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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AUCA Nov 24. 2023

2023년 10월 29일 사건의 전말

 우---우---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네

우---우---영원할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가수 김윤아의 노래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오늘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는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아닌 쉰여섯, 쉰 넷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님을 미리 밝힌다. 

 

그날 아침에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이것저것을 준비하고 병원에 계신 아빠한테 면회를 가기로 되어있는 날이었다. 아빠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이역만리 외국에서 온 나로서는 한국에 있는 동안 만이라도 아빠에게 매일매일 병문안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발들을 벗어놓은 현관문의 한구석은 오밀조밀한 신발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내 신발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들여다 봐야 찾을 수 있었다. 신발을 먼저 신고 마당에서 같이 갈 누나들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 작은 누나가 먼저 마당으로 나오고, 언제나 행동이 조금 느릿한 큰 누나가 한참 동안 자기 신발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어, 잠시만 내 신발 한쪽이 어디 갔지?”하는 큰 누나의 말에 “또 뭔 소리야, 신발이 어딜 가?, 빨리 신고 가자, 면회 시간에 늦겠어.” 여느 때처럼 느릿한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 나는 이렇게 짧은 대꾸를 했다.

“아니야 내 검은 운동화 한 짝이 없어졌어.” 그제서야 나는 확인을 도왔고 정말 거기엔 쿤 누나의 검은 운동화 한 짝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같은 색이지만 다른 디자인의 검은 윤동화가 내 눈에 들어왔고 그것도 제 짝을 잃어 버린듯이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있었다.  

“어, 이것도 한 짝이 없네, 누가 잘못 신고 나갔구나.”하는 큰 누나의 말에 “작은 누나가 잘못 신고 나갔네, 맞네 작은누나네.”그 순간에는 세 명이서 모두 낄낄대며 웃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작은 누나의 조그마한 실수로 인해서 아픈 아빠의 면회로 인해서 가라앚아 있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환기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다음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전부터 손끝이 매웠던 큰 누나가 바뀐 신발을 찾아 신으면서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작은 누나의 정수리를 몇 번이나 내려친 것이다. 하지만 뭐 말이 좀 과장돼서 그렇지, 흔히 있을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머리를 여러 번 쥐어박는 수준이랄까? - 강도가 좀 센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매운 손끝을 가자고 있던 큰누나에게 몇 번이나‘쥐어박힘’을 당한 작은누나 눈에서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이 뜩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배를 잡고 웃고 있었던 나로서는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이게 아닌데...”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당한 작은누나의 한쪽 손에는 벗다 만 큰누나의 한쪽 신발이 공포에 부들부들 떨며 들여져 있었고, 주룩주룩 흘어 내리는 작은 누나의 눈물은 늦은 가을 뽀얗게 먼지가 쌓인 마당에 뚝뚝 떨어지면서 지붕이 있는 마당의 다른 한켠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왜 그 쪽으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울분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듯한 목소리로 이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신발 저 지붕 위로 던져 버릴꺼야!!!”  

그 순간의 그 억울함과 끓어 오르는 듯한 분노는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부 전달되어 내 손이 벌벌 떨리는 것같은 이상한 기운마저 고스란히 전해졌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을까? 이 번에 캐나다에서 올때 같이왔던 캐나다 남편이 대문 밖에서 투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마당안으로 들어오면서, 영문을 알수 없는 검은 운동화 한 짝을 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지붕을 쳐다보고 있는 작은 누나랑 ‘딱’마주친 것이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전 세계인이 가지고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억울함과 울분에 차서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던 작은 누나는 국제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는 현타가 왔던것이다.

그 날의 사태는 국제적인 눈맞춤으로 인해 일단락 될 수 밖에 없었고 병원으로 향하는 차안에서는 큰누나의 놀림섞인 사과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벌써 한 달이 지났고, 나는 다시 살고있는 캐나다로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났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날의 장면장면 들로 인해 아직도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나를 키득키득 웃게한다. 억울하게 정수리 가격을 당한 작은 누나의 아픔에는 통감하지만, 그런 장면을 본의 아니게 연출 아닌 연출을 해준 두 누나들에게 미묘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까마득하게 희미하게 남아있는 12살의 나로 잠시나마 되돌아가서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태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민들어 준것이  그 이유다. 어릴적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옛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들은 간혹 있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2살의 내가 누나들의 그 격렬한 (일방적인)격투현장에서 바로 줄길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아무에게나 흔히 주어지는 일이 아니니 말이다.  

인간은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자신이 저장해놓은 기억들을 야금야금 갉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일로 나는 3 년치 정도의 갉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내 마음의 곡간에 가득 채워 놓은 느낌이랄까.

아무쪼록 작은누나의 정수리 부분이 훗날 문제 없이 잘 아물어서, 나의 추억의 곳간에서 꺼내어 함께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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