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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 소매치기

아직도 마음이 울렁 술렁

by Kevin Haim Lee
친구에게 받은 클래식 입문서

이 글은 참으로 힘들게 쓰게 된다.

쓸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다 결국 쓰기로 결정하였다.


유럽 여행의 마지막 나라 밀라노에서 나는 보기 좋게 전 재산을 소매치기당했다.

이스라엘에서 어렵게 1년 반을 모은 꽤 되는 돈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소매치기가 창궐하다는 정보가 있었는데도 그날은 기차에서 숙소를 찾으러 가면서 내 주위가 산만해져 있었다.


기차역에서 지하로 내려가면서 트렁크를 끌고 정신없이 엘리베이터를 탔었다.


엘리베이터는 사람으로 빽빽이 가득 찼었고, 나는 잠깐 숨을 고르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때 소매치기가 앞에 찬 내 파우치에서 현금 봉투를 소매치기한 것 같다.


현금 봉투가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 하늘이 노래졌었다.


일단 처음에는 어디서 사라졌는지가 확실치가 않았다. 소매치기는 전날 저녁에 없어졌으나 나는 그다음 날 아침에 그 사실을 알았다.


결국 정신 차리고 한참을 생각해 보니 그 전날 엘리베이터를 탄 일에 의심이 들었다.


'맞아! 거기 일 수 있겠다!'

생각이 금방 정리가 되었다. 이제 와서 어찌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다음에 든 생각은 내가 너무 멍청했다는 나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앞가방이 아닌 뒷가방 깊숙한 곳에 돈을 넣었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내 돈봉투를 훔친 도둑들은 봉투 안에 든 거액에 얼마나 기뻐했을까?


나는 가슴이 먹먹하다가 30분쯤 후에 정신을 되찾았다.


친구들과 밀라노를 2박 3일 여행하는 일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 생각에는 내가 좀 더 젊었다면 약이 올라 며칠을 씩씩거렸을 것 같다.


30분쯤 멍해 있다가 해결 책이 없다는 사실에 어렵지만 단념이 들었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상황을 받아 드리려고 노력했다.


살면서 이 만큼의 돈을 잃어 본 적은 없다. 누구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날리지 않고서야 목돈이 사라질 이유가 없다.


이스라엘 가족과 한국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 와서 나만큼 속상해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잊자'

'액땜한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을 단단히 단단히 여며 매었다.


하지만 여행 끝에 서울에 도착한 나는 몸살 비슷하게 몸이 아팠다. 잠도 잘 못 자고 화장실도 잘 못 가고 한국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흔들거렸다.


시차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가족을 안심시키면서 거의 1주일은 상심 속에서 속이 많이 상해 있었다.


아마도 밀라노에서의 소매치기는 싹 잊고 싶지만 평생 잊히지 않을 사건이 될 것이다. 그나마 1주일 후에 마음을 다져 먹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제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다시 이탈리아는 여행하고 싶지가 않다. 쳐다보기도 싫다.

돈은 그냥 물질생활에 필요한 수단이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돈이 아니어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잃어버린 돈은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한 것으로 생각하자.


한국에 도착한 지 이미 3주째.

나는 하루하루 마음의 상처를 작게 만들고 있다. 다음 달에 이스라엘에 돌아갈 때는 이 슬픈 마음을 전부 날려버리고 싶다.


'모두 내 탓이다'

남을 탓하지 않고 나를 용서하고 싶다.

난 여전히 지금도 사는데 즐거운 일이 많다.

좋은 일만 생각하고 슬픈 지난 과거는 하루빨리 잊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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