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화자는 지금 간장게장을 만드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꽃게를 통 속에 엎어놓고 간장을 들이붓는 장면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간장이 꽃게의 살에 잘 스며들고 몸속에 있는 알에까지 잘 스며들어 밥도둑 간장게장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화자는 어미 꽃게의 아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꽃게 등짝에 간장이 쏟아집니다. 꽃게는 자신보다 자신이 잉태하고 있는 알들의 안위가 걱정됩니다. 꽃게는 뱃속의 알을 간장으로부터 보호하려고 껴안기도 하고 웅크리기도 하면서 버둥거립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간장을 모성애로서도 막을 길이 없음을 압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알들에게 ‘불 끄고 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죽음과 동일시되는 아픔을 억누르면서 꽃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아픔도 꽃게의 아픔과 동일시되지만 아픔을 걷어낸 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시적 상황에 주목하면서 꽃게의 아픔에, 어미 꽃게의 모성애에 공감하게 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죠.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간장게장을 먹으면서 맛과 관련된 오감(五感)만을 작동하게 됩니다. 그래야 편안하게 맛을 음미하면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간장게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꽃게가 보여준 모성애와 꽃게가 받아들였을 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까지 한다면 편안하게 밥을 먹기가 어렵습니다. 먹는 일은 동물의 생명이든 식물의 생명이든 존재의 생명을 앗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매 끼니 먹는 일에는 다른 생명체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음도 알고 있습니다. ‘맹자(孟子)’도 해결할 방법을 알지 못해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장면을 직접 보고는 그 모습이 너무나 참혹하여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푸줏간을 멀리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밥을 먹으면서도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시인의 안목이 놀랍습니다. 자신을 주체로 두지 않고 대상을 주체로 두었을 때, 대상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길 수 있음을 이 시를 통해 알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