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 간격이 필요하다

안도현, '간격'

by 인문학 이야기꾼

간격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화자는 나무가 울창한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어깨동무하고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편백나무는 편백나무끼리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편백나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상수리나무끼리, 싸리나무는 싸리나무끼리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편백나무는 싸리나무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윽박지르지 않고, 싸리나무는 상수리나무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보채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면서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자리를 지키면서 숲을 이룹니다.


산길을 걸어갑니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좁은 길입니다. 길 가운데 큰 돌덩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돌덩이가 보행에 방해가 됩니다. 돌덩이에게 ‘임마! 너는 왜 넓은 데 다 버려두고 길 가운데 버티고 서 있니? 당장 저기 넓은 곳으로 가!’라고 타이르기도 하고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돌덩이가 가겠는지요? 돌덩이는 거기가 당연히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비키라고 하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겁니다. 돌덩이에게 저기 넓은 곳으로 가라고 호통을 치기 전에 돌덩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내가 살짝 비켜 가면 돌덩이가 길 가운데 있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안 되죠. 돌덩이가 비켜서기보다 내가 비켜 가는 것이 훨씬 쉽지요. 저 자리가 좋다는 것은 내 기준이고, 내 기준으로 돌덩이를 저리 옮겨가라고 하는 것은 간섭입니다. 이런 간섭은 싸움이 일어나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도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인간 숲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남편과 아내로, 부모와 자식으로, 동료로 얽혀 살아갑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서로의 간격을 유지한 채 건강한 숲을 이루듯이, 우리도 우리끼리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간격을 유지해야 건강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음을 이 시는 넌지시 말합니다. 간격은 무관심이나 방관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지요. 상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마음에 들게 시키는 것은 간섭입니다.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에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자왈 부재기위 불모기정)]”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자리(지위, 직책)에 있지 않으면 그 정무(업무)를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산불의 원인이 됩니다. 간섭한다고 고쳐질 리도 없지만 고쳐지는 것이 반드시 낫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다양한 생각들과 다양한 행동들이 다양성을 담보하는 사회적 자산이 됨을 공자(孔子)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생각을 고집하고 서로의 생각을 기준으로 남에게 간섭하는 것은 건강한 숲에 산불이 일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생각의 다양성을 기르고, 울창하고 건강한 숲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임을 알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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