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면 찾아오는 불청객
여름이 끝난 나 보다!
모든 것이 점점 시들해진다.
망할 놈의 우울증이
다시 찾아오는 듯하다.
평소에 즐거웠던 일들이
천천히 귀찮아진다.
우울증의 전조 증상이다.
마음과 몸이 땅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
모든 일상이
고문처럼 느껴져
숨을 쉴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귀찮다.
일 년을 꾸준하게 했던
일어 공부가 귀찮다.
집에서 셀프로 배우고 있는
오르간 연습도 하기가 귀찮다.
밖에 나가기도 귀찮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먹는 것도 귀찮다.
오늘은 온 가족이 집에 있었다.
거실에 모여서 테니스 결승전을
같이 보았다.
사실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그냥 앉아서 같이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결국 경기 중간에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 내내
침대에서 뒹굴었다.
다시 우울해지면 안 되는데...
아들이 내 기분을 눈치채었나 보다.
방문을 열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엄마, 괜찮아?"하고 물어 준다.
"어, 엄마 괜찮아! 좀 혼자 있고 싶었어!"
'아들이 나를 걱정해 주는구나!'
순간적으로 눈물이 고였다.
'그래! 이렇게 다시 무너지면 안 돼!'
다시 작년처럼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고 싶지 않다.
벌떡 일어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고장 난 샤워실에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이틀째 샤워를 안 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임창정의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았다.
머리를 감으며,
머리에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 주었다.
감사할 일들을
중얼거렸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나와 25년을 같이
살아 준 남편,
아들과 딸에게
감사하다.
일주일에 꼭꼭
2번씩 만나
풍요로운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TWO J&J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우울은 약을 꾸준하게 먹고,
나를 보듬어 주면
벗어날 수 있는 슬픈 감정의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