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밝아와 올해에는 무슨 일을 할까? 기대하였는데 세상에 뚜껑을 열고 보니 작년과 똑같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음... 작년에 그렇게 잘했나?' 사실 나도 조금 낯이 나는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재작년의 아동학대 건으로 자꾸 새롭게 옮긴 학교로 교육청에서 아동학대 대상자로 선정, 출석 요구서, 위원회 결과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너무 자주 보내와 나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하게 추락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느껴진다. 그래도 내가 교직에서 지낸 지가 오래되었고 아동학대 건도 교육청 위원회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데 일선학교에서 나를 주홍글씨로 낙인찍였기 때문에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퇴근 후 집에 다 왔는데 차 안에서 기운이 빠져 못 일어나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나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부모에게 깊은 적대감이 느껴진다.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고 나를 이토록 나락으로 떨어 뜨리는지. 무엇보다 나보다 아래로 20년 이상 되는 너무도 어린 사람을 내 윗자리에 앉히지 내가 학교 가는 맛이 안 나고 가서도 슬픈 상황이 펼쳐졌다. 정말 사람을 죽으라고 하는 거 같았다.
어느 날 집을 가기 위해 퇴근하는데 경력 있으신 선생님이 나에게 조심스레 "괜찮냐?"라고 묻는데 "아유~ 신경 안 써요."라고 웃으며 손사례 치며 대답했는데 사실 괜찮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물어봐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 순간 살맛이 났다. 정말 딱 한 분만 이라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니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나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이래서 만인의 연인은 필요치 않나 보다.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의 따뜻함이 나의 지옥 같은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감사, 또 감사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며칠이 지났는데 어느 날 아이를 대학교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려고 하는데 심한 오한이 느껴졌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운전을 하는데 컨디션이 나빠져 도저히 못 버틸 거 같아 집사람에게 운전을 맡기고 조수석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극심한 두통에 구토가 나고 속까지 뒤틀리는 경험을 겪게 되었다. 그렇게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게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있으니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위의 일들이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음이었다. 내가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 생각이 들고 정말 어린 사람 아래에서 근무해야 하는 나의 신세가 죽음보다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된 듯싶다. 그로 인해 몸까지 아프게 되었다. 나를 신고한 학부모는 알까? 내가 이런 상황에서 몸져누워있다는 것을. 상대를 정말 죽이고 싶다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일이었다. 간단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돌려받게 되어있다. 이건 내가 성숙하든 아니든 상관없다. 내가 옮긴 새롭게 꾸린 직장생활이 그때의 일로 이렇게 참담한 상황이 될 거란 것을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또 며칠이 흘러 개학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참 의미 있고 중요하다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내 비록 낯이 나는 자리는 아닐지라도 아동학대로 법원, 교육청, 상담센터 등을 경유했을지언정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감이 느껴진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음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보다 나의 낯을 내는 자리를 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재의 삶도 의미가 있음을 2주가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꼭 낯을 세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살다 보면 이와 같은 일들을 자연스럽게 겪게 되어있는 듯싶다. 나를 신고한 학부모를 미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나에게 이토록 낮은 자리를 앉힌 관리자들을 미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즉, 원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또한 나의 인생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라 생각 든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이 나에게 필요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