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의 힘

안도현, '비켜준다는 것'

by 인문학 이야기꾼

비켜준다는 것

-안도현


둥글레 새싹이

새싹의 대가리 힘으로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게 아니다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비켜주었으므로

저렇드키, 저렇드키

연두가 태어난 것


땅이 비켜준 자리

누구도 구멍이라 말하지 않는데

둥글레는 미안해서 초록을 펼쳐 가린다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생명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혹독한 추위에 땅은 꽁꽁 얼어도 땅이 품고 있던 생명체는 얼지 않았나 봅니다. 봄이 되니 얼었던 땅이 녹습니다. 단단하던 땅의 밀도가 조금은 헐거워집니다. 그렇다고 연약한 식물의 싹이 두터운 땅의 거죽을 뚫고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땅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싶은 새싹의 소망을 아는지 땅은 자신의 거죽을 열어 비켜줍니다. 열린 길을 따라 새싹은 새봄이 있는 세상에 고개를 내밉니다. 자기를 위해 길을 열어준 땅 거죽에 구멍이 났습니다. 새싹은 자신의 잎으로 그 구멍을 가려줍니다.


나무의 껍질을 뚫고 돋아나는 새잎이나 꽃잎이 그 연약한 힘으로 나무의 그 단단한 껍질을 뚫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새봄이 되면 모든 나무에서 일제히 새잎이 나고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나무껍질이 길을 열어주고 나무의 속살이 힘껏 밀어주지 않으면 새 잎과 꽃망울이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겠는지요. 나무껍질은 겨우내 외로웠던 마음을 새잎과 꽃잎으로 달랠 수 있어서 좋고, 새잎과 꽃잎은 고마움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나무의 성장을 돕고 번식을 돕습니다. 이런 자연의 순리를 우리는 섭리라고 부릅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계단 틈새에 나팔꽃이 연분홍빛 꽃 한송이를 피우고 힘겹게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팔꽃 씨앗이 어떻게 계단 틈 사이에 들어갔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마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씨앗 하나가 틈새로 들어가게 되었나 봅니다. 씨앗은 척박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싹을 틔웁니다. 콘크리트 틈새에 있는 흙은 최선을 다해 길을 열어주고 콘크리트도 나팔꽃 싹이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주위의 배려가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살아가는 이치는 식물이나 사람이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아가는 길이 나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도움으로, 주위의 배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또 알게 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따뜻한 겨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