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와 시민 사이의 간극이 낳은 비극:

유럽의 난민과 이민 문제

by kuyper
엘리트와 시민 사이의 간극이 낳은 비극:
유럽의 난민과 이민 문제


유럽에서 지속되고 있는 난민과 이민 문제는 단순히 사회적 논쟁거리를 넘어 혐오 그리고 폭력적 사태로 번지고 있다. 어쩌면 이제 유럽에서 이 이슈는 건전한 토론이 아닌 엄격한 법률로만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린 듯하다.


사진_1.png <사진-1> 2024년 8월 4일, 영국 사우스포트(Southport) 난민 문제 이후 전국적으로 번진 폭동 사태 당시 사진이다. (출처: 로이터)


그렇다면 유럽에서 악화일로에 있는 난민과 이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는 경제적 원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과 일반 시민들의 간극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혐오와 배제, 그리고 이젠 폭력

사진_2.png <사진-2> 지난 7월 10일, 북아일랜드에서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오는 이민자들을 형상화한 보토를 모닥불로 태우고 있다. (출처: AP)

지난 7월 10일, 북아일랜드의 모이가셸(Moygashel)이라는 마을에서 보트에 탄 이민자들의 모형과 ‘보트를 멈춰라’(Stop the boats)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가 모닥불에 불타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유는 지난달 북아일랜드 일부 지역들에서 동유럽 출신 이민자에 대한 반이민 폭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북아일랜드 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사진_3.png <사진-3> 7월 10일부터 지속된 폭동에 참여한 스페인 청년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얼굴에 두건과 마스크를 쓰고, 야구 방망이 등 각종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출처: BBC)

위 사건이 다소 엽기적인 퍼포먼스지만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에서는 같은 날 스페인 무르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비하면 얌전해 보인다. 사건이 발생한 Torre-Pacheco라는 곳은 스페인 남부 지역에 위치한 무르시아 지역의 작은 도시다. 이 지역은 북아프리카 지역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이미 이 작은 도시의 인구 약 4만 명 중 3분의 1일 1세대 혹은 2세대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도시에서 7월 10일, 68세의 스페인 노인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노인에게 폭행을 가한 사람이 정확하게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온라인상에서 이 사건은 ‘이민자 범죄’라는 뉴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이후 극우 단체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계 주민을 공격하라는 선동 메시지가 확산되며 폭력과 폭동을 며칠간 지속되었다. 이 폭동으로 인해 이민자들의 집과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무차별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경찰이 이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4명을 체포했다.


일상화되고 있는 폭력, 그 이유는?


불과 10여 년 전 유럽에서 난민과 이민 문제는 중요한 정치적 화두이자 정책적 이슈였지 이처럼 사회적 범죄는 아니었다. 즉, 정당들이 난민과 이민에 대해 개방적일 것인가 아니면 폐쇄적일 것인가를 두고 정책적 토론을 벌이고 이에 대해 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생각과 부합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는 행태였다. 그러나 유럽에서 점차 이 이슈와 관련해서는 폭력이 일상화되고 있다.


사진_4.png <사진-4> 당시 영국 전역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인해 도시들이 불타고 있다. 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들이 사건 현장 인근에서 시위대를 저지하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영국 전역에서 발생한 폭동사태다. 2024년 7월 29일, 영국 리버풀 인근에 위치한 사우스포트(Southport)라는 도시의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세 명의 소녀가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영국에서 나고 자란 17세 청소년이었지만, 당시 온라인상에서는 가해자가 이민자, 무슬림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면서 전국적인 문제가 된다. 순식간에 폭력사태는 인근의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물론 벨파스트까지 퍼져 나갔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인해 2024년 7월 30일부터 8월 7일까지 영국의 27개 도시에서 29건의 시위와 폭동이 발생했고, 무려 1,804건의 체포와 1,072건의 기소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폭력이 일상화되고 있는 유럽의 난민과 이민 문제를 볼 때마다 중요하게 거론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극우단체’다. 최근 스페인에서 발생한 폭동을 보도한 영국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는 ‘극우 단체들’(far-right groups)이 이민자를 향해 ‘사냥’(hunt)을 선동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실제 최근 발생하고 있는 난민과 이민 관련 폭동의 전개 과정을 보면 오프라인의 특정 조직이 아닌 텔레그램과 극우 성향을 띠는 온라인 공간에서 허위정보가 퍼져나가면서 폭력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극우 단체들은 난민과 이민자라는 희생양을 도구로 삼아 자신들의 영향력과 정치적 메시지를 확산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한 가지 질문은 왜 이 차별과 배제의 목소리에 많은 대중이 동원되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대답은 바로 ‘경제’일 것이다. 모두 다 알다시피, 유럽은 2010년부터 유로존 위기를 겪으며 여전히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05~2024년 연평균 유럽연합 회원국의 경제 성장률은 1.3%였고, 유로존 국가들은 그보다 낮은 1.1%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5년~2009년 사이는 전 세계적인 경제호황으로 당시 유럽연합의 회원국들도 경제성장률이 좋던 시기다. 다시 말해, 2010년대 유로존 위기 이후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수치가 바로 실업률이다. 유로존 위기가 한창일 2013년 당시 유로존의 평균 실업률은 11.6%에 달했다. 아래 <표-1>은 2015년 이후 10년간 유럽연합의 연령별 실업률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전반적으로 유로존 위기 이후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표_1.jpg <표-1> 2015-2024년 유럽연합의 나이별 실업률 추이 (출처: eurostat)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럽의 젊은 층(15~24세)에서의 실업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2015년 전체 실업률이 약 10%를 기록할 당시, 젊은 층의 실업률은 22%를 넘었고, 실업률이 많이 개선된 지난해 전체 실업률이 약 6%인 반면 젊은 층은 약 15%를 보이고 있다. 꾸준히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혹자는 이 나이대는 학교를 가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유럽은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많이 가지 않는다. 적어도 10대 후반이면 경제생활을 시작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최근 일어나고 있는 난민과 이민 관련 폭동에서 젊은 세대로 구성된 극우단체들이 SNS를 활용해 결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과 일반 시민들의 간극


