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봄이 올 때까지는'

by 인문학 이야기꾼

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화자에게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이 있고, 추구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얼음장과 같은 두꺼운 현실의 장벽이 있어 지금 당장 달려가 만날 수도, 일을 할 수도, 가치를 추구할 수도 없습니다. 장벽을 부순다면 얼음장 밑으로 자신도 함께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얼음장이 녹는 봄이 올 때까지는 보고 싶어도 꾹 참고 기다리기로 합니다. 봄이 오면 얼음장 위에 던져진 돌이 자연스럽게 강 밑바닥에 닿듯이, 화자의 현실 장벽은 자연스레 치워질 것입니다.


고등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고, 직장인이기에 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가장이기에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곧장 덤벼들 수 없는 한계도 있습니다. 그런 현실의 장벽을 무작정 허물다가는 고등학생의 신분이, 직장인이라는 지위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얼음장이 갈라지듯이 와르르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 충실하면서 때를 가다리는 자세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견우와 직녀’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견우의 노래’라는 시를 썼습니다. ‘견우와 직녀’라는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제(天帝)의 손녀인 ‘직녀’는 길쌈을 부지런히 했고, ‘견우’라는 목동은 소 먹이는 일을 부지런히 했습니다. 둘은 결혼하죠. 그러나 결혼 이후 둘은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자신의 일을 게을리하게 됩니다. 천제는 크게 노하여 이 둘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갈라놓습니다. 칠월칠석 일년에 한 번만 만나게 하죠. 칠석이 되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를 건너는 다리를 놓게 되고 이 오작교(烏鵲橋)를 통해 둘은 눈물의 상봉을 합니다. ‘견우의 노래’라는 시에서 견우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서정주, ‘견우의 노래’ 중에서


견우와 직녀는 일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는데 울면서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소를 먹이는 일’과 ‘비단을 짜는 일’을 하면서 그날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 시의 내용입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은하수’라는 현실의 장벽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장벽을 원망하거나 장벽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얼음장 위에 있는 돌멩이가 스스로 얼음장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면 얼음장을 뚫기 위해 애쓰기보다 돌멩이의 본성을 잃지 않고 얼음장이 녹을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삶의 이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Pixabay 무료이미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