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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31. 2023

여행의 이유

오사카와 교토 여행기

일주일 전 나는 일본 오사카와 교토를 다녀왔다.




나는 병원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라 조금만 쉬어도 다른 날은 오프 수가 현저히 적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몇 개월 전부터 여행을 고대하며 계획해 왔다. 처음 일본 비행기 값이 많이 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막연하게 '코로나로 해외로 여행을 못 간지 자그마치 3년이 지났네... 한번 가볼까?'라고만 생각했다가 생각을 접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며칠 동안 나는 '꼭 여행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 '그래,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겠어'로 생각을 고쳐먹고 곧바로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코로나로 인해 많이 답답하긴 했었다. 언제까지 이 마스크를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꼭 마스크 때문은 아니겠지만 뭔가가 내 목을 조르는 듯이 나를 묶어두는 것 같았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나도 모르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답답함을 느꼈었나 보다. 몇 개월 후에나 갈 수 있는 여행이었지만 비행기표를 구입한 것만으로도 무엇인지 모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창구같이 느껴졌다.




근데 조금은 이상했다. 어릴 때에는 비행기 이륙하는 그 울렁거리는 느낌만으로도 설레고 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모든 이뤄낸 것 같았다. 이번에 비행기를 탈 때에는 이상하게도 내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예쁜 그림처럼 펼쳐진 창밖에 보이는 구름마저도 이제는 그저 그렇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오사카로 가는 리피트 기차를 타기 위해 마음을 졸이며 뛰고 또 뛰어 '내가 일본에 왔다!'라는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온갖 진을 다 빼버렸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오사카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예약해 두었던 식당에 가는데 히라가나를 읽을 줄도 모르고 일본어를 못하는 나였기에 꽤나 고생을 했다. 출구도 '1번 출구로 나가세요'와 같이 간단한 한국과 달리 '서쪽 입구로 나가서 3번 출구를 찾으세요'처럼 왜 이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예약시간에 맞춰가지 못할까 봐 나는 꽤나 불안해했지만 쉼 없이 뛰고 뛰어 어떻게든 구석에 있는 식당을 찾아내었다. 그렇게 나의 오사카에서의 첫날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틀째에는 교토로 넘어갔는데 오사카가 명동과 같이 대도시의 느낌이라면 교토는 오랜 기간 일본의 수도였던 만큼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전통적이고 오래된 건물이 많은 곳. 오사카에 있을 때에는 사실 서울에 있는 느낌과 너무나도 흡사하여 내가 외국에 있다는 느낌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교토에서는 멀리서부터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며 '내가 이제야 해외에 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물론 교토에서도 처음부터 기차를 잘못 타서(급행을 타야 하는데 일반 열차를 탔다) 고생을 하긴 했다. 그리고 도착해서 알아보았던 일본 가정식집 입구에 '오늘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습니다.'라는 팻말을 보고 온갖 허탈감을 느꼈다. 그래서 배가 고픈 대로 매우 오래된 간판으로 작은 구멍가게 같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그림을 가리키고, 주인 노부부와 손짓 발짓으로 겨우겨우 대화한 끝에 오야코동(닭고기 덮밥)을 주문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낮술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생맥주를 하나 시켰다. 밝은 대낮에 술을 마시는 것은 정말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써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낮술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어떤가, 여행을 하고 있는데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밝은 대낮부터 발갛게 볼이 달아올랐고 그때부터 '아 내가 진짜 여행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를 옥죄고 있는 것들로부터.




교토에 있을 때 눈이 꽤 많이 왔다. 일본에서 1년 동안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지인의 말에 의하면 교토에 눈이 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라고 했다. 눈이 많이 와서 천으로 된 하얀 컨버스 신발이 까맣게 물들었지만 이 또한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발이 시려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는데 동기들로부터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지 물어보는 카톡을 보았다. 나는 해외에 있기에 당연히 전화나 문자를 받을 수 없어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초조해지고 있는데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제 O기 정신건강간호사 모집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날아갈 듯했다. 올해 나는 정신건강간호사를 수련하기 위해 여행을 가기 1~2주 전에 서류를 넣고 면접까지 본 상태였다. 사실 올해 외부에서도 꽤나 많은 수가 지원을 하여 나는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반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가서 합격 메일을 받는 것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설레는 일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다시 오사카로 돌아와서 이것저것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들을 사고 마지막으로 오사카를 한번 둘러보며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오사카에서는 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나는 문득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여행에 목매다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저렇게 많은 한국인들은 무얼 위해 일본까지 왔을까?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여행을 계획하였다. 일을 하다 보면 직장에서 지시한 것대로 해내어 가야 하며 계속해서 선임뿐 아니라 후임, 직장 동기들의 눈치까지도 보게 된다. 어쩌면 일상의 절반 이상이 직장에서 지내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나 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다. 하지만 여행에서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내가 계획을 해서 여행을 다니지만 변수가 생길 때에 조차도 그에 맞게 내가 '스스로' 계획해서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여행을 하다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낯선 사람들, 낯선 풍경에서 진정으로 고독함을 느끼며 타인에서 나에게로 집중되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조그마한 틀 안에만 나를 가두었는데 이를 조금씩 깨 나가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짧은 기간 안에서도 그 '낯섦'을 느낄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정신건강간호사를 수련한다면 일을 하면서 1년간은 실습, 수업, 과제, 시험 등으로 시간이 내기 힘들겠지만) 더 다양하게 여행을 다니며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설렘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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