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Oct 21. 2022

익숙해지지 않는 상황

정신과 병동 근무자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환절기만 되면 환자분들 상태가 좋지 않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조금 더 무드가 뜨거나 환청이 더 심해지거나 더 예민해져 다른 환자를 때리는 일이 많아진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이곳저곳 아프다고 호소하시는 빈도가 많아지기도 한다. 


5일 전 나는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제 퇴근이 다가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4시 40분 조금 넘어 병동을 돌며 환자분들이 잘 계신지 확인하였다. 어떤 환자분께서 내게 황급히 오시더니 나에게 "선생님... 제가 OO이가 화장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봤는데... 깨워도 대답도 없고... 조금 떠는 것 같은데... 근데 제가 OO이 추울까 봐 다시 병실 침대로 데려다가 눕히긴 했어요."라고 일러준 뒤 다시 병실로 돌아가셨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무슨 일 나는 건가?'


나는 곧바로 해당 환자의 병실로 들어갔다. 환자분은 눈을 감고 코를 골며 평온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셨다. 마침 라운딩을 돌고 계시던 보호사님을 붙잡고 여쭤보았다. 


"보호사님, 혹시 이 분 seizure(경련) 하시는 거 보셨어요?" 

"응? 아뇨. 저도 마지막으로 이 환자분이 화장실 바닥에 앉아있는 것만 보았어요. 근데 이 분 예전에도 seizure 한 적 있는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졌어요."


처음 혈압을 쟀을 땐 혈압이 110/80mmHg 측정되었다. 근데 spo2(산소포화도. 정상수치가 95-100%)가 88% 확인되었다. 나는 바로 당직의 선생님께 콜 하여 상황을 설명했다. 당직의 선생님께서 병동으로 오셨을 땐 혈압에 60/50mmHg로 떨어졌다. 당직의 선생님께선 직접 P/E(Physical examination) 후에 산소마스크를 착용 후 NS(생리식염수 normal saline) 1L를 달고 더 큰 병원으로 후송을 보냈다. 



최근 이 환자분은 정신과 약물인 Clozapine(클로자핀. 조현병은 도파민 과잉 활동과 관련이 있음. 도파민이 작용하는 뇌의 수용체 차단)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 환자분은 환청이 심해져 클로자핀 복용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클로자핀의 가장 큰 부작용은 무과립증(골수에서 충분한 백혈구 생산하지 못해 생명을 위협한다)이지만 경련도 있다. 근무자들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클로자핀의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보고 있다. 어찌 되었든 환자분의 평온해 보이는(?) 모습만 믿고 지나쳤다면 병동에서 큰일이 날 수도 있을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이후 삼일 뒤 또 다른 환자분께서 아침 7시 즈음 배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해 당직의 선생님께서 보신 후 속 쓰림 방지 약을 처방 후 가셨으나 이후 아침 8시 즈음 다시 간호사실 앞에 누워서 배가 너무 아프다고 하셨다. 당직의 선생님을 다시 콜 하여 병동으로 올라오셨는데 환자분은 이미 대변을 온 바닥에 지린 상태였다. 상태가 심각해 보여 혈압을 재었을 때 이 환자분도 혈압이 60/50mmHg 확인되었으며 산소포화도는 측정이 안 되는 상태였다. 그 이후 더 큰 병원으로 후송을 보냈다. 후송 보낸 병원에서 계속해서 연락이 왔는데 직장 천공으로 수술이 필요하나 보호자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중에 다른 근무자를 통해 들은 바로는 보호자분이 계속해서 연락을 무시했고 겨우 연락이 닿았을 때 끊기 직전 조용히 '이제 죽을 건가 봐 큭큭'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틀 뒤인 오늘, 병동에 남아있는 환자분의 간식비를 송금하기 위해 보호자에게 연락했을 땐 환자분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할 수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가 처음에 직접 후송 보낸 환자분과 혈압이 비슷한 상태로 보냈기 때문에 확인은 못했지만 아마 그분도 사망하셨을 수도 있겠다라며 조심스럽게 추측하였다. 며칠 전까지 병동에서 웃으며 지내시던 환자분들께서 갑작스럽게 상태가 좋지 않아 지신 모습을 보고, 또 이후 한분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착잡하였다. 조금 더 빨리 발견했다면 달라졌을까? 라며 자책하는 근무자 분도 계셨다. 근무자들 모두가 우울해했다. 그리고 일을 할 때 조금 더 긴장하게 되었다. 혹시나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일을 하다가 환자분이 크게 기침만 해도 몸을 움찔하게 된다. 질식하셨을까 봐.



환자분들께서 제발 더 이상 더 큰 병원으로 후송을 갈 만큼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간호사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