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협상에 숨겨진 국제정치-
트럼프답다. 7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간 관세 협상 체결을 자신의 소셜미디어로 먼저 발표해 버린다. 그 내용은 익히 아는 대로 미국은 한국 수출품에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인데, 이는 유럽연합 그리고 일본과 동일한 수치다.
그리고 하루 뒤,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양국은 공식 성명을 통해 관세 협상이 실제로 타결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는 참 희한하다. 그럼 어제 트럼프의 발표는 비공식인건가? 무엇이 공식이고, 무엇이 비공식인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양국 사이의 관세 협상은 타결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언론의 먹잇감이 될만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협상이 공식적인 문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에 출입하는 한국 기자는 물론 유럽의 몇몇 언론들도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이러한 불확실성을 지적하고 있다.
몇몇 기자와 언론들은 이를 두고 걱정할 수 있겠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유럽연합,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는 확실한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마지막 퍼즐과도 같은 한국의 조선산업이다.
이번에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 관련 외신 보도를 정리하면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협상이 타결되기 하루 전 동아일보 영문판 기사다. ‘새로운 미국-EU 관세 협정, 한국의 우려 증폭’(New U.S.-EU tariff deal raises Korea concerns)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유럽연합과 일본이 낮은 관세협정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대미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이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게 골자다. 언뜻 보면 한국의 통상을 걱정하는 애국 신문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흥미로운 사진을 하나 제시한다. (보도 링크: https://www.donga.com/en/article/all/20250729/5752753/1?utm_source)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이 제시한 관세 10%를 15%로, 유럽연합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액을 6,000억 달러에서 7,500억 달러로 현장에서 볼펜으로 수정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를 보고 있으면, 이 기사가 송고될 시점에서 곧 개시될 한미 관세 협상에서도 마치 이러한 장면이 연출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에 동아일보는 뻘쭘하게 되어 버렸다. 단순히 한미 관세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유럽연합, 일본과 동일한 관세 15%, 그리고 유럽연합,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외신의 평가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Politico)는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발표가 있자마자 관련 보도를 상세하게 전한다. 이 협상이 타결되기 전 여러 상황을 분석하고 기사 말미에 이 협상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보도 링크: https://www.politico.com/news/2025/07/30/us-south-korea-trade-agreement-00485888?utm_)
‘이번 합의는 얼마 전 선출된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내 정치적 조기 성과로 평가됩니다.’ (The agreement marks an early domestic political victory for newly elected South Korean President Lee Jae-myung.)
그리고 하루 뒤, 프랑스의 국제보도 전문매체인 프랑스24(France24)는 폴리티코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기본적으로 이 매체는 이번 협상 타결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기 초반의 중요한 승리(early victory for Lee's tenure )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지점은 트럼프의 반응을 전한 부분이다. 이번 합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내용은 2주 후 백악관에서 예정된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의 양자 정상회담(Bilateral Meeting)에서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전하면서 예상치 못한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 (보도 링크: https://www.france24.com/en/live-news/20250730-trump-says-us-to-impose-15-tariff-on-south-korean-goods)
“이번 선거에서 이긴 것 축하해!”
(Trump said, offering congratulations to his South Korean counterpart for his "electoral success.")
이런 스윗한 트럼프의 모습을 보며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올랐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7월이 되면 이재명을 싫어하는 트럼프가 CIA를 투입해 이재명 대통령을 제거한다는 것을 믿고 있었던 한 여자. 윤석열은 감옥에 가도 자신은 미국이 구출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녀가 이 기사를 보고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물론 보지 않았겠지만!) 그런 그녀는 8월 6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특검 조사에 지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힌다.
"국민 여러분께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그래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야. 그러니 트럼프가 7월 달에 당신을 구하러 오지 않았지!’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이 정도로 외신들은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긍정적인 보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일 자 로이터(Reuters) 보도는 서울과 워싱턴 간 이번 협정이 아직 서면으로 공식화되지 않았고, 투자펀드 등을 비롯해 세부적으로 논의할 사항이 많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비유를 옮겼다. 김 장관은 이번에 타결된 합의를 수술을 막 끝낸 환자에 비유하며 “환자의 상태가 다시 악화되거나 약물이 필요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밝혔다. 즉, 여전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있어 불안정성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 링크: https://www.reuters.com/world/asia-pacific/south-korea-industry-minister-still-concerned-about-us-tariff-impact-exporters-2025-08-04/?utm)
그러나 그간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외교행태를 보면 공식적으로 통용되던 외교 관행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 더해 오히려 공식 문서로 인해 향후 미국과의 외교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영국 매체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미국-유럽연합의 관세 협상으로 브뤼셀에서 혼란이 극대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행정명령과 고위급 공동성명을 통해 협상은 공식적으로 타결되었으나 공동성명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그간 트럼프 행정부의 협정들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보도 링크: https://www.ft.com/content/c6389de3-3f6b-4522-8a0b-e430600a1928)
“트럼프의 이른바 ‘협정’들은 실제로는 느슨한 약속이나
일종의 ‘분위기(vibes)’에 가깝습니다.”
