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신기한 게 하나 있다. 바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학교예산이니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하지만, 요즘은 매우 간소화하여 예산만 있고 결재만 받으면 구입은 행정실에서 해주기 때문에 마치 휴대폰으로 쿠팡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처럼 간단하다. 문제는 결재이다. 일단 필요한 물품이 있는 플랫폼에 학교 아이디로 접속해서 원하는 물건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리고 전자문서에 그 물건의 목록과 가격을 입력하여 결재를 받으면 보통의 기안자로서 업무는 끝이다. 두근두근 물품이 도착하는 즐거운 며칠이 지나면 새 제품이 행정실에 도착하여 수령하면 나의 일은 끝나는 것이다.
몇 해 전 학교에 아이들을 위해 코인 노래방을 구입하려고 계획을 세워 내가 예산을 확보했다. 그 당시 아이들이 코인 노래방을 자주 간다는 말에 아이들이 탈선하지 않고 학교에 지정된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코인은 학급에서 활동을 잘한 아이들을 위해 제작해 주면 좋을 거 같아 추진했는데 나는 어떤 코인 노래방 제품을 살까 즐거운 쇼핑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상상 속에 있었다. 관리자와 상의를 안 하고 진행했기에 이게 문제가 될 거란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렇게 내년도 노래방 예산도 마련되었고 신학기가 되어 구입을 하려고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목록에 넣어 결재를 올렸는데 그게 반려가 되었다. 관리자가 결재를 안 하면 반려라고 하여 다시 나에게 결재서류가 돌아온다. 나는 이유를 몰랐는데 결재를 하는 동안에 누가 노래방을 관리할지 의문이라 반려를 받은 것이다. 나는 관리자를 찾아가 자초지종 코인 노래방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말씀드렸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노'였다. 아마 처음 계획할 때부터 상의를 하지 않아 그게 괘씸죄에 걸린 모양이었다. 관리자는 나에게 코인 노래방의 활용 방도에 대해 일반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와달라고 해서 나는 곧이곧대로 선생님들과 코인 노래방의 활용 방안에 대해 7가지 정도 주제를 상의 후 활용방안서를 가져갔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그 하나하나에 대한 반박이었다. 1번부터 4번째 반박을 듣는 순간 알았다. 이것은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것을. 그리고 준비한 활용 방안서를 탁 접었다. 끝내 작년부터 추진한 학생회 활용 코인 노래방의 많은 예산마저 다른 부서로 쪼개지고 말았다. 나는 크게 상심했다. 예산도 충분히 확보했고 활용방안도 오랫동안 준비되어 있었는데 관리자 한 명의 반대 의견으로 모든 것이 좌초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이동식 축구골대를 새로 구입할 일이 생겨 이 것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예산도 있고 결재만 받으면 되는데 나는 이것을 구입하면 어떻게 수업에 이용할까를 줄자를 갖고 다니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몇 해 전 코인 노래방 건이 생각나며 이런 결론에 다 달았다. 물품은 예산이 있어 사는 게 아니라 사줄 때 사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관리자들은 나의 결재 건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다. 물품은 이럴 때 사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당장 꼭 필요해서도 아니고 예산이 있어서도 아니라 사줄 때 사는 게 현명하다. 내가 직장생활을 통해 터득한 귀중한 노하우이다. 비록 이런 상황이 어쩌면 비굴하고, 납득되지 않고, 슬플지라도 그게 세상사는 이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