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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돌아가지 않고 다시 광주로 온다.

살아있다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

by Kevin Haim Lee

소년이 온다.


한강의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3년 전에 한국에서 읽고 깊은 한숨을 내 쉬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면서 다시 읽고 싶어졌다.


가끔씩 PD 수첩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면서 엄격결에 들어서 알게 된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관한 책이었던 것만 생각난다.


3년 전에는 '소년이 온다'를 죽은 동호가 혼이 되어 창백하게 광주로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하며 절망 속에서 책을 덮었었다.

그리고 그때 내게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이미 지나간 과거 역사였을 뿐 현재와는 연결이 되지 않는 45년 전에 이미 끝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024년 겨울에 대한민국 전국에 계엄이 선포되리라고... 멀리 이국땅에서 새벽까지 유튜브 뉴스를 보면서 정신이 몽롱하고 구겨졌던 그날 새벽.


겨우 두 달 전에 일어난 일이다. 광주에서 45년 전 일어났던 악몽이 실제로 한국에 또다시 일어날 줄은 꿈에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2024년 12월 3일은 실제로 전국에 계엄령이 대통령에 위해 발포되었고, 지금까지도 계엄령 선포의 의도와 차후 계획은 거짓말과 망상으로 복잡하게 엉겨져 점점 더 까마득한 사건으로 휘둘리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1980년 5월 18일에서 5월 27일까지 광주에서 벌어진 계엄군과 광주 시민들 간에 실제로 일어난 국가 계엄에 반발한 광주 시민들의 민주 투쟁이다.

나무위키에서 처음으로 5.18 항쟁을 어제 찾아서 읽어 보았다.


2024년 11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그녀의 모든 책을 다시 다 읽고 싶어 졌다.

'채식주의자'를 읽었고,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최근의 소설도 읽었다.


어제는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를 캐나다에 있는 언니에게 부탁해 해외 소포로 한 달여간을 기다리다가 어렵게 겨우 받아서 한 장씩 한장씩 아껴가면서 천천히 읽었다.


제1장 어린 새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시민군에 동참하게 된 평범했던 광주 시민들과 무지했던 계엄군이 등장한다.


너/동호-16살

나-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

은숙 누나- 수피아 여고 3학년

선주 누나- 양장점 미싱사

진수 형-스무 살, 대학 신입생

박정대 - 동호의 문간방 친구, 16살

정미 누나 - 박정대의 누나, 스무 살, 방직 공장 여공


그리고 그때 광주에 있었던 총을 쏴 제꼈던, 잔인한 군인들과 서울에서 명령을 내렸던 군부들


또한 총과 총칼과 곤봉을 맞고 죽어버린, 혼과 영혼으로 변해 아직도 죽어서 양심을 지키고 있는 2천여 명의 떠 돌아다니는 사라진 광주 시민들

그때 죽지 않고 계엄군에게 잡혀 상무대 유치장에서 잔인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문을 받고도 살아남아 지금은 죽은 듯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광주 민중화 항쟁의 생존자들과 가족들


그들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 속에서 술과 진통제와 수면제로 십여 년이 지난 오늘을 견디고 있다. 제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 책에는 광주 시민들의 평범했던 존재가 양심에 따라 평범한 시민에서 민주화 항쟁의 투쟁적인 시민군이 되기까지의 상상할 수 없는 악랄했던 사건들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그려져 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열흘이란 짧은 항쟁 기간으로 국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책 제목은 '소년은 간다'가 아닌 것 같다.


책의 제목은 분명히 '소년은 온다'이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라진 열여섯 살 문간방 친구 박정대를 찾아 헤매는 동호... 정대는 길거리에서 계엄군에 총에 맞아 쓰러졌고, 동호는 총을 들고 계엄군에 항복을 하려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두 소년의 미래는 민주화 항쟁 이전에도 존재했고 항쟁 이후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두 소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들과 그들의 혼은 역사에 살아있다. 그들의 혼은 결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늘도 우리에게 소리없이 다가 오고 있다.


열여섯 소년 동호와 정대, 그리고 상무대 유치장의 악랄한 고문을 거쳐 생존한 소년 영대.


정신병원에 평생 입원을 하게 될 성인 영대의 살아 있는 영혼과 실종되고 죽임을 당한, 순진하게 살해 된 어린 영혼들의 혼들은 어린 새처럼 지금도 광주에 퍼덕이고 있다.


제2장 검은 숨


박정대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혼이 십자가 모양으로 쌓여있는 사체들의 검은 숨 사이를 밤마다 돌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사그작 사그작 보여준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일어났던 열흘 동안의 악랄한 계엄군의 실태에 내 몸에는 한 겹의 소름이 돋았다.


결국, 검은 그림자 시체 숨들은 휘발유와 시커먼 그을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되어 밤하늘에 천천히 뼛속까지 불태워진다.


