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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예술의 도시, 파리로

1.

by 이연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부센터장님께 그만두겠다고 통보하였다.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해왔던 나의 사업을 마무리 짓고, 다음 인수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깔끔하게 직장을 나왔다.

후련했다.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괴로웠다. 지금까지 해온 간호 업무랑은 너무나도 달랐고, 단순히 일이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대상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기에 좌절감이 컸다. 하고 있는 일은 많고 나름 빨리 처리한다고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불어나는 업무량에 헉하고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센터를 마무리 짓고 나왔다.

대학교 졸업 이후 나는 몇 번의 이직과 퇴사, 공부 등으로 인해 쉼 없이 달려왔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왔는데도 남아있는 건 뭐가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뭐, 20대 중후반에 안 바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선택의 기로에 여러 번 놓여있었다는 것이지 않을까? 진득이 한 직장에서 경력을 쌓는 것 대신,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퇴사하고 새롭게 시도하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스스로 바보 같기도 했다. 그냥 버티고 다닐걸 그랬나?라는 생각과 이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잘 선택한 것인지 엉망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한 번 더 직장을 나왔고,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미래와 직장 고민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지?

퇴사를 하니깐 불안감이 큰 파도처럼 엄습해 왔다.

그러다 문득 파리가 생각났다. 뜬금없이.

그동안 나는 파리를 동경해 왔다.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이지만, 여러 예술 작품에서, 그리고 책에서 등 이상하게 파리와 관련된 거면 탄성을 내질렀다. 이때다 싶었다. 백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시간도 있겠다, 뭐라도 해보자. 그렇게 나는 파리행 비행기표를 구입하였다.


파리행으로 가기 2주 전 나는 비행표를 구입하였고, 그동안 열심히 가보고 싶었던 곳을 표 안에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최근에 한 일 중에 가장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었다. 책상에는 노트를 펼쳐 대충 지도와 끼워 맞추며 경로를 적어보았고, 노트북으로는 표에 루트대로 목적지를 작성하였다.


파리.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곳이었다. 최근 본 책도 파리 산문집(무정형의 삶)이었고, 보았던 드라마(에밀리 파리에 가다)도 파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의 인스타 게시물은 15개 이하였는데, 그중 하나도 파리를 그려놓은 작품(미셸 들르쿠르아)였다. 전부터 나의 무의식 속에서는 '너는 파리를 가야 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29살.

30살을 1달 앞둔 나는 무작정 퇴사를 갈겼고, 파리행 비행기표까지 구입해 버렸다.

이보다 더 충동적이고,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가 있을까?

미친 짓일지, 잘 한 선택일지는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이때다 싶었다.

2주

1주

그렇게 하루 전까지도 실감이 나진 않았다. 내가 퇴사한 사실과, 그토록 동경했던 파리를 가는 것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한 손에는 파리로 가는 비행기 표를 들고, 한 손으로는 위탁 수화물을 등록하고 스티커를 뽑아 붙이는 순간, '아 이제 진짜 파리로 가는 건가?'라는 생각에 미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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