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비극이 낳은 산물-
‘전쟁’이란 단어는 학창 시절 수업 시간 혹은 정치권에서나 사용되는 그 무엇처럼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전쟁이 잠시 중단된 휴전 상태라고 배우기는 하지만,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쟁이란 단어는 피부에 별로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외신들은 한반도의 전쟁 기운이 감돈다며 한국의 전쟁 가능성을 심각하게 다루지만, 정작 한국에 사는 시민들은 (물론 불안을 느끼기는 하지만) 한반도에서 실제 전쟁을 심각하게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20세기 초·중반 유럽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전쟁과 1950년 한국전쟁은 분명 실재했고, 그 전쟁의 결과로 우리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는 남한과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갈등이 첨예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에 우리는 언제든지 전쟁의 가능성을 안고 현실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피부에 와닿는 것은 아니었다. 참 묘한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면 사뭇 다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하며 3년이 넘게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할 때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을 러시아가 흑해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이 사태를 그 지역에 국한된 정치적 갈등 혹은 오래 가지 않을 군사적 갈등 정도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다시 말해, 두 국가 사이의 전면전을 상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8년이 흘러 러시아는 세계를 충격으로 빠트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더니 두 국가는 3년 넘게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202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몇 차례 미사일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지상 작전을 벌이며 말 그대로 전쟁이 발발하며 중동 전체가 위기를 맞는다.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중동 지역의 핵심 국가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위험한 말을 주고 받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중동 전체의 전쟁으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전 세계가 주목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은 단순히 이 두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의 측면을 고려하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보았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6월 12일 이스라엘은 이란을 침공한다. 이번 이스라엘의 공습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 발표를 명분으로 삼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는 이란 내 핵시설로 의심받고 있는 3곳에서 IAEA의 핵사찰 및 검증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이란 당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있자마자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 반대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고 일주일 후인 6월 19일,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미국의 CNN과 한 인터뷰에서 이번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은 분명하게 '정치적 결정'이며, IAEA가 발표한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국제기구인 IAEA의 발표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이스라엘과의 연관성에 대한 괜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전쟁을 보며 전쟁이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닌 오늘도 실재하는 현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동시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며 내세운 명분이 19일 그로시 사무총장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을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도대체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 국제정치학이며, 이 학문이 만들어 내는 상품이 바로 국제정치 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국제정치학과 국제정치이론은 전쟁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인류 역사에서 전쟁의 비극이 국제정치학과 국제정치 이론의 창조를 낳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다. 투키티데스(Thucydides)는 이 비극적인 전쟁을 기록한다. 이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며, 저자는 이 책에서 이 두 도시국가가 왜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이 분석의 내용은 이천 년이 흐른 지금도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이론 가운데 하나인 현실주의(Realism) 이론의 시발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세기 전반, 유럽은 두 번의 전쟁을 경험한다. 세계전쟁으로 불릴 만큼 당시 강대국들은 모두 이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의 비극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강력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전쟁의 원인을 연구하는 국제정치이론의 태동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실제로 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 영국 웨일스에 위치한 에버리스트위스 대학교(Aberystwith university)에서 처음으로 국제정치학과(Department of International Politics)가 등장한다. 인류의 전쟁사와 21세기 확고한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한 국제정치학(International Politics 혹은 International Relations)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 학문을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0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지난 100여 년간 국제정치학은 다양한 국제정치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도출해 그 패턴을 야기하는 원인을 찾아 이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사회과학인 국제정치학은 근본적으로 자연과학과 다르다. 즉, 국제정치학은 자연과학이 추구하는 법칙(law)을 만들 수 없다. 이에 국제정치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국제정치 이론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물리적으로 모든 사회적 현상을 알 수 없다는 것과 이론이라는 도구를 활용하면 특정 현실을 보다 과학적으로 그리고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역설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국제정치이론의 창조를 낳는 배경이 되었고, 되고 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전쟁을 보며, 단순히 드러난 수치보다 그 전쟁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한반도에서도 참혹한 전쟁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와 신학에서 이러한 논의는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이에 다음 글부터는 주요 국제정치 이론들을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알려진 E.H. Carr의 『20년의 위기』로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