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9살 된 아들은 저와 함께 잠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엄마보다 아빠랑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을 좋아하며, 항상 저와 잠자는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아들의 요청을 이기지 못하고, 같이 자는 날(금요일, 토요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종종 아들과 함께 잘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은 왜 아빠랑 같이 자는 것을 좋아해요?”
아들은 답변하였습니다.
“아빠는 나랑 같이 잘 때 휴대폰도 하지 않고, 얘기도 많이 하고, 안아기도 많이 해주고……”
* 안아준다는 표현을 우리 집에서는 ‘안아기’라고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자곤 하였습니다. 민감한 성격으로 인하여 항상 일찍 잠들지 못하고, 항상 늦은 시간에 잠들곤 하였습니다. 그때 옆에서 주무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평안함을 얻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그 주무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무서움과 외로움을 느끼고는 하였습니다.
이에 저는 아들이 잠드는 순간까지 안아주거나, 아들이 손을 살포시 붙잡고 웃는 모습으로 아들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꿈나라에 가기 전 아들은 간혹 살짝살짝 눈을 뜨며 저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때 아들이 평온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저 또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제 아들에게 얘기합니다.
“잠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면, 항상 아빠를 깨우세요.”
오래전 새벽에 자리에 앉아있던 아들을 보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들, 왜 앉아있어요?”
아들은 답변하였습니다.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저는 항상 아들에게 자다가 꿈을 꾸면 아빠를 깨우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가끔 꿈을 꾼 아들은 저를 깨우곤 합니다. 이때 저는 다시 한번 안아기를 해주거나, 아들이 꿈나라에 갈 때까지 손을 잡아주고 바라봅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잠’이란 양면성을 가지고 다가오는 듯합니다.
어두움이 감싸는 적막한 밤, 그리고 하루를 편안하게 마감하는 평온한 밤.
자녀들의 적막한 밤과 평온한 밤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부모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들이 혼자 자고 싶다고 얘기할 때까지 아들과 함께 자려고 합니다.
저 또한 아들과 함께 자는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자녀들이 하루를 마감하며 잠자리에 들 때, 평온함 가운데 행복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