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간호사의 일상
오늘 나는 야간근무를 하는 날이다. 출근은 오후 9시 20분이라 그전에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야간 근무 전 집에서 쉬다가 가는 사람,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를 하다 가는 사람, 집에서 자다가 출근 몇 시간 전에 나와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나는 게을러서 야간 근무라면 늦잠을 자고 침대에서 애벌레처럼 꿈틀거리기만 하다 밥만 겨우 차려먹고 출근을 한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사람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매번 밤낮이 바뀌어 '이게 뭘까...'라는 생각으로 우울감에 잠식되어 야간 근무를 하면서 동이 트는 모습을 보다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삼 교대를 하는 사람은 낮밤이 바뀌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과 동시에 불면증을 안고 산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해라' 등 다양한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삼 교대를 하다 보면 이와 같은 것이 조금 힘들긴 하다. 그렇기에 삼 교대를 하는 사람은 더욱더 자기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근 나의 모습처럼 밤낮이 바뀌어 사람이 쉽게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삼 교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야간근무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일단 우리 병원에서의 야간근무는 그 당일날 받았던 오더들이나 있었던 이벤트들을 정리하고 누락된 것이 없는지 확인 후 다음날 근무자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병동 스케줄 등을 확인하며 준비해 놓는 것이다. 야간 근무는 환자들이 수면을 취하기에 매우 조용하고(물론 병동마다 다르다) 데이나 이브닝 근무보다 훨씬 업무 시간이 길다. 우리 병원 같은 경우엔 야간 근무는 오후 9시 2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 40분까지 일을 한다. 그래서 그만큼 다른 근무에 비해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상대적으로 급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 오늘은 일주일 만에 돌아온 야간근무의 날이다. 앞으로 삼일 연속으로 야간근무를 해야 한다. 또다시 무기력한 루틴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물론 일찍 기상한 것은 아니지만) 창밖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이 나의 얼굴을 뒤덮을 때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 않아 아우성치는 나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차키와 노트북을 들고 밖을 나왔다. 이렇게라도 하니 평소와 다른 하루의 시작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 초보운전이라 멀리 갈 만큼의 배짱은 없어 소심하게 운전해서 20분 거리에 닿는 큰 카페를 가려고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음성에 온갖 주의를 기울여 겨우겨우 급하게 생각해 놓은 카페에 도착했다.
'금일은 준비과정이 늦어져 오후 2시에 문을 엽니다'
라는 팻말을 봤지만 예쁘게 파킹해 놓은 나의 차를 보고 다시 다른 카페로 이동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져 주변에 있는 밥집을 찾아 대충 점심을 때우고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카페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 오랜만에 독서를 하고 싶어 노트북으로 밀리의 서재앱을 켜놓고 이것저것 책을 서칭 하다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틀 전 나는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 27일부터 급성기 여자병동으로 로테이션(부서이동) 발령 났어..."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급격하게 얼굴빛이 어두워졌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물론 조만간 로테이션될 것을 온몸으로 직감했지만 막상 듣고 나니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무엇이든 새로운 곳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은 긴장이 되는 일이다. 심지어 급성기라니... 다른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의 환자들은 온갖 욕설에 소리를 지른다고 했다. 나에게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까지 했는데, "선생님 머리 기네... 머리채 붙잡히지 않게 조심하고..."였다.
그러다 보니 어제 사실 데이(오전근무)를 하면서 일에 100퍼센트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오늘도 야간근무를 가야 하지만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무기력하게 집에 있느니 그래, 이렇게 나와서 독서를 하니 조금은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어쩌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야간근무 때 무얼 하는지를 남기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조금은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작성한 것 일 수도. 뭐가 되었든 평소와 다른 시작으로 나는 색다른 기분으로 야간근무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힘을 내서 일을 해야겠다. 글을 급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사실 맞다. 왜냐면 이제 집에 가서 야간 근무를 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