그러나 단순히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더욱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것은 대학에 가지 않고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일반 시민들, 특히 유로존 위기 이후 장기화되고 있는 불황 속에서 시리아로부터, 아프리카로부터,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로부터 계속해서 이주하고 있는 난민과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그들과 이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간극이다.


도덕적으로 생각해보면, 시리아 내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리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폭력으로 표현하며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반 시민들의 행태는 옳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도덕이 아닌 생존과 불안의 관점에서 그 일반 시민들 혹은 극우 단체들의 메시지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다소 다를 수 있다. 소위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등과 같은 국가들에서 방만한 국가 경영과 정책으로 촉발된 유로존 위기는 전 유럽으로 퍼진다. 그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은 것은 그 결정의 책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역설적으로 가장 해고당하기 쉬운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국가적 경제 위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하루하루 생존이 위협을 당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과 이주민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소위 정치 엘리트들이다. 난민과 이주민들이 유럽에 정착할 경우, 맞든 틀리든 국가적 경제 위기 때문에 생존의 위기에 내몰려 있던 기존의 유럽의 시민들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새로 유입된 난민과 이주민들이 할 일이 고위 공무원, 정치인, 법조인, CEO는 아니지 않는가. 난민과 이주민들이 선택하게 될 직종은 공장 노동자가 되거나 식당에서 서빙 업무 등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기존에 이 일을 하던 일반 시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난민과 이주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최근에도 지속되고 있는 유럽의 난민과 이민 관련 문제를 보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일반 유럽 시민들의 삶과 유리된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의 인식이다. 과연 이들은 공급자 중심의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수요자 중심의 행정을 하고 있는 걸까. 과연 이들은 자신의 정책적 선택이 수만, 수천의 시민들의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시민들의 충직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을까, 아니면 배우지 못한 이들을 이끌고 가는 리더 혹은 더 고상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사진_5.png <사진-5>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 위치한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와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영국의 역대 58명의 총리 가운데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은 31명,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은 14명이다. 이 두 학교 출신이 총 45명으로 역대 영국 총리 가운데 78%가 소위 Oxbridge 출신이다. 유럽연합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역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경우, 1958년 할슈타인을 시작으로 역대 13명 가운데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들의 경력을 보면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옥스퍼드,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 런던정경대(LSE) 등과 같은 유럽 내 엘리트 대학 출신이라는 점이다.


물론 출신이 엘리트 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이들이 일반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못한다거나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개인적으로 영국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브렉시트를 두고 엘리트 층과 일반 시민들의 간극은 상당했다. 전자의 경우, 런던정경대에서 유럽정치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경우 거의 9:1의 비율로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극우 정치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왜 어떤 맥락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들은 어리석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런던에서 택시 운전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백인 아저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브렉시트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난민과 이민의 영향으로 자신의 일자리, 즉 동유럽 혹은 중동에서 이주한 분들이 우버에서 택시 운전을 많이 하면서 자신의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위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 똑똑하다고 평가받으며 일반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엘리트들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여러 수치화된 데이터를 제시하며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그들이 마주하는 생존과 불안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리하면, 최근 폭력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유럽의 난민과 이민 문제는 유로존 위기 이후 유럽 내 경제적 위기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여파에 가장 민감한 젊은 세대와 학력 수준이 비교적 적은 세대들이 SNS를 활용한 극우 단체들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양상이다.


사진_6.png <사진-6> 지난달 23일, 노동부장관으로 지명된 김영훈 당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기관사는 새마을호를 운행하는 도중에 자신의 장관 임명 소식을 듣는다. (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보면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존의 엘리트 집단과 일반 시민들 인식 사이의 간극이다. 난민과 이민 문제에 대해 정치적, 정책적 선택을 하는 엘리트들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생명이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물리적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생존의 위협은 없다. 그러나 이들과 정반대에 있는 일반 시민들은 그들의 선택으로 그다음 날 이들의 생존이 위협당할 수 있다.

정치는 일반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정말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은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선생’이 아닌 충직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들을 가르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급자 중심의 행정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노동자 출신으로 자신의 노동부 장관 지명 소식을 열차 운행 중에 들었던 김영훈 노동부장관이 기대된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관장하는 그가 과연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관점과 기업과 국가 중심의 행정을 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장관이라는 권한을 도구로 활용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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