, 별 거 아닌 일에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항상 수고하시네요 허허"라며 격려해주기도 하신다. 조금만 환자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너무나도 감사하다며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분도 계신다. 모든 분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평소보다 증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뿌듯하기도 하다. 


환자분들께서 나를 믿는 것인지 나에게 먼저 면담 신청을 하기도 하고, 사소한 이야기도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환자분께 조금 더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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