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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윗 Feb 10. 2024

어느 무신론자의 고백

    룰랴 그리고예비치는 전형적인 무신론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습니다.

이미 소련을 뒤덮고 있었던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가 결혼한 몸으로 고향인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를 떠나 홀몸으로 모스크바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처형의 딸이 알마티에서 모스크바로 유학을 왔었는데 그만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의 아내는 그때 유학을 왔었던 그 처형의 딸인 넬랴입니다.


우리는 한 아파트에 살면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같이 밥을 해서 먹고 같이 차를 마시며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룰랴 그리고리예비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제가 하는 선교사의 일을 적극적으로 잘 도왔습니다.

그와는 달리 그의 아내 넬랴는 말없는 여성으로 신앙생활을 차근차근히 쌓아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모스크바에서 침례를 베풀었던 사람들 가운데 그녀도 있었습니다.


룰랴 그리고리예비치는 이전의 서기장이었던  브레즈네프로부터 선물로 받은 오래된 중형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 차가 없어졌습니다.

당시의 모스크바엔 차량 도난이 흔하게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미러나 타이어도 훔쳐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후로 그는 아주 근심에 빠져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자식과도 같은 차를 잃어버린 그를 위로할 길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의 손을 잡고 차를 다시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제가 시내를 다니다 길가에 서있는 그의 차를 발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를 데리고 차를 찾아온 후에 그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지만 목사님에게는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이어서 그는 말하기를 이제 그 차를 팔아서 교회에 필요한 소형승합차를 사서 제게 선물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 후로 2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미 많이 늙어 있었고 여전히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젊은 그의 아내 넬랴는 여전히 훌륭한 신앙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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