즉,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베트남과 체결한 관세 협상에서 20% 관세율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일본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 또한 어디로 사용될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이 관세 협상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두고 ‘거대한 협정(colossal deal)’이라며 주요 내용 중 하나는 EU가 자동차, 의약품, 반도체에 대해 15% 관세를 부담하고, 철강 및 기타 금속은 50% 관세가 유지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유럽연합은 자체 설명 자료를 발표하며, 전날 백악관 발표와 다른 주장을 펼쳤다. 예를 들면, 의약품은 미국의 진행 중인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추가 관세 대상이 아니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결국,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몇몇 언론들이 제기하고 있는 공식 문서화 문제는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는 모든 국가들의 문제인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문제가 아닌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관세 협상 과정을 보면 한국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현재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 차원에서 한국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아는 것처럼, 이번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핵심 전략은 바로 한국의 조선산업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의 이 기사를 참고하면 좋다. 링크: https://www.ddanzi.com/ddanziNews/853894191)
그렇다면 한국의 조선산업이 얼마나 미국의 군사 안보적인 측면에서 중요한지 살펴보자. 2022년 미국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과 미 국방부는 국방전략(National Defence Strategy)을 발표한다. 여기서 모두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로 러시아와 중국을 제시한다. 러시아를 제시한 이유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이에 러시아를 일시적인 위협(threat)으로 규정한 반면 중국은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경쟁자이자 미국 안보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심각한 도전’이라고 명시했다. 우리 국방부가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명문화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에 중국을 이렇게 표현하면 당연히 미국의 군사외교 전략과 정책의 핵심은 중국을 억지하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된다. 2008년 오바마 행정부부터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 한미일 삼각동맹을 맺으려는 미국의 노력 등 모두가 이런 배경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억지하기 위해 군사력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매년 최소 7%를 상회하는 증가율로 군사비 지출에 진심이지만 지난 2024년 기준 여전히 미국과 중국의 차이는 엄청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의 국방비는 9,970억 달러(약 1,384조 원)로 세계 국방비 지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37%로 압도적이다.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의 1/3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미국은 엄청난 해외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아래 지도는 2024년 기준 미국이 운영 중인 전투사령부 현황이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전투 범위는 세계다. 심지어 지난 2019년에는 우주군(Space Command)을 창설해 우주까지 전투 범위에 넣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현재 7개의 전투사령부를 운영하며 51개국 이상에 걸쳐 최소 128개의 해외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병력이 주둔한 곳이 바로 중국이 있는 인도-태평양 사령부(Indo-Pacific Command)다.
이처럼 군사력에 있어서 미국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런데 최근 한 분야에서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그 분야가 바로 미 해군 전력이다. 지난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미·중 해군력 비교 보고서는 미국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으로 중국의 전투 함정은 234척인데 반해 미국은 219척을 보유하며 역전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미국이 구축함과 순양함 등을 고려하면 질적 우위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중국 함정의 70% 이상이 2010년 이후에 건조되어 이 추세는 곧 역전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 것이다. 실제 이 보고서는 2030년에 이르면 미국은 약 300척 수준의 함정을 유지하는 반면 중국은 약 420여 척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제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다, 즉 해양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것인데 1세기 넘게 대서양과 태평양을 자신의 앞바다로 활용하던 미국에 이러한 변화는 엄청난 충격인 것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인 것은 미국은 산업 기반 약화로 인해 자체적으로는 군함을 건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세계 선박 시장에서 단연 1위는 시장 점유율 약 50%의 중국이고 2위가 바로 약 30%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다. 심지어 한국은 이미 미국 해군의 정비 및 후속 MRO(정비·수리·점검) 파트너십을 구축 중이다. 결국 미국은 군사력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압도하고 있지만, 해군력에서 약점을 보이고 있고, 중국은 이를 놓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태평양을 지키기 위해 해군력을 유지 및 증가시키는 것이 사활적 이익인데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채워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글이 길어졌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한 외신의 기본적인 평가는 이재명 정부의 성과로 보도하고 있다. 동시에 몇몇 언론에서 불안정성을 제기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불안정성은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맺고 있는 모든 국가들의 문제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억지하는 것을 제1의 외교안보 전략으로 삼고 있는 미국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서는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