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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윗 Feb 17. 2024

선교지에서 만난 어머니

          리지아 뻬뜨로바는 오십 대 중반의 여성으로 모스크바 자동차 도로대학의 교수였습니다. 그녀는 대학에서 레닌의 정치 철학을 전공한 신중하고 예의 바른 인털리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를 만난 건 내가 모스크바에서 함께 살았던 룰랴 그리고리예비치의 집에서 노동절을 기념하는 식사자리에서였습니다.


그녀는 모스크바 고려인 여성연합회 회장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연주홀에서 독창회를 개최했을 때에 꽃다발을 들고 무대로 올라와 고국에서 온 젊은 성악가이자 선교사인 저를 환영하자고 청중들에게 짧은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매사에 빈틈이 없는 여성으로 제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도왔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 열심히 교회의 일을 봉사하였지만 도무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여름 교회의 셀리더들과 교외의 별장에서 2박 3일간의 사도행전 강해 수련회가 있었는데 그 마지막날의 저의 강의를 통역하면서 방언이 터져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녀의 신앙은 눈부시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님으로 임명받아 우리 교회와 네 개의 지교회를 저와 함께 돌보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교회의 리더들과 교우들에게 늘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즈베키스탄의 옛 수도인 사마르카트의 신학교에 강의를 다녔는데 항공기로 네 시간 거리의 여행을 그녀는 매번 저와 동행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러시아국적을 가진 사람과 외국인이 구입하는 항공료는 차등이 있어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몇 배나 요금이 비쌌습니다.  


매주 모스크바에서 사마르칸트를 오가야 하는

항공료가 벅차서 저는 그녀의 아들의 여권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탑승전에 발각이 되어 우리 두 사람은 가진 돈을 다 빼앗기고 겨우 모스크바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기내에서 그 일을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모스크바의 선교사들 가운데는 그녀를 탐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은 개띠인데 개는 평생 한 주인에게만 충성을 다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늘 그녀를 어머니라 불렀습니다.


후 20여 년이 지나 다시 찾아간 모스크바에서 그녀를 반갑게 재회하여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모스크바에서의 어느 날 아침에 저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일을 보러 가던 그녀는 그만 쓰러져  일흔 중반의 생을 마금했습니다.


장례식에서 평온하지만 굳게 다문 입술을 한 그녀의 모습에 저는 어머니를 잃은 깊고도 비통한 가슴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천국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를 만날 마음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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