사체들의 증거가 더럽게 사라지는 불꽃 속에서 죽은 광주 시민들의 혼은 시체와 함께 호로록 대기 속으로 함께 사라졌다.


제3장 일곱 개의


계엄군의 고문을 견디고 살아남은 은숙 누나.


광주 민주화 항쟁 5년 후에도 총과 대검과 곤봉, 땀과 피와 살, 젖은 물수건과 쇠 파이프의 세계를 결코 잊지 못하고 있는 그녀.


은숙 누나는 체념과 복종, 공허함이 뒤섞인 어두운 얼굴로 오늘을 죽은 듯이 살아간다.


조그만 출판사에서 그녀는 정부의 출판 검열과와 상대하면서 그들에게 뺨을 얻어먹어가며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녀가 겪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의 참상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계엄군들이 군중의 힘을 빌려서 저지른 잔혹한 야만과 비인간적인 폭행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검열과에서 맞은 7대의 따귀 수를 한 대씩 하루에 천천히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그녀에겐 밤마다 나타나는 순진하게 살해된 열여섯 살 소년들의 모습이 살아서 돌아온다.


그녀의 뺨에서 점점 사라지는 고통은 마음 속에서는 두 배로 그녀를 휘감는다.


제4장 쇠와 피


계엄군에 체포되어 김진수와 함께 고문을 당하고 군사 재판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뒤,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 석방된 나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나는 그때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이었다.

나는 계엄군에게 '극렬분자, 총기 소지'로 낙인 되어 상무대 유치장에 감금되어 김진수와 한 조가 되어 고문을 당했었다.


나보다 3살 어린 김진수가 자살로 죽고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우고 있다.


유치장에서 알게 된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던 조카 뻘인 열여섯 살 영재가 고문과 배고픔을 버티고 석방된 후에도 여섯 차례 손목을 긋고, 매일 밤 수면제를 술과 함께 먹는 이유를 그는 알고 있다.


나에게 영재는 정신병원에 결국 입원하게 되고, 평생 퇴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나는 여전히 5.18 민주 항쟁의 잔혹한 고문의 기억 속에서도 택시 운전을 하며 죽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제5장 밤의 눈동자


양장점 미싱사였다가 동호와 함께 시민군에 합류했던 임선주 누나.


동호와 은숙 그리고 진수와 함께 죽은 시민군의 시체를 유족들에게 인계하는 일을 했던 그녀는 그때 살아남아 이제 만 사십삼 세가 되었다.


그녀는 세상과 등지고 조금만 회사에서 녹취를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회사 직원들에게 미스터리 한 사람이다. 과거에 대해 어떤 사실도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대의 누나였던 스무 살의 정미의 시체를 목격했고 동호의 죽음도 사진으로 보았다.


그녀는 광주에서 그녀가 겪었던 고문의 증언 요청을 철저한 침묵으로 상대한다.


그녀는 아직도 계엄군의 총과 대검과 땀과 피와 살, 젖은 물수건과 쇠파이프의 세계를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절규한다.


그녀가 계엄군에게 당한 잔인한 고문들을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녀는 5.18 민주화 항쟁에서 살아남은 시민으로서 그 당시 겪었던 사실에 대한 증언 인터뷰를 계속 요청받지만 도저히 증언을 해 낼 수가 없다.


그녀는 그녀가 광주에서 직접 겪었던 비현실적이고 추악한 고문 사실을 헐겁거나 빡빡한 단어들을 덧붙이고 꿰매서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따라서 증언 요청을 매번 거절할 수밖에 없다.


제6장 꽃 핀 쪽으로


16살의 나이에 계엄군의 총부리에 의해 직선으로 쓰러져서 죽임을 당했던 5명의 소년 중에 한 명이었던 너/동호의 어머니.


하루하루의 악몽과 불면.

체념과 복종과 공허함이 구역질 나게 뒤섞인 어두운 얼굴,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는 다르게 동호 어머니의 슬픔은 너무 춥다.


방금 깐 아스팔트의 열기가 우연히 그녀의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달래 준다.


왜 동호를 그때, 그날 밤 집으로 데려오지 못했는지 한없이 자신을 책망한다.


죽은 정대와 죽은 정미 누나를 찾아 광주를 찾아 헤매다 시민군이 되어 버린 자신의 아들을 자신이 죽인 것만 같아 숨을 쉴 수가 없다.


지병으로 숨진 남편이 부럽다. 죽으면 죽은 자들은 서로 만나서 얘기도 하고 만져도 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한번은 꼭 읽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커피 한잔을 천천히 들이키듯이 멈추지 말고 책장을 넘기면서 1980년 5월 18일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광주는 아직도 침묵 속에서 고통 받고 있고, 헛기침으로 등한시 되고, 망설임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45년 전 우리나라 광주에서 조립되어진 비극의 흑역사를 우린 이제 끄집어 내어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되는 이념의 투쟁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